남은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주요가구를 주문하는 것 외에는 거의 arrange가 끝났다. 오늘은 마침 어제 주문하고 셋팅한 인터넷과 전화선이 들어오는 날이라서 일터로 나가지 못하고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이런 서비스가 들어오는 시간대를 잡아주기 때문에 오후 12-2시 사이에는 텅빈 오피스에서 기다려야 한다. 가구도 무엇도 없고 인터넷도 없기 때문에 업무는 그야말로 문서작업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곧 들어갈지 더 기다릴지 고민하고 있다.  땅바닥에 앉아서 문서를 작업하는 건 상당한 중노동이라는 생각과 도서관이든 어디든 바닥에 잘 주저앉아 책을 보고 공부를 하던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의 사이 어디엔가 내 정신이 맴돌고 있는 상태.  


새 오피스가 있는 건물은 이전의 오피스보다 훨씬 더 중심가로 나왔음에도 근처에 도보로 갈 수 있는 음식점이 많이 있다. 무엇보다 나의 비공식 아지트가 되어버린 서점에서 매우 가까운, 차로는 대충 5분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내 로망을 실현하는 것도 가능해진 것이다. 내 사무실을 운영하던 첫 해, 고즈넉한 반스앤노블서점 (다른 장소에 있다가 폐업한)의 카페에 앉아서 언젠가 잘 돌아가는 회사가 되면 목요일이나 금요일의 오후에 다소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 볕이 좋은 서점카페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간단한 업무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겠다는 로망 말이다.  비록 그때의 지점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래도 이 근처에서는 거의 유일한 오프라인서점이 되어버린 이곳의 반스앤노블이 지척이라니.  누군가 햇살이 따가운 늘어지는 어느 금요일 오후 3-4시에 이곳에 오면 한 구석에서 간단한 문서꾸러미와 책 한 권을 집어들고 나와 노닥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찬사가 가득한 작품이고 읽는 재미도 좋았으나 딱 거기까지. 활극이나 본격추리도 아니고 사회파도 아닌 경찰학교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소 끔찍하기도 하지만 소소한 사건들이 해결되는 이야기.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인물은 없으나 중심은 '교장'이 되어버릴 운명의 임시교수라고 하겠다.  비상한 관찰력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하고 위험한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주된 플롯인데, 소설의 재미보다도 그냥 일본인들을 끔찍하고 잔인하게 만드는 어떤 민족성이나 본능이 폐쇄되고 왜곡된 환경과 관계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엿본 느낌이라서 읽은 후에는 꽤나 불쾌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호흡은 짧게 가져갈 수 있는, 매우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인데, 가격에 비해 이런 점도 조금은 불만스럽기도 하다. 여하튼 꼭 책이 두꺼워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에 나오는 책의 활자크기와 글자수에 대비해서 가격이 적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재미에도 불구하고 이 책도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명실공히 추리소설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애거서 크리스티가 다른 필명으로 쓴 여섯 개의 작품들 중 첫 번째. 예전에 전작을 하면서 모조리 사들여 보관하다가 추리소설전작이 끝나고도 한참이 지난 이번에 읽었다. 읽는 내내, 계속 가슴과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는 듯, 그렇게 울림을 받으면서 깊은 공감을 느꼈는데, 조앤의 무신경함과 정당화, 성인 ADHD스러운 면이 부각되는 독재, 그 안에서 온화한 인간성, 그리고 시대가 부과한 '결혼'이라는 제도에 따라 가정을 지키면서 꿈과 삶에서 멀어진, 스러져가는 로이드라는 남편을 보면서 서글펐고, 화가 났고, 잠깐 갱생의 여지가 보이던 조앤이 결국 일상으로 복귀한 후 도로아미타불로 다시 ADHD적인 삶의 독재와 인지무능의 철권통치를 이어감에 역시 천품은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오독인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로이드가 그토록 바라던 삶을 시작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듯한 묘사를 봤는데,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다.  빅토리아시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어쩜 우리의 삶은 그렇게 편향된 사고와 성질머리, 자신의 생각과 말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휘둘리는지.  어쩜 그렇게 facade를 그리도 단단히 구축해놓고 안주하고 나머지는 애써 무시하고 인정하지 못하는지. 로이드에겐 농장경영의 꿈이, 나에게는 하와이에서의 삶에 대한 꿈이...


