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팟캐스트로 들은 저자의 강의는 꽤 흥미가 있었다.  꿈보다 해몽이라는데, 예지몽에 머물러 미래를 해석하려는 건 꿈이야기수련의 가장 낮은 단계이고, 매우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후 저자의 책을 읽어보고는 싶었지만, 다른 책을 사면서 순위에서 밀리다가 최근에 구입했다.  강의에서 다룬 그 내용을 거의 그대로 썼고, 따지고 보면 강의자체가 책을 소개하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당시에서 새로운 것은 별로 없다.  하지만, 문자화된 것을 구체적으로 하나씩 읽어가는 것은 강의를 듣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고, 덕분에 맘에 드는 구절에 밑줄을 그어가면서 엊그제부터 간밤에 깬 꿈을 적어보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꿈은 과거/현재/미래가 뒤죽박죽으로 버무려진 무의식의 세계라고 한다.  의식은 이성, 그 이성이 우리의 낮시간을 지배한다면, 무의식이라고 하는 건 우리 마음 속 깊이 들어있는 우리의 본질이라고 한다.  빛과 그림자, 빛이 없으면 그림자도 없고, 그림자가 없으면 빛도 없다는 이원론에 가까운 이야기는 도판이나 뉴에지계열의 신흥사상에서 늘 하는 것이라서 조금 식상하지만, 생각해보면 절대자의 개념으로 이루어진 종교 몇 개를 빼고나면 이런 방식의 이해는 거의 모든 고대종교비의에서 가르치는 것이다.  


꿈을 공부하는 것은 맘을 다스리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 어쩌면 꾸준한 연습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이 감지하는 다가오는 미래를 알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저자가 이야기하는 꿈수련의 목적은 결국은 참으로 자기자신을 찾는 것이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고, 상황의 본질을 받아들이며 이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이것이 꿈수련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어떤 패턴을 보는 것이다.  예지몽이 있다고 믿고, 데자뷰 같은 것도 믿는다.  그러므로 이렇게 매일 꿈을 기록하고 들여다보면서 좀더 그 감각을 기른다면 꿈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알 수 있을까?  호기심이 사람을 망치기도 하지만, 종종 우리가 문명을 이룩하고 발전시킨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음이다.  이상한 쪽으로 빠지지 않으면 된다. 


'소림쌍괴'는 일종의 무협판타지 정도로 읽을 수 있고, 어떤 생각을 유발하는 행간의 이야기도 없다.  딱 그 정도로 보고 즐길 수 있는 정도.  '하급무사'는 '대도오'때의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히 현실세계에 가까운 이야기를 무협의 형태를 빌려 볼 수 있다.  가장 말단의 말단에서 시작해서 말단의 위에까지는 올라가는 것으로 주인공의 '하급무사'이야기는 접고, 다음 '중급무사'에서 이어진다고 한다.  


이 책은 강호의 기연을 얻어 초고수로 성장하는 협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반대로 하루살이 같은 목숨을 부지하면서 국수 한 그릇도 먹기 힘든 자리에서 조금씩 악으로 깡으로 자리를 만들어 올라가는 장천의 모습.  거기서 난 현실을 본다.  세상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까발리되 이를 강호에 옮겨놓고 무협으로 바꾸는 재주가 가장 좋은 작가는 좌백이라고 생각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둘 다 즐기기엔 손색이 없는 수준의 작품이다.


한 주를 내리 달렸더니 영 일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일정을 다 미뤘다.  주말에 조금,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이번 주보다 더 열심히 달리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맘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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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0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지몽의 사례라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특이한 경험을 겪었어요.

주변에 책을 둘러싸인 곳에 있다거나 낯선 헌책방에 있는 꿈을 꿀 때가 있어요. 꿈을 꾼 날에는 헌책방에 가요. 제 기분 탓이지만,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책꿈을 꾼 날에 헌책방에 갑니다. ^^;;

transient-guest 2016-08-07 04:35   좋아요 0 | URL
일종의 예지몽이 아닐까요? 정말 좋은 큐 같습니다. 재물이 생기는 꿈도 주변에서 보면 종종 잘 들어맞는 듯 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