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라는 장르에는 거의 문외한이다. 거의 읽은 '시'가 없고, 유명한 시인 몇 분의 이름은 알고 있는 정도가 내 독서에서 '시'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평전이야 재미있게 읽지만, '시' 그 자체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그런 부분에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이런 저런 한국의 고전을 살펴보는데, 차분히 앉아서 음미할 여유를 갖지 못하다보니 역시 그저 그렇다. 백석이라는 한국의 근대 '시' 역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거장의 평전을 읽으면서도 이는 쉽게 고쳐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백석이라는 사람의 삶을 엿보는 정도에서 그쳤으니 모두 내가 부족한 탓이다.
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지금의 아이돌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 생겼다. 키도 훤칠했다고 하고, 셸든 쿠퍼나 하워드 휴즈를 연상시키는 결벽적인 깔끔함에 옷도 늘 수트만 입고 다녔다고 하니, 그는 정말 자기 시대 최고의 멋쟁이였던 것 같다. 그런 외모에,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영어영문의 학위, 그리고 '시'까지. 그런데, 정작 원하던 여인과는 맺어지지 못했고, 조석지간으로 깊은 정을 나누던 기생 '자야'와는 결국 영원한 생이별을 했어야 했으니 그 팔자도 참 기구하다. 물론 그가 집안의 강권에 의해 억지로 결혼했다가 버린 세 여인의 삶도 참으로 안타깝지만.
이토록 천재적인 '시'와 문학에 조예가 깊었음에도 적극적인 '친일'을 하지 않았던 댓가로 꽤 오랜 시간 아무런 작품을 발표할 수 없었고, 해방 후에는 북에 남아 있다가 전쟁 후에도 북을 떠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을 정치화하고 정쟁화하는 공산주의 독재체제의 피해자가 되어 농촌으로 밀려나 평생 농사를 지으며 할았다고 하니, 사랑도 그렇고, 인생의 파란이 참으로 소설 같은 '시인'의 삶이라고 하겠다. 백석의 시를 제대로 읽고 음미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 보니, 자신의 작품세계에서의 한결같음이 맘에 다가온다. 평생 일본어로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고, 어려웠던 시절, 적극적인 친일로 보신한 대다수의 유력한 문인들과는 달리 만주를 떠돌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점은 존경할 만하다. 좀더 백석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31세의 나이로 요절한 일본의 근대 소설가인 가지이 모토지로의 작품집이다. 마음에 전혀 다가오는 바가 없었는데, 사소설의 냄새도 나고, 다자이 오사무 계열의 퇴폐적인 느낌도 있으며, 다른 근대 일본의 소설가들의 글에서 보이는 일상생활에서의 모습도 보인다. 각 작품에 대한 특별한 감회가 없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었는데, '하'권은 좀 더 나을까? 일본의 근대문학을 찾는 노력만큼이나 같은 시대, 우리의 문학의 자취를 따라가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
조금씩 burn-out에 다가가는 느낌이다. 어떻게 하든지, 일을 좀더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게 당분간의 화두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