르귄이 자라나던 40-50년대의 버클리. 지금도 매우 자유로운 기풍으로 유명한 도시지만 미국의 다른 지역에선 흑백차별이 당연시되던 시절에 벌써 흑인학생에 학생회장을 하던 멋진 도시. 미국진보의 마지막 보루는 뉴욕과 켈리포니아라고 생각되는데, 그 켈리포니아에서도 버클리와 샌프란시스코는 트럼프의 미국에서 힘겹게 싸움을 이어가는 최전방이자 마지노선이 아닌가 싶다. 그런 자유로운 기풍의 도시에서 자라난 책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판타지계의 거성이 되었으니, '맹모삼천지교'까지는 아니라도 사는 환경이 상당히 중요한 건 사실이다. 요즘 아시아계 부모들에게 '핫'한 곳은 그저 교육환경이 좋은, 덕분에 꾸역꾸역 몰려든 이들이 한껏 키운 버블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은 동네들이지만 (쿠퍼티노, 어바인 같은), 사실 아이들은 이렇게 자유분방하고 충분히 diverse한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부모들이 어찌나 난리들을 치는지 이제는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딸리지 않을 조기사교육이 주류사회까지 잡아먹는 북새통을 이상적으로 보는 아시아계의 독소가 트럼프의 짓거리 이상 미국의 미국다움을 없애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자식이 있다면 조금으 더 slow한, 충분히 놀고 적절한 공부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그런 중소근교도시가 훨씬 더 나은 곳에서 독서와 운동, 놀이와 교양을 갖춘 삶을 줄 것이다.  물론 현실은 무자식이 상팔자


예전에는 '황금가지'나 '엘릭시르'에서 좋은 SF를 많이 출판해주었는데 요즘은 단연코 '아작'이 최고라고 생각될만큼 주기적으로 좋은 책이 많이 나와주고 있다. 호건의 '별의 계승자'를 시작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절판이나 품절되기 전에 지금까지 나온 대략 60여권을 모두 갖추려는 맘이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옥스퍼드 시간여행 3부작'의 코니 윌리스는 단편도 상당히 많은 듯, '아작'에서도 여러 권을 벌써 들여왔고 대부분 상당히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시도를 볼 때, 그리고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으로 나쁘지 않게 본 책이지만, 알라딘서재의 고수 '나귀'님의 평을 보니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짚은 이런 저런 이슈들이나 의문점들이 다시 떠올랐다.  조금 더 선별하고 조금 더 파고들었더라면 더 나은 책이 되었을 것인데, 작가의 문제도 있겠지만 난 최후의 보루는 편집자라고 보기 때문에 편집과정에서 더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 점이 문제라고 본다.  언젠가 더 나은 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테마.


넓어진 사무실에 아직은 채워넣은 인원이 없으니 반 이상을 일종의 Archive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책은 거의 다 정리가 가능할 것 같은데, 대문사진에서 보이는 4X4 Ikea Kallax 다섯 개, 그리고 좁고 높은 Ikea Billy계열의 책장 10개, 여기에 회의실에 넣을 유리문이 달린 조금 팬시한 깊은 책장 세 개.  지금 사는 공간에도 어느 정도 책을 갖고 있으니.  그런데 문제는 그간 모아들인 영화와 게임소프트가 되는데, 이런 건 오픈공간에 두면 하나씩 없어질 것 같고 (책은 아무도 안 가져가지만) 막상 사는 곳에 두자니 자리가 모자랄 것 같다.  정리하면서 해결해갈 고민이다.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공간에서 일과 정리를 병행하는 것으로 5월이 다 지나갈 것이니 벌써 한 해의 반에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40대의 시간은 매년 1마일씩 빨라지면서 시속 40마일을 기본속도로 달려진다.


아는 만큼 읽어지고 보이고 이해된다.  이제 네 권이 남았고 시리즈를 끝낸 후 언젠가 시간이 나면 천병희교수의 원전번역을 읽을 차례.  배우는 것이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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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을 이사날짜로 잡았다. 주중에 빌딩에서 요구하는 이런 저런 보험을 들고, 조건에 맞춰 moving company를 섭외하고, 그 와중에 차에 문제가 생겼는데 고치는 값이 너무 많이 나와서 그냥 dealer에 가져가서 trade-in을 하면서 새로이 차를 구해야 하는 상황까지, 거기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여럿 닥치고, 그 와중에 꾸준한 상담에도 불구하고 slow한 business라는 늘 함께 하는 걱정거리까지 온갖 것들이 한꺼번에 나를 짓누르고 있다. 지나가고 나면 다 묻어버릴 고생이고 어떤 건 살아가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이지만, 그렇게 두들겨 맞고 나니 금요일인 오늘이 되자 아무것도 하기 싫은 지경에 이르렀다. 그 와중에도 운동은 꾸준했지만,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거의 하루걸러 하루마다 술을 마셨으니 뱃살이 늘어나지 않았으면 다행일 것이다.  아무튼, 결론은 금요일의 땡땡이가 됐는데 햇살이 좋은 봄날, 그간의 비 때문인지 찬 바람탓에 결국 방콕하면서 메일이나 전화로 오는 상담을 받으면서 책을 읽는 것이 고작이다.


