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사무실의 불을 모두 끄고, 블라인드는 살짝 열어 흐리고 바람이 부는, 지금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하늘을 창에 담아 놓은채, 작은 스탠드만 켜놓고 작업을 하고 있다.  BGM은 '전기뱀장어'의 'Fluke.'  원래 '마지막 승부'가 좋아서 산 건데, 앨범의 노래가 다 수준급이다.  음악이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내 귀에 좋으면 다 듣지만, 이런 전자기타음 가득한 인디밴드 풍의 노래도 참 좋다.  아련한 전자기타의 사운드는 무척 몽환적인 것이 오늘의 내 기분과 날씨에 너무도 잘 어울린다.  


마음이 살짝 아프기도 하고, 뭔가 아리면서, 조금은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내 속엔 아직도 '소년'이 살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으니까.  늙은 척을 하지 않아도 나이를 먹을만큼은 먹었고, 이젠 어지간한 곳에서는 I.D.확인이 필요하지 않다.  속절없이 좋은 시절은 다 갔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는데, 어쩌면,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중에 돌아보면 지금은 한창 봄이었다고 추억할지도 모른다. 


영화 [일대종사]에서 문득 엽문과 궁이의 이야기가 떠올라 잠시 그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 그리고 뒤에 다시 만나서 지나간 인연을 이야기하는 부분을 보고나서 다시 Once Upon a Time in America의 theme이 흐르는 엽문의 회상을 보았다.  이런 날에는 그런 장면에서 살짝 눈가에 안개가 낀다.




20-25페이지 서류에서 15페이지 정도를 남겨놓고 한 페이지를 나가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집중이 잘 되는 날에는 오전 3시간 정도면 2-30페이지는 너끈히 나오는데, 이번 주는 그게 쉽지 않다. 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커피를 마셔도, 일을 해도, 운동을 해도, 그냥 마음은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년마냥, 3년 간 말도 못 붙혀보고 편지만 쓰던 그 시절 그 때의 내가 되어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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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6-10-15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타셔서인가, 소세키의 영향인가 문장이 좋네요.

transient-guest 2016-10-15 06:35   좋아요 0 | URL
가을을 타서 그런가봐요..ㅎㅎ 아니면 지금 읽고 있는 `풀베개` 때문일까요??ㅎㅎ 오늘 같은 날은 일도 하기 싫고 하루 종일 누군가와 수다나 떨었으면 좋겠어요..ㅎㅎㅎ

2016-10-15 06: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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