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이 모토지로 전집으로 엮인 두 번째 책이다. 앞서 [레몬]과 마찬가지로 [세야마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여럿의 단편과 미완성원고를 모았다. 역시 앞서 읽은 [레몬]에서처럼 나는 특별한 감상을 느끼지 못하였는데, 작가의 생몰연대를 볼 때 너무도 젊은 사람이 왜 이리도 불안하게, 그리고 정리되지 못한 짧은 삶을 살다 갔을까 라는 의문만 남는다. 다른 책에서 소개를 받은 작가이고 일본의 근대문학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라고 하여, 교양삼아 읽은 꼴이 되어버렸다. 깊은 읽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런 책이 엮어졌다는 사실이 문학사에서 가지이 모토지로의 위치를 보여주는게 아닐까? [세야마 이야기]는 쓰다 만 이야기가 많아서 사실 그리 잘 읽어지는 작품이 들어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문득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는 맘이 들었다.
잔잔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 어쩌다 보니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연달아 두 권이나 읽어버렸다. 평소에는 한 권을 읽기가 힘들었을 책인데, 역시 도서관에서 나름대로 읽을 것들을 가져오다보니 보다 더 다양한 현대작가의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오로지 나의 기준으로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구매하는 책은 아무래도 내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편중될 수 밖에 없는데, 이렇게라도 조금 더 지평을 넗게 갖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소설이나 easy reading에 치우치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고전문학 등 오래 여운이 가는 책은 가능하면 사서 읽고 보관하면서, 가끔씩 꺼내 읽을 생각이라서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은 상대적으로 one-time reading에 가까운 가벼운 소설이나 에세이로 정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유령부부의 이야기가 가장 잔잔한 감동을 주는 면도 있고, 내가 맘에 들어하는 결말이라서 다른 이야기들보다 더 오래 잔상이 남는다. 죽은 친구와의 한때를 추억하는 다른 작품은 좀 슬펐고, 그 외에는 그냥 흥미있게 읽은 정도. 딱 그만큼.
앞서 읽은 전단편집 3권, [음울한 짐승], 그리고 [외딴 섬 악마]까지 모두 너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했는데, 이번의 결정판 1권은 딱 4작품만 들어있어 살짝 아쉽다. 예전의 판본을 복각하는 것이 유행인 듯, 이 결정판 1권도 책을 삼등분해서 각각 마분지로 제본하고 줄로 묶은 흉내를 낸 점이 재미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책이 부서질까봐 넓게 펼치지도 못하고 신주단지를 모신 것처럼 벌벌 떨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는데, 기왕 옛날책을 흉내낸다면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애벌레], [천장위의 산책자], 그리고 [거미남]까지 다 읽어본 작품으로 기억하는데, 다시 읽어도 여전히 매우 그로테스크하고 에로틱하기 그지없다. ebook으로는 작품이 더 나와있는데, 아직은 ebook을 받아들이기 싫기도 해서, 구매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만, 어쩌면 ebook으로 사서 출력한 다음에 따로 제본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한국에서는 김성종 선생 외에는 이렇게 추리에 몸을 던져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가 떠오르지 않는다. 일본의 추리소설이 서구의 같은 장르와는 또다른 재미를 주는 등 온전히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냈다고 보는데, 에도가와 란포 같은 선구자의 역할이 상당히 컸음이다. 1권으로 멈추지 말고, 계속 번역해서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어린이를 위해 만든 20면상 시리즈도 관심이 간다.
에도가와 란포의 팬이라서 다음의 책은 사라지기 전에 꼭 구해야 한다. 워낙 영세하고,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세상이라 언제 절판될지 모른다.
결국 선택의 순간에서 내가 만약 그 상황에 처한다면 로라의 길을 가게 될까. 코플랜드의 결정을 따르게 될까. 참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단순한 활극으로만 즐길 수는 없는 책이다. 그렇게 옳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인생의 어느 시점에 정말 행복해지고 싶었을 두 사람이 있었고, 모든 것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한 명은 이를 잡았고, 다른 한 명은 다시 그토록 벗어나고 싶은 삶으로 걸어들어가버린다. 로라는가그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던 것처럼, 코플랜드는 그 나름대로의 고민과 희생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절대 옳거나 그른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의 다반사니까. 이 소설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10년을 더 살았을 때, 아니, 그 둘이 관속에 누워있게 되면, 그제서야 완벽한 conclusion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로라의 결단이 맘에 든다. 그렇게 박차고 나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진명씨는 매일 민족주의로 포장된 극우의 늪에서 빠져나와 이런 소설을 쓰는 편이 그나마 낫겠다. 나름대로 신선한 발상으로 도박의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여기서 다룬 도박사의 마지막이나 장기를 팔아가면서까지 도박을 하게 되는 막장들의 이야기는 마카오 같은 곳에서는 꽤 흔한 일이다. 그런 street news에 이런 저런 다른 이야기, 특히 주변에서 겪은 이야기를 버무려 그럴 듯한 소설을 만든 걸 보면 이러니 저러니 말이 많지만 김진명씨도 소설쓰는 사람이 맞구나 싶다. 이기기 전에 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도박을 한다는 얘긴 결국 맘을 비우고 욕심을 많이 덜어내면 정직한 갬블에서는 조금씩은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슬롯머신도 아니고 블랙잭이나 포커도 아닌 바카라를 테마로 잡은 건 워낙 그 게임으로 패가망신하는 인간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홀짝이나 다름없는 룰에 매우 빠른 게임회전으로 많은 돈이 오가는지라 한국에서 사건이 나는 조폭, 연예인, 재벌의 도박이야기에는 단골로 등장하는 게임이 바카라이다. 개인적으로 카드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데, 어느 도박이나 그렇지만 카드게임에서 밑천이 많은 자를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올인과 강원랜드의 이야기가 한참이던 시절에 나온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가벼운 책만 잔뜩 읽었는데, 마중물의 역할로는 아주 그만이다. 어제 시립도서관에서 10권 정도를 들고 왔는데, 그들 중 하나. 깔끔한 이야기 3-4개로 이루어진 책인데, 일종의 흥신소처럼 주로 부유층을 멤버로 두고 이상한 사건이나 뒷조사를 의뢰받아 추리하는 것이 탐정클럽의 돈줄이다. 이름도 나오지 않는 혼성듀오가 늘 등장하는데, 이 또한 꽤 신선한 발상이었다. 이 탐정클럽을 단독으로 내세운 장편도 나오지 않았을까? 추리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면 기존의 답변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당연해 보이는 것을 파고, 행간을 따져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소설로 보는 탐정들은 얼추 비슷하게 그런 사고를 하는 것 같다.
여행책은 이렇게 빌려보면 딱 좋다. 한번 보고 다시 보는 경우가 좀처럼 없기 때문인데, 이 책을 읽고나니 더욱 그렇게 생각된다. 가이드 사업을 하는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은 그런데, 깊은 사색이나 고찰로 가득한 여행에세이가 아닌 매우 straight한 영리목적의 책이라고 생각된다. 크로아티나 그 일대는 성지순례로만 다가오는데, 사실 동유럽의 또다른 보석 같은 곳이 구유고슬라비아연방의 땅이다. 아름답고 오래된 도시도, 해안도, 자연풍경에 음식까지 모두 맘에 든다. 여기도 시간내서 제대로 구경해보고 싶은 곳이 되어버렸다.
가벼운 책만 읽으니 1-2시간에 여러 권을 읽게 된다. 길에 곱씹을 내용도 없고, 철학이란 건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만, 재미있으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