아케치 고고로. 긴다이치 코스케, 가미즈 쿄스케와 함께 일본의 3대 명탐정의 한 명인 그가 등장하는 란포의 소설을 16권으로 완간하겠다고 하는데, 현재까지 나온 3번째 책이다. 워낙 오래된 이야기고 등장하는 악당들이 설명충인건 대략 70-80년까지도 이어져왔었던 전통이라서 가볍게 무시하고 이야기와 구성 그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지를 절단한 희생자의 시체를 석고상으로 만들어서 여러 곳에 팔아버리는 엽기적인 연쇄살인마와 경찰의 대결. 패색이 짙어가는 와중에 갑자기 외유 후 귀국한 아케치 고고로가 달려들면서 금방 해결되는데, 정체는 그다지 갑작스럽지 않은, 오컴의 면도날 법칙을 적용했다면 금방 찾을 수 있었던 어떤 사람인데, 이번에는 나도 트릭을 금방 잡아낼 수 있었다. 란포의 이야기는 추리보다도 서리얼하고 기괴함에 포인트를 잡고 읽으면 더욱 즐겁다.



가벼운 책과 신변잡기의 에세이. 일본작가들의 이런 책을 보면 늘 일본의 책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 부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면서, 어떤 면으로는 일본인들의 사고가 섬에 갇혀 깊지만 편협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우리 책의 비중이 높아진 에세이도 많이 나오지만 아직까지 유수의 한국 문인들이 쓴 독서에세이에서는 외서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 또한 타인지향성의 표출로 볼 수 도 있고, 다른 면에서는 서구지향을 통한 빠른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룬 바탕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본은 오랜 세월동안 외부의 문물을 받아서 자기화를 잘 한, 꽤 열린 사고를 가진 면이 강했고 우리는 500년 동안 유교철학만 받들던 나라였던 것을 보면 지금 양국의 성향은 각기 과거의 반대급부라는 생각도 든다.  모으기에는 하드커버가 멋있지만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는 이런 예쁘고 아담한 문고판이 적절하다. 















