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날짜로 지난 목요일은 추분이었다. 보통 찾아보면 First Day of Autumn이라고도 하는데, Fall Equinox라고도 나온다. 공식적으로 2016년의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아마 날씨도 이번 주말과 다음 주 화요일까지만 반짝 더워졌다가 이후로는 섭씨 18-24도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떨어질 것이다. 습기가 거의 없는 날씨라서 이 정도면 일출 전, 일몰 후엔 꽤 추운데, 가을비라도 한번 오면 이곳 기준으로는 상당히 쌀쌀해진다. 9월이면 시작되는 NFL Football시즌 개막전은 그래서인지 늘 한 해를 정리하는 4/4분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다가온다. 이번 가을에는 고전과 문학을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현실은 갑자기 손이 쥔 시마다 소지의 작품이다. '점성술 살인사건'을 읽고나서 이 작가도 상당히 괜찮다고 봤는데, 신본격추리소설의 본좌(?)에 실력있는 후배작가들을 여럿 양성하는 등 높은 업적을 인정 받고 있다.
이른바 토막살인은 이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트릭인 듯. 도저히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동시다발적인 사체유기, 용의자는 오리무중, 게다가 아무리 파고들어도 여럿의 용의자가 나오기 힘든 상황. 이걸 정리하는 건, 작가가 창조한 2대 주인공 중 하나인 요시키 형사. 8-90년대까지만 해도 기차를 이용한 여행이 국내여행방법의 주류였을 것으로 보이고, 일본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조금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사용된 트릭은 철도노선과 각각의 정거장이나 속도 및 교차에 따른 것으로 이 방면에 무지한 사람도 그럭저럭 스토리에 몰입할 수는 있지만, 역시 detail을 더 파고들면 더욱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를 조금 더 꼬아놓고, 마지막까지 실마리를 풀어주지 않는데, 시마다 소지의 작품을 보면 이런 구성이 많은 듯.

시마다 소지가 즐겨 사용하는 트릭이나 기법에서 특히 재미난 건 어느 정도의 clue를 주거나 심지어는 범인의 정체까지도 금방 밝혀주고나서 독자의 brain game을 유도하는 건데, 이번의 책에서도 그런 '도전'을 받았으나 역시 난 가볍게 패쓰하고 끝까지 스토리를 즐기는 선에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조작의 대상이고 심지어 일본학계에서도 그렇게 인정되는 부분이 상당한 일본의 고대신화를 테마로 삼았는데, 이즈모 지방의 전설이 일본의 고대사를 집대성했다는 고서기 (거의 위서 수준이지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는데, 역시 이 부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에 사건추리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토막살인이 또다시 등장하고, 또다시 여러 노선의 기차를 이용한 트릭을 사용했다는 점, 요시키 형사가 또다시 등장한다는 점에서 앞서의 작품과 이어지는 부분이 많다.
원래 다른 책을 먼저 읽었으나 같은 작가의 책이고, 또다시 요시키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점, 게다가 또다시 기차를 이용한 트릭이 사용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서, 다음 순서로 정리한다.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가 사건의 당사자에 가깝게 되어버린 형국이다. 이유는 5년 간의 결혼생활 끝에 헤어진 전처가 휘말린 살인사건 때문. 기차에서 발견된 신원미상의 시체가 전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된 요시키 형사는 전처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사건에 매달리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밝혀진 트릭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 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 진자운동의 원리를 사용한 것이다. 소설 초입에 보면 전처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살인사건 (전처의 아파트에서 시체 두구가 발견됨)을 그리면서 위에서 내려다본 아파트의 구조를 보여주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일본 특유의 신파를 보여주는 ending은 조금 귀엽지만, 역시 살짝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요시키 형사도 미타라이 기요시도 등장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은 이야기. 내 나이가 나이라서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는, 과거의 아쉬움이나 돌아올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형식에 쉽게 공감하는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오토바이를 타는 것 말고는 달리 희망도 꿈도 없던 주인공의 19세 여름. 교통사고 때문에 입원해 있었던 병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집 한채. 그곳에 사는 모녀를 살피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주인공은 딸에게 반하고, 일상을 살피는 과정에서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딸에게 홀딱 반한 주인공은 그녀에게 접근하고, 그 과정에서 이상한 일을 겪지만, 연애는 어느 정도 성공. 하지만 이건 그냥 파국을 향해 달리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잠깐 산다화에 수록된 이야기와 겹쳐 책을 찾아서 확인하니까 역시 다른 이야기). 이 책을 읽고서 한참 지나간 시절을 떠올리면서 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한심한 중년이 되어버린 나.
미타라이 기요시라는 점성술사/명탐정과 소설가 이시오카라는 콤비는 아무리 봐도 셜록홈즈와 왓슨을 차용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미타라이의 그 심각한 나르시시즘, 엄청난 실력, 기괴한 지식, 그리고 늘 빈정거리지만 이시오카에 대한 우정과 사랑까지. 홈즈와 왓슨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제목까지도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네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의 에피소드는 왠지 '붉은 머리 클럽'을 닮았다. 이래저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추리, 그리고 그리운 홈즈와 왓슨을 다시 만난 듯한 기분 좋은 기시감까지. 미타라이 기요시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을 찾아볼 수 밖에 없는데, 기대하는 건 추리보다도 미타리아 기요시와 이시오카의 브로맨스(?).
이건 조금 너무 스토리를 길게 가져간 듯. 내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선전에서도 그랬고, 요코미조 세이시가 '팔묘촌'의 모티브로 삼았던 실제 사건 을 배경으로 가져다가 그 후손들이 얽혀드는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 같다. 통칭 츠야마 사건이라는 엽기적인 대량살인사건.
미타라이 기요시가 직접 등장하지 않고, 그와 함께 지내면서 기가 꺾인 이시오카만 혼자 엉뚱한 경로로 사건에 말려들어 엄청난 고생 끝에 사건해결과 동시에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은 트릭과 함께 배치된 재미있는 구성요소라고 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매일 같이 자신이 inferior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천재적인 사람과 살다보면 이시오카처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홈즈와 왓슨의 경우에서 좀더 못난 왓슨과 좀더 못된 홈즈의 관계랄까? '점성술 살인사건'외엔 미타라이 기요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작품을 못 봤는데, 역시 책을 몇 권 더 구해야할 것 같다.
지금 가진 몇 권만 더 읽으면 일단 보유중인 시마다 소지를 다 읽게 된다. 이 중간에 읽은 '혼자 일하는 즐거움'은 나중에 다시 정리할 것이다. 이렇게 추리소설에 둘러싸여 한 주간을 보냈는데, 나쁘지 않다 나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