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치과예약이 있어서 다녀온 후 잠깐 사무실에서 잡무를 처리한 후 gym에서 오늘의 운동을 마쳤다.  원래의 계획에는 field에서 간만에 달리기를 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런 30분간의 집중호우로 뛸 맘이 가셔버렸다. 나이가 있기에 괜히 미끄러지거나 삐는 등 부상도 걱정이 됐고 온 하체에 물을 튀기면서 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시간도 그렇고 해서 요즘의 골치아픈 일상에서는 갑자기 unafforable한 취미가 되어버린 서점과 커피가 그리워 그리로 차를 몰았다.  서점에 거의 도착해서 마침 내 신호를 받고 우회전을 하려다가 길을 건너려는 사람을 보고 차를 세워 그녀가 지나갈 수 있도록 수신호를 한 찰나, 갑자기 백미러를 보니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차, 그리고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를 들었고, 바로 기어를 움직여 차를 조금이라도 앞으로 빼려고 했으나 접촉사고를 피할 수는 없었다.  결론적으로 범퍼가 살짝 상한 정도였고, 무엇보다 사고를 낸 차와 차주를 보니 문제를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피자배달을 하는 사람인데,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영어도 잘 못하고, 딱 계산이 나오더라.  가난한 이민자, 그것도 아마 나이가 꽤 들어서 미국으로 온 동유럽 아니면 페르시안계 이민자.  경찰을 부르거나 보험처리를 하는 것이 내 평소의 지론인데 사실 사고로 입은 데미지는 종종 나중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보내기로 했다.  


다만, 이 사고보다 더 기분이 드러웠던 건, 내가 길을 내준 보행자의 태도였다.  자기를 기다려주다 사고가 났고, 내가 그런 배려를 할 이유도 없었고, 무엇보다 그 사고를 바로 눈앞에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나한테 고맙/미안하다는 제스추어를 날린 후 그냥 가버린 그녀.  통상의 반응이라면 일단 내 사고를 목격한 사람으로서 최소한 내가 괜찮은지, 자기의 증언이 필요한지 등을 묻는 것이 예의가 아니었을까?  다시금 느끼지만 세상엔 참 많은, 갖가지 종류의 인간들이 산다.  


그간 읽은 책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날씨탓인지, 연휴라서 그런지 서점에 사람이 많아서 편히 앉을 자리가 없다.  물론 지금 앉아있는 의자는 무척 편한, 이곳에서만 보는 의자지만, 책읽기엔 편리해도 책상이 없으니 노트북으로 뭘 하는 건 좀 어렵다.  어제 '괴담의 테이프'를 읽다가 경험한 혹은 경험했다고 느낀 이상한 순간의 정적도 좀더 떠올려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오늘은 아닌 것 같다.  


SF나 LA같은 대도시는 조금 다르지만 켈리포니아는 대체로 보행자에게 많은 양보를 한다.  따라서 앞으로도 가능하면 계속 양보를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기분은 조금 씁쓸하다.  그래도 어려운 사람에게 크게 클레임을 하지 않고, 경찰도 부르지 않는 등 '보호'를 해주었다는, 즉 보다 더 큰 선행의 기회를 잡았고, 이를 헛되이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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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12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급작스러운 상황을 겪거나 목격하면 상대방의 감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

transient-guest 2017-11-13 03:05   좋아요 0 | URL
뭐 갈길 간거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