'네트'를 열고 '강하'하여 시간여행이 가능한 2060년대. 2차대전 중의 런던의 한복판에서 종횡무진하는 역사학자들의 모험이 시작된 '블랙아웃'과, 옥스퍼드 시간여행 3부작의 완결은 슬프고 아름다웠다.  편차가 증가함에 따라 어그러지는 듯한 역사의 주름속에서 각각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서로를 돕고, 위치한 시간대의 사람들을 도와가면서 다시 '네트'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미래의 학자들. 그리고 극적으로 구출되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사실들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일직선의 삶은 결국 거대한 원처럼 과거, 현재, 미래가 얽힌 바퀴가 닿는 찰나의 직선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일어났던 그대로 다시 역사가 미래가 되어갈 것임을 학자들이 자각하게 되는 건 이야기가 끝날 무렵이니, 연속적이고 늘 계속 존재하는 시간속에서 그들이 다시 같은 모험을 떠날 때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일어난 일은 계속 일어나게 되는 것.  던진 떡밥을 잘 회수했다는 생각과 함께 누군가의 희생으로 전쟁의 승리에 필수조건인 사건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고, 또 이 과정에서 과거에 갇힌 그들이 구해지는 과정의 반복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음이다.  단순한 SF소설을 넘는 드라마성이 대단하고 상징하는 것, 혹은 읽는 사람에게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또한 대단한 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일하는 날 땡땡이를 치는 하루의 시간이 무척 빨리 지나간다고 생각했었는데 나이를 먹은 탓인지, 오너라서 그런 건지 이렇게 땡땡이를 치는 날엔 일하는 날보다 훨씬 더딘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아침에 나가서 우편물도 확인하고 이런 저런 전화도 몇 건 처리하고 서점에 들려 커피도 마시고 책도 사왔으며 라면을 끓여 먹고 나서도 고작 오전 11시라는 사실이 새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일하기 싫은 날'의 하루.  배가 가라앉으면 나가서 뛰고 들어와서 대충 오후 1-2시가 될테니까, 무척 길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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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던 고갱의 특별전시회를 보고 바로 다음 타임의 모네 특별전시회를 본 것이 지난 주 토요일이었다. 티켓값을 따져보니 $119이면 연간 무제한으로 De Young과 Legion of Honor을 다닐 수 있는 회원가입이 훨씬 낫겠다 싶어서 유료회원이 되자마자의 일이다. 비록 우리가 익히 아는 고갱의 그림들보다는 초기의 작품들 위주였지만 '달과 6펜스'를 읽으면서 막연히 떠올리던 고갱의 모습이 제법 실체화되는 경험을 했고, 워낙 같은 테마로 그림을 많이 그린 모네라서 여러 개의 '수련'과 정원, 아시아풍의 Moon Bridge그림을 봤지만 처음으로 모네의 진본을 볼 수 있었다.  비참했던 고호,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는 늘 가난했던 고갱에 비해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모네는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요즘 같으면 작은 마을은 될 정도로 큰 장원에 여덟 명의 정원사를 두고, 본채와 세 채의 갤러리를 짓고 살 수 있었던 걸 보면, 일단 예술도 좋고 무엇도 좋지만 경제적인 성공이 뒷받침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같았으면 벌써 유능한 큐레이터와 프로모터가 달라 붙었었을 고호나 고갱이지만, 살아생전에는 불우했던 그들의 삶과 모네의 그것이 많이 대비되어 이런 저런 '어른'의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내침 김에 Palace of Legion of Honor에서 마침 어제 시작된 루벤스의 특별전시회 'Early Years'를 보고 왔는데, 보통 티켓값이 일인당 $28-$35씩 하니까 기름값을 생각하더라도 훨씬 남는 장사 같다. 여기에는 좀처럼 대작이나 많은 작품이 오지는 않지만 나름 찰진 구성이라서 유명한 그림을 다수 볼 수 있었고 (감상이란 말은 아직 어울리지는 않는 수준의 안목이라서) 이탈리아에서의 8년수행 후 안트와프로 돌아온 후 더욱 발전시킨 화풍, 나중에서는 재주가 좋은 화가에서 북부 바로크 화풍의 창시자가 된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요즘은 가면 특별전만 보고 오지만 사실 Legion of Honor에는 자체적으로 상당한 양의 고전미술품들이 있고 로댕의 조각과 모사품도 전시되어 있으며 곳곳에 고대 로마나 그리스, 에트루리아나 미케네의 유물들도 상당량 전시되어 있는데, 여기에 Golden Gate Park언덕에 위치한, 높이 바다를 내려다보는 곳이라서 볕이 따뜻한 날이면 하루 종일 있어도 좋은 곳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SF나 NY에 사는 사람들이 누리는 혜택과 자부심이 조금은 부러울 수 밖에 없는데, 어제도 박물관으로 가면서 지나친 호수공원을 뛰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은 2019년에는 특별한 전시회가 없지만 아마도 몇 번은 더 가서 일반전시라도 보고 주변을 돌아다닐 계획이다.  따뜻한 여름의 햇살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공기가 어우러진 SF의 여름이 꽤 좋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꼭 City Lights 서점을 가봤으면 한다.


'올클리어'로 이어지는 이야기. 역사연구와 참여학습을 위해 1940년의 런던으로 보내진 역사학자들 셋. '둠스데이북'과 '개는 말할 것도 없고'에서도 그랬지만 시간여행이 가능한 수준의 2060년대의 첨단과학과 온갖 변수를 다 계산하고 추진되는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아니나 다를까 또 사고의 연속이다. 일단 역사에 개입하면 안되는 조건인데 '네트'라는 일종의 시간여행의 자연법칙에 따라 개입할 소지가 있는 사건이나 행동은 여행상의 오차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방해를 받지만, 2060년대에도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바, 역사에 변화를 줄 경우 '네트'가 붕괴하거나 세계가 붕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시간여행을 하는 학자들은 늘 자신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역사를 바꿨을까봐 전전긍긍한다.  거기에 각종 시대에서 마주치는 그 시대의 인간들의 호의와 간섭, 방해 등등의 이유로 늘 계획한 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은데, 여기에 이들이 머물고 있는 1940년의 런던은 나치독일의 공습이 한창이다.  이야기를 매듭짓지 못하고 '올클리어'로 넘어가버리는 탓에 아직은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지 못한채 학자들은 죽을 고생을 하고 있고, 나는 그걸 보는 고생을 하고 있다.  다음 이야기는 오늘 오후부터 바로 시작할 것이다.


