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부]까지 소세키 전집에서 여섯 권을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앞서의 다섯 권에서 굳이 비교하면 다른 작품들보다는 [풀베개]에 더 가깝다고 생각된다.  [나는 고양이소로소이다]를 비롯한 다른 작품들은 사회상을 반영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저자의 경험과 주변인물, 그리고 사건을 빗대서 저자가 생각하는 시대상을 그린다면, [갱부]나 [풀베개]는 이들보다는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습작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아직까지는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게곤'폭포의 자살 모티브는 여기서도 나오고, 가끔씩 조연들의 대화에서도 어느 시절인지를 유추할 수 있는 주제가 나오지만, 그래도 [갱부]는 확실히 보다 더 작은 범위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화자는 도쿄의 괜찮은 집안출신에 분명히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수학 중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찌하다가 그를 사이에 둔 일종의 삼각관계가 형성이 되었는데, A에겐 관심이 좀 덜하고 B에게 맘이 더 가지만, 집안에서는 B보다는 A에게 더 기우는 와중에서 그의 행동이나 말에서 뭔가 사단이 났고, 꾸지람을 들은 끝에 세상을 등지겠다는 각오로 하이칼라 옷차림에 32전을 들고 탄광촌에 와버렸다.  굳이 갱부가 될 생각도 없이 어쩌다 보니 거간을 따라 기차를 타고 한참 들어간 촌에서 다시 걸어서 산속으로 멀리 들어서있는 광산촌으로 와버렸다.  


처신하는 방법도 모르고, 힘도 그저 그렇고, 순발력도 떨어지는 터라, 기왕 왔으니 한번 해보자라는 식으로 갱부가 되기 위해 하루를 견습삼아 갱부를 돌아다니느라 고생을 하고, 맛없는 밥을 먹고, 자다가는 빈대에 뜯긴다.  주변에서 보면 각이 딱 나오는 터,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듯한 사람은 차비를 주겠다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걸 무시하고 갱부가 되겠다고 굳게 맘을 먹지만, 허무하게도 건강검진에서 떨어져서, 장부정리를 하는 고위직(!)으로 취직이 된다.  그나마 다섯 달 정도를 하고 나와버렸기에 별로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결말이다.  


[게공선]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깊은 묘사 같은 건 없다.  그저 화자의 눈에 비친 막장촌의 모습과 사람들, 그 모든 것들과의 interaction에서 오는 화자의 생각이 가끔 재미있지만, 딱 거기까지.  어쨌든 일곱 번째 [산시로]를 잡고 있다.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정민 선생의 글을 몇 권 앞서 읽은 바 있다.  견해에 있어 그 어조에 있어 내가 동의하거나 공감하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못한 점도 있는데, 내 수행이 부족한 것이 큰 이유지만, 어떤 면으로는 정민 선생도 약간의 꼰대 기질을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나의 감상평이고, 정민 선생의 character는 실제로 아는 바가 없어 정확하다는 것의 근처에도 못 미치는 느낌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싶다.


 













네 글자로 나타나는 고사를 풀어주고 세태평을 하고, 간략하게 선생의 말을 하는 것으로 하나씩 정리가 되어있어 읽기에는 부담이 없고 쉽게 눈에 들어오는 좋은 이야기는 큰 plus.  게다가 책읽기나 공부, 인생에 대한 주옥같은 말도 아주 눈에 쏘옥 들어온다.  하지만, 정확히는 두 건의 이야기에서는 선생 또한 연세와 지위, 거기서 바탕되는 자아를 넘지는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고사에서 강소-절강 일대의 화훼업자들이 매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쳐내고, 꺾고, 매어놓는 것을 미의 기준으로 삼아 주변지역의 매화를 모두 병들게 했다는 이야기가 소개된 후, 공자진이란 사람이 이를 300그루나 사들여 모두 자연스럽게 풀어높고 제멋대로 자라게 하여 치료했다는 것으로 매듭짓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강의 중에 이를 이야기하고 제자들에게 말한다


"글속의 병든 매화는 바로 너희다. 어려서부터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이렇게 하면 좋은 점수 못 받고, 저렇게 하면 좋은 대학 못 가 하면서 이리 꺾이고 저리 비틀리는 동안 본성을 다 잃고 말았다.  어느새 저도 그걸 맵시로 알아 칭찬받을 짓만 하고 취업에 필요한 스펙 쌓느라 바쁘지.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말이야"


