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하루종일 우울해서 일도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나마 이를 악물고 하던 운동을 했을 뿐인데,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명백한 FBI의 선거개입 때문에 다 이긴 선거를 졌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 결과 트럼프라는 희대의 괴인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어 다음 4년간, 오바마 행정부가 이룩한 지난 8년간의 업적을 훼손하려고 할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빼면 세계의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 비록 그간 많이 약해졌지만 - 여전히 세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강대국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트럼프의 예측불허한 행보는 많은 이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의 당선가능성이 상승함과 동시게 큰 폭으로 하락한 각종 증권지수가 이를 반영하고 오직 푸틴 같은 이들이나 반기는 그의 당선을 보면, 안간힘을 쓰고 버티던 미국이 드디어 쇠락기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도 이런 저런 이유로 일정이 좀 꼬여서 아침부터 서점에 나와서 밤 사이에 들어온 메일들에 답변을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힐링을 하고 있다. 오전 11시에 외부미팅이 있어 사무실에 들어가면 금방 다시 나와야할 것 같아서, 대충 한 시간 정도를 근처에서 때우기로 한 것이다. 서점이든 카페든 혼자 나오면 아쉬운 건, 오래 앉아있고 싶을 때, 그런데 중간에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을 때다. PC도 그렇고 가방도 그렇고 뭐 하나 그냥 놔두고 갈 수가 없어 성가시기 그지 없는데, 천상 최대한 앉아있다가 다시 다 챙겨서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자리를 잡는 수밖에 없다. 2-3주 전엔가 금요일에 산타크루즈로 넘어가서 해변을 한 바퀴 돌고나서 예전에 즐겨 찾던 펄고라시라는 히피카페에서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앉아 있었는데, 역시 두 시간 이상은 같은 이유로 더 있을 수가 없더라. 그런 이유를 빼면 기실 약간은 lone wolf같은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여럿과 다니는 것보다 더 즐거울 때가 많다. 오전 9시. 서점이 여는 시간에 맞춰 한 시간 전에 내렸을 커피를 한 잔 받아 넓은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책을 구경하고 책냄새를 맡는 시간은 나에게 무척 소중하다.
시마다 소지의 책 남은 한 권, 그리고 새로 산 라이트노벨 냄새를 폴폴 풍기는 추리/환상 같은 책 한 권을 읽었는데, 지난 2-3일 간은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해가 떨어지면 자버리는 생활을 했다. 비가 오지 않아서 그런지, 가을 기분이 나지 않아서 한창 타던 가을분위기는 갑자기 여름처럼 느껴져 가을남 생활은 자연히 멈춰졌다만, 우울은 한 동안 계속 될 것이다.
동화와 사회파가 결합된 듯 묘한 전개와 결말을 보여준 책이다. 신본격을 주도한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읽을수록 사회파의 요소를 보여주는 듯한데, 특히 재일한국인, 2차대전 중 일본이 저지른 만행, 특히 식민지 조선과 조선인들에게 끼친 피해, 진심이 없는 사과와 번복을 반복하는 일본정부, 우익 등의 문제는 그의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다른 책에서도 그랬지만, 작중인물의 입을 빌려 나오는 시마다 소지의 역사관은 그런 면에서 내가 그의 팬이 되는데 있어 큰 영향을 미쳤는데, 간접적인 발언 - 하루키 같이 - 이 아닌 상당히 직접적으로 이런 이슈를 언급하고 일본의 만행과 부족한 전후인식에 대해 비판하는 일본작가는 그리 많지 않기에 그는 매우 귀한 my author이다.
어린 아이가 목격한 어른들의 이야기. 단순한 삼각관계에 의한 치정살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결말은 훨씬 다른 쪽으로 전개되어 사회파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한창 조총련-북송교포의 뒷날, 그리고 일본인 납치사건 같은 것들이 뉴스가 되던 시절 영감을 얻어 나온 작품 같다. 깔끔하고 쉽게 읽힌 책이다. 복잡한 추리도 없다.
책 속도 아니고 가로변에 매직으로 큼직하게 이름을 쓴 중고본을 받았다. 그딴 짓을 했으면서 책을 팔아버린 심리는 무엇일까요 백XX씨. 다음부터는 그렇지 마세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그 속에 어린 추억과 아쉬움을 힐링해주는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내용이다. 예전엔 hot spot이었지만, 지금은 쇠퇴해버린 지방의 상가거리 - 마치 한국에서 내가 살던 동네의 상가거리처럼 이층상가건물이 1-2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에 마주보고 서 있던, 일층은 상가, 이층은 살림집의 형태로 - 에 위치한 시계수리점. 같은 거리에 있는 미용실, 거기에 이사온 주인공, 그리고 대학생이면서 수행승 같은 다이치라는 묘한 청년을 3 top으로 놓고 드나드는 등장인물들의 추억이나 과거에 어린 수수께끼를 풀어주고, 어떤 연유에서인지 현실과 꿈의 경계를 넘나드는 플롯. 딱히 애틋함도 없고, 아직까지는 그냥 그렇다.
주초에 나온 것으로 아는데, Lee Child의 Jack Reacher시리즈 신작이 나왔다. 하드커버 원가가 보통 $25-$30인데, 멤버쉽 D/C가 40%, 여기에 이번주에 받은 20%쿠폰을 더하면 심지어 Costco보다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다. 그리고 지난 주 Costco에 보고 지나친 John Grisham의 신작은 구매를 망설이는 중. 워낙 다작에 재독률이 낮아서 금방 헌책방에 풀리는 걸 알기 때문이다.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