벌어먹을 자신이 없고 커리어를 바꾸기엔 늦은 나이라서, 무엇보다 진상커스터머 (고객도 손님도 너무 존대의 의미가 커서 피하고 싶은 단어이다)를 원만하게 달랜 자신이 없어서 요리를 직업으로 삼지는 못할 것 같다. 경제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면 해보고 싶은 것이 작은 서점과 선술집이긴 하지만 그걸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언제라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상당한 성공을 했다는 전제가 깔리지만 chef라는 직업도 은근히 자유도가 높아 보인다. 아니면 무슨 직업이든 큰 성공을 거두면 자유도가 높아지는 건지도 모른다. 그간 숱하게 오사카를 드나 들며 먹고 마신 기록이 품평과 소개, 그보다 더 맛깔나게 사진으로 막힌 찰나들이 모인 술과 음식과 사람들의 화보집.  역사관과 정치적인 면에서 참 맘에 들지 않는 나라지만, 사람과 문화와 음식은 싫어할 수가 없는 곳이 일본이다. 거기에 오사카는 그 기질이 한국으로 치면 경상도와 비슷해서 제법 거칠고 떠들썩하다고 하는데, 재일조선인들도 많이 살고 있어서 요리 곳곳에 우리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내 생전에 이런 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바이블처럼 가끔씩 펼쳐보면서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이 두 권의 책은 부끄럽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읽었다. 그나마 '콘래드'의 경우에는 SF라서 서사라도 대충 따라갈 수 있었으나 '저지대'는 대략의 유추, 여성의 입장에서 나오는 서사를 대충 본 걸 제외하고는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좀더 시간을 두고 나중에 읽으면 둘 다 make sense하는 걸 찾아낼 수 있겠으나 갈 길도 멀고 날은 저물어 가는 탓에 일단 덮어두기로 했다. 아직까지 로저 젤라즈니는 '엠버 연대기'가 최고인 듯.  


 

소설이나 보다 더 일차적인 사료 혹은 역사평론은 늘 읽지만 이렇게 survey스러운 논문같은 책을 읽는 건 꽤나 오랫만이다. 신선한 관점에서 해석된 1차세계대전의 원인이 되는 사건들이 기억에 남는다. 몰트케장군이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거나 '슐리펜안'으로 남은 슐리펜장군의 작계가 '안'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정책적인 분석이었다는 이야기, 그 밖에도 아주 우연한 일들이 이어져 아무도 일어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던 기존의 해석과는 달리 제국의 유지하고 아우르기 위해 전쟁이 필요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사정이라던가, 독일의 팽창주의를 막기 위해 갑자기 친해진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라던가. 역사분야에 편중되어 있던 내 독서가 지금의 모습으로 바뀐 것도 오래전의 일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역사관련 책을 읽는 재미를 맛보지 못했는데 이런 독서도 즐겁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플루타르크'라고 하면 영어로 읽은 이름이고 '플루타르코스'라고 하면 그리스냄새가 난다. 어디서는 '플루타르크스'라고도 표기된 걸 본 적이 있는데 사실은 '플루타르코스'가 맞을 것이다. 작가는 그리스인이었으니까. 로마와 그리스의 인물을 테제에 따라 비교분석하는 시도를 통해 과거에 비추어 현대를 보는 시도가 조금씩 이해되고 있다. 아직 남은 6-10권을 다 읽어야 하고, 천병희선생이 작업한 원전번역도 읽어야 하지만,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


책읽기가 느려지고 중구난방인 요즘이다. 2주 안에는 계약된 곳으로 이사도 해야 하는데, corporate management라서 그런지 뭔가 조건이 많다.  이사할 업체도 알아봐야 하고 그들의 보험여부와 서류작성도 받아야 하고, 일은 많고 돈이 나갈 일은 더 많은데 들어올 것이 없는 피곤한 한 주였다. 이번 주부터는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과 자신을 추스리는 마음으로 남은 일요일을 쉬어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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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어떤 목적을 갖고 책을 읽은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교재로 쓰인 책은 그 장르나 성격을 떠나서 읽는 '목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보통 읽는다는 행위는 나에게 '재미'나 '흥미'를 위한, 즉 취미로써의 성격이 강했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대략 12년 전부터 생긴 다독의 버릇까지 더해지면서 '통달'이라는 개념을 독서에 적용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고 다행스럽게도 같은 책만 계속 읽는 행위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번이라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을 계속 reinforce하는 건 어떤 경우라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독서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무엇을 알기 위해 비슷한 계통이나 주제의 책을 여럿 읽어야 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걸 넘어 계속 같은 테제에 사로잡히는 건 피해야 한다고 본다.  매사를 한 가지의 관점에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특히 내 성격상 그렇게 사유가 제한되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다, 여러 모로.