이건 언어폭력에 언어도단이 아닌가?  물론 맥락과 강의를 하던 당시의 분위기, 그가 평소에 보여준 모습 등 모든 것을 다 고려하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책에 이걸 자랑스럽게(?) 쓴다는 건 좀 무리가 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요즘 이십 대가 고생하는 건, 그들의 탓이 아니고, 그들이 '병든 매화'가 된 것도 그들의 탓이 아니다.  사회가, 정치가, 기업이, 어른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미쳐야 정상이라고 하는 사회에서는 '병든 매화'가 상등급을 받고 이리저리 제멋대로 다양성을 보여주는 매화는 하급상품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무엇 하나도 이들이 획책했거나 원했던 것은 없다.  그런 이들에게 저만치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이런 평을 하는 건 좀 그렇다.  정민 선생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잡은 혐의점(?)을 뒷받침하는 듯한 이야기가 뒤에서 또 나온다.  "내공은 꾸준한 전공의 힘에서 나오지, 넓은 오지랖에서 나오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스펙 쌓기에 팔려 여기저기 기웃대지 말고 전공의 힘을 먼저 길러야 한다."  이건 개소리다.  현실을 무시했다면 나쁜 것이고, 모른다면 이딴 소리를 할 자격이 의심스럽다.  이런 소리는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할 소리가 아니라, 박근혜나 기업한테 가서 할 소리다.  선생 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면 '내공은 꾸준한 전공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젊은이들한테 자꾸 스펙 쌓으라고 하지 말고 전공과목공부 열심히 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시오!'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이 숙련직 같은 신입사원을 원하는 방식으로 사회비용을 지불하려하지 않는 세태에서 젊은이들이 이런 소릴 들어야할 이유는 없다.


지위가 높아지고 명예나 존경을 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러니까 소위 원로라는 사람이 되어가면 갈수록 더 조심하고 더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범신이나 박 뭐시기라는 시인도 그렇고, 교수들도 그렇고 왜 그렇게 여제자나 여자후배들, 주변의 젊은 여자들에게 술시중을 들게 하고, 성추행을 하고, 심지어는 강간 - 그렇다, 성폭행이라고 하지 말아라.  그들이 제자들을 억지로 모텔로 끌고 가는 건 강간이지 성폭행이 아니다 - 하는가.  진보나 보수, 학계, 언론, 정치, 경제 어디서나 잠재적인 rapist들과 sexual assault로 넘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앞서 읽었던 정민 선생의 책에서도 뭔가 조금 불편함이 있었는데, 결국 이런 세대공감능력의 부재 혹은 모자람, 거기에 초연함으로 가장되는, 멀리 떨어져 훈수만 두고 있는 원로의 사회참여 혹은 인식의 부재로 보이는 그런 이유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민 교수 한 사람에게, 책 한 권의 이야기 몇 가지로 심한 소리를 하는 건 조금 무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리고 좋은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던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글이란 것은 한번 써서 남들이 보면, 그 다음엔 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내가 아무리 다른 이야기를 하고 해석을 하고 변명을 해도 그건 그대로 그만이고, 남들이 보는 평가나 받는 느낌은 내가 어쩔 도리가 없는 법이다.  그래서 옛부터 사람들은 글을 쓰고 나누는 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을 것이다.  


정민 교수에 대한, 아니 이 책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써놓고, 설사 이에 다른 이를 불쾌하게 하고, 욕을 먹더라도 그건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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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24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은 완성되고 나서도 수정할 수 있고, 기존에 쓴 글과 전혀 다른 생각을 정리해서 또 다른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제가 블로그에 쓴 글도 제 것이라 생각하고, 글의 부족한 점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을 결정하는 모습에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후자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글을 고치거나 삭제하는 일은 당연한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명예를 지키고 싶은 작가들은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transient-guest 2016-10-25 00:52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뭔가 위치가 높거나 가진 것이 많은, 소위 기득권이 될수록, 또는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유연함과 멀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번 박범신 작가의 사건도 그렇고, 스승이고자 하는 사람들, 또는 스승으로 사람들이 모시는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이렇게 자기 자신 안에 갇혀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일종의 독단과 독선에 빠져있는 걸 보면서, 새삼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