소설 '드라큘라'를 쓴 브람 스토커의 증손자와 전문작가가 함께 유추한 소설의 배경과 행간. 소설로 널리 알려진 뱀파이어 드라큘라백작의 이야기가 팩션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토대로 스토커집안의 삼남매의 어린 시절부터 소설이 나온 후, 아주 나중에 브람 스토커의 말년의 행위를 근거로 어쩌면 소설은 그가 겪은 어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결론인데, 원작의 원고가 100페이지 이상 누락되었다는 점, 스토커가 당시의 사람으로는 드물게 화장을 원했다는 점, 그가 남긴 노트에서 보이는 소설의 행간이 주요 근거로 잡힌다.  읽는 내내의 서스펜스가 무척 뛰어났고, 소설 '드라큘라'보다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뱀파이어의 이야기라서 시간이 좀 걸렸지만 전혀 지겨움 없이 봤는데 스토리가 본격화된 반 권 이후부터는 거의 하루에 돌파해버린 것 같다. rich한 근대문학과 소설의 토양에서 이런 책이 나오는 것이고, 그런 바탕에서 멋진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는 것이니 잃어버린 우리의 근대는 언제나 아쉽기 짝이 없다.  전작 Dracula the Undead가 소설 '드라큘라' 이후의 등장인물들의 삶을 다뤘다면 이 책은 좀더 사건사실에 근거한 느낌을 준다.  소설 '드라큘라'를 재밌게 봤다면 권하고 싶은 책인데 사용되는 영단어도 일상적인 용어가 대부분이라 그런 대로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부터 계유정난까지. 문종이 참 괜찮은 왕이었고 그의 치세가 길었더라면, 이후 단종의 시대까지 잘 지나갔더라면 조선은 우리의 역사에 남은 모습과는 많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세종에 대한 비평과 공과는 크게 새롭지는 않지만 '무'와 '문'을 중시했던 조선의 초기, 명의 사대하면서도 언제나 실력을 배양하고 원래의 영토를 유지하려했던 노력이 세조의 역천으로 인해 도루묵이 된 점, 거기에 대대로 이어져 조선 중기의 혼란을 야기하고 종국에는 나라를 망하게 만든 훈구세력이 다시 자리를 잡게 된 점이무척 아쉽다. 간혹 보이는 '민족사관'의 해석이 다소 무리로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추가 한 쪽으로 많이 기운 지금의 사학계라면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다른 방향으로는 더 큰 힘을 작용시켜야 한다고 보는 바, 적어도 이 실록에서의 이야기는 큰 무리가 없다.  언젠가 박시백의 '실록'과 다른 원전들을 구해 비교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여러 권 더 주문하게 한 책. '죄'의 개념이 없던 시절 신은 왜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도록 선악과를 '선택'의 영역에 남긴 걸까.  또 카인의 제물은 제대로 받지 않으면서 왜 아벨의 제물은 즐겨 받는 차별행위로 카인의 질투를 불러일으켰을까. 성서에서는 달리 전승되지만 '카인', 즉 '인간'의 관점으로 해석해보는 구약의 중요한 사건들이 '카인'이라는 인물의 생각과 말을 통해 극화로 만들어진다. 해방신학의 계열에 이런 종류의 책이 꽤 있는 것으로 아는데 거기까지는 특별히 갈 이유는 없지만, 성서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 '문자'에 사로잡혀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사유해보고 보다 더 깊은 이해와 '통달'을 위해서는 이런 책까지도 모두 읽어봐야 한다. 어떤 영적 혹은 신적인 작용이 있었다고 해도 성서는 사람이 쓴 것이고 고대 중근동의 신화와 설화가 차용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서 '성경무오설'같은 건 나에겐 개가 짖는 소리만도 못한 '이론'이다.  행위가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의 '행위'가 잘못될 수 없다는 아전인수로 '믿음'만 강조하는 '썰'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뜨고 보면 그게 얼마나 거지같은 말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행위가 뒷받침 되는, 즉 믿음이 행위로 구현되지 않는 믿음은 의사적인 '믿음' 그 이상이 아닐테니 다양한 사유와 의견을 잘 버무려 자기만의 것으로 만드는 지혜와 성찰이 필요한 것이 현대의 종교생활이 아닌가 한다.
















'도토리' - 괜찮은 신변잡기. 이야기를 통해 일본근대의 문학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 재미있기 어려운 이야기. 서민 선생님은 기생충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빛이 나는 것 같다.  

'경관의 조건' - 3대로 이어지는 '경관'집안의 이야기. 단순한 추리나 활극을 넘어 일본사회가 움직이는 구조의 단면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주중으로는 급한 일을 하면서 사무실계약을 추진할 것이다. 여러 곳을 돌아봤는데 아무래도 내 맘에 딱 드는 곳은 찾지 못했다. 그나마 위치로 보나 여러 조건으로 보나 가장 나은 곳을 찾았고 다가오는 1-3년은 잘 사용할 장소를 찾았다. 더 커지면 같은 건물 안에서 더 넓은 곳으로 계약을 옮길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 집에서 가깝고 조용한 환경도 맘에 든다. 아직은 작은 operation이라서 오픈공간의 상당 부분은 서고로 쓰게 될 것인데 이 또한 지금의 내 형편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잘 마무리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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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금년에는 하와이를 두 번 가게 된다. 이번 주말에 다녀오게 되는데 여러 가지로 마음이 급하다. 어지간한 사이 같았으면 참석하지 않았을 정도로 무리가 되는 일정이지만 워낙 오래 알고 지낸 형이 상투를 튼다고 하니 아니 갈 도리가 없다. 


지난 주에는 도착이 지연되었던 주문이 두 패키지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바람에 이런 저런 가벼운 책을 위주로 실컷 읽을 수 있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어대는 편인데 문학은 워낙 늦게 즐거움을 알게된 탓도 있어서 그런지 흔히들 말하는 고전보다는 소설과 이런 저런 잡학의 책을 선호한다. 문학은 머리가 여유 있을 때 조금씩 읽기 위해서 꾸준히 모으고는 있으나 아무래도 손이 덜 간 모양새.


보관할 공간이 있고 여유가 있다면 읽고 싶은 책은 어지간하면 모두 구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여러 모로 다른 형편이라서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현재의 살이에서 계산할 때 한국의 헌책방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  여긴 여기대로의 나은 점이 있기는 하지만 가끔씩 보다 저렴하게 책을 구할 방법이 없나 생각하다 보면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또 특이한 서점은 책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만 접할 뿐이지만, 한국에 있었더라면 '성지순례'는 어느 정도 하지 않았을까.  
















세 권의 각기 다른 책이지만 비슷한 것을 찾아 다니는 마음으로 읽었다. 우연이지만 나열한 순서가 그대로 만족도 1-2-3순위를 드러낸다.  


'술 먹는 책방' 책을 사들고 옆의 바로 이동해서 가볍게 생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책을 볼 수 있는 '북바이북'은 무척 매력적인데 이 '술 먹는 책방'의 컨셉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조금 더 호사를 부리면 책방 옆에 이자카야를 붙여놓고 동업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프렌차이즈화가 되면서 좀 변질되었지만 사실 이자카야는 말 그대로 선술집으로 작고 아담하고 메뉴도 어정쩡, 술도 몇 종류만 팔아도 문제가 없는 작은 가게가 좋다.  서점 옆에 그런 작은 가게가 붙어 있으면 혼자 자리를 깔고 책을 보면서 가볍게 요기를 하고 술 한잔을 마시는, 늦가을 저녁이면 유난히 가고 싶어지는 곳이 될 것이다.


'술집 학교'는 상호인데 일본의 어떤 시인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차린 선술집이 계속 이어져내려오면서 쌓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시 우연한 기회에 잠시 알바를 했던 저자의 눈으로 그려지는 노포의 추억담이랄까. 문제는 이 추억담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문인들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다른 나라의 이야기라도, 심지어는 잘 모르는 것을 이야기하더라도 속에 잘 들어오는 책이 있는데, 아쉽게도 이번에는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정겨운 선술집의 풍경을 그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우리네 80년대. 동네 어귀에는 하나씩 있었던 작은 포장마차가 갑자기 그리워진다. 낮에는 핫도그와 떡볶이, 튀김을 팔고 해가 진 저녁부터는 가벼운 안주와 술을 팔던, 필경 동네주민이었을 아주머니가 부업으로 하는 그런 수준의 포장마차 말이다. 지금은 말이 그렇지 '포장마차'라는 건 멸종되어 버린 지 오래가 아닌가.  


'맛보다 이야기'에서는 미안하게도 '맛'도 '이야기'도 그리 맛깔스럽게 느끼지 못했을 만큼 모든 이야기가 뚝 떨어진 채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사는 곳이 문제인지, 아저씨라서 그런 건지.  


책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 이곳 저곳에서 다뤄진 책. 상당한 고전(?)으로 알고 있는데 무대가 되는 시기는 '노르웨이의 숲'과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짧은 책이라서 그런지 상당히 함축적으로 전달되는 뭔가가 있는데, 난 그저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하지만 늘 관념적으로 접근하는 버릇 때문인지 복잡하기 그지 없던 이십 대의 우리들을 추억해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순수했던 건지 항상 의식세계는 치열했었고 뜬구름을 잡는 듯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던 그 시절에는 누구나 그랬겠지만 세상은 그야말로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복잡한 주변환경과는 반대로 사는 건 심플 그 자체인데.  아침에 눈을 뜨면 씻고 나가서 일을 하고, 돈을 모으고 쓰면서, 주말에는 그저 쉬면서 온전히 자기의 시간을 갖기를 워하는 소박(?)함.  어인 일인지 달력이 2019년으로 넘어오면서 갑자기 맛이 없어진 술과, 줄어든 양에 우울해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그래도 우리의 나날'이라는 제목이 꽤 묵직한 울림을 준다.  그래도 젊었던 그 시절이 아닌가.  돌이켜보면 후회도 많고 부끄럽기도 한 일도 많았지만.


911 테러 당시만 해도 PATRIOT ACT가 2019년 현재까지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끝나지 않았고 끝날 수도 없는 '전쟁'이 미국의 일상에 자리잡을 줄도 몰랐다.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국민을 몰아서 '안전'을 핑계로 자유와 권리를, 사생활침해를 허락해버린 끝에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검색대에서 짐과 몸을 스캔당하고 국내선여행에 30분 이상을 보안통과에 쓰고 있다. 911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가라앉은 지금에도 사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미국인'이 또는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영장도 없이 체포를 당했는지, 구금되었었는지, 불법감금 후 고문을 outsource된 나라로 끌려갔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알카에다만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날 듯 선전했지만 모두 알다시피 알카에다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병을 위한 협상대상이고 엉뚱한 불똥이 튄 이라크는 80년대까지는 미국을 위해 일하던 독재자가 날아간 후 지금까지도 엉망이 된 상태이고 그 속에서 태어난 IS는 이제 범국가적인 테러세력이 되어있다.  911이 터졌을 때 지성인들이 경고했던 대로, 미국의 경제와 사상이 큰 영향을 받았고 더욱 통제되었어야 할 부의 사유화와 세습화는 통제를 벗어나고 시민의 자유와 인권은 911 이전과 비교해서 훨씬 더 큰 틀에서 정부의 간섭을 받고 있는 것이 2019년 미국의 현실이다.  이걸 작은 스케일로 극화한 것이 '리틀 브라더'에서 보여진 샌프란시코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낯익은 지명과 거리, 서점의 이름들까지 이곳에 사는 덕분에 아주 친숙하게 들여다 본 소설의 세계는 언제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읽는 재미를 넘어 꽤나 등골이 서늘한 경험을 했다.  놓기는 쉽지만 다시 찾기는 어려운 시민의 권리와 정의를 얻기까지 200년이 넘는 시간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요구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가와 인종을 넘어 지구인이라는 하나의 공통분모을 테제로, 넓고 큰 시각에서 접근한 세계사의 개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웰스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무척 잘 쓰인 책이다. 아주 평범한 사실적인 내용을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술술 넘어가는 좋은 flow를 보면 이 책은 잘 쓰였을 뿐만 아니라 매우 열정적으로 쓰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10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책인데 시간의 차이를 많이 느끼지 못할 만큼 timeless한 면이 있다.  이 책에서 다뤄진 아시아의 이야기에 한국이 누락되었음은 많이 아쉽다. 한글의 과학성과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았더라면 웰스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더욱 아쉽다.  대문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문화와 그의 손으로 그려지는 서술이 궁금하기만 하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은 책의 세계에서는 항상 맞아떨어지는 표현이 아니지만, '경관의 피'는 띠지에 엮인 이런 저런 선전문구가 전혀 과정이 아님을 보여줄 대단한 스케일과 재미가 있다.  전후 일본의 경찰, 그 아들이 자라서 보여주는 전공투시대에서 버블붕괴직전까지의 일본, 그리고 손자가 보여주는 현재의 일본까지 삼대에 걸쳐 그려지는 이야기가 전혀 지겹지 않게 펼쳐진다.  전후에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보면서 마쓰보토 세이초나 요코미조 세이시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가 어느새 현대작가들의 작품으로 옮겨진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 면도 있어서 여러 모로 변화를 볼 수 있으면서도 탄탄한 구성이다.  과연 그렇게 끝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결말의 당위성 또한 수긍할 수 있을만큼 지극히 현대적인 맺음이 매끄럽다.  다음의 책을 바로 읽을 생각이다.


그럭저럭 정리를 했으니 하루의 마무리를 향해 달릴 시간이다.  벌써 2019년의 1/4이 지나고 있으니 금년도 금방이다.  결코 젊지 않은 나이임에도 이룬 것이 없다는 생각에 우울하지만,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것 빼고는 신통하게 잘 하는 것도 없으니 그렇게 순간 순간을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조금 더 건강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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