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을 맨 정신으로 보내는 건 꽤 오래간만의 일이다. 주중의 스트레스는, 아무리 내 개인사업이라고 해도, 그만큼 엄청난 책임과 함께 정신노동과 이제는 피할 수 없는 관리 및 행정노동을 통해 차곡차곡 쌓이고 목요일이나 금요일이 되면 무엇인가 먹고 마시는 것으로 이를 풀어왔다. 아마도 이건 쉽게 고쳐질 것 같지는 않다만, 토요일 아침을 좀더 기분좋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개뿔이고, 내일과 일요일에도 조금씩 필요한 일을 진행시키려면 최소한 오늘밤은 건전하게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들어 자주 소화불량으로 시달리는데, 운동을 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쉬이 풀어지지가 않아서 밤이지만 커피를 끓여 마시고 이뇨작용을 유도하고 있다 (이런 얘기까지 쓰네 -_-,).
장영실이 조선의 역사상 최고의 엔지니어라고 한다면, 홍대용은 최고의 응용물리학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비록 거의 소설에서 나온 묘사로 그를 접했지만, 북경에서 보고 온 파이프 오르간을 그대로 만들어 연주했다는 일화의 반 만큼이라도 사실이라면 그는 천재다. 그것도 셸든 쿠퍼 (빅뱅이론)처럼 과학 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천재가 아닌 그야말로 통달이 무엇인지 보여준 진정한 의미의 천재라는 말씀.
현대과학의 눈으로 보면 틀린 것도 많이 있지만, 성리학에 편향된 교육을 받고 자라난 사람이라면 사유할 수 없는 많은 직관적인 자연과학의 깨우침은 지금의 눈으로 봐도 무척 놀랍다. 이런 천재들이 조선을 좌지우지했더라면 우리가 아는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정조에 투영되기 시작한 개혁전제군주의 이미지는 조금 버겁고, 실제로 전제왕조의 한계는 뚜렷했지만, 그래도 이 시대는 조선이 마지막으로 한 방을 노릴 수 있는 시대였다고 생각하기에 가끔은 아쉽다. 풀어쓴 내용으로 쉽게 읽었는데, 우화를 통해 추상적인 말장난 같은 철학보다는 파격적으로 실증주의적인 자세에 입각한 세상의 이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교양을 위해 한번 정도 읽어볼만하다.
3/12/2016 -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오후에 이어 쓰다가 말고,
3/13/2016 - 써머타임 때문에 한 시간을 빼앗긴 일요일, 역시 일하러 나와 씀.
정조대왕 시대에 잠깐 핀 실학과 개혁군주의 꿈이 우리에게 있었다면, 왜국은 우리 보다 훨씬 더 빨리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다는 건 임진년과 정유란의 왜란을 통해 톡톡히 경험한 바 있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계속 벌어진 격차이다. 사농공상을 신분제의 기초로 한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는 점, 심지어 이사도 맘대로 갈 수 없었던 폐쇄적인 사회였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도쿠카와 막부시대는 일본역사에서 그 유례가 없는 평화로운 300년의 시대였다. 이 평화를 바탕으로, 그리고 우리 보다는 훨씬 더 자유로운 기풍과 한 분야의 실력자를 존중해주는 그들 특유의 문화는 이 태평성대를 통해 (1) 병술보다는 도로써의 검술, (2) 기-화-서-금, (3) 공예, 및 (4) 다양한 산술과 역학을 발전시키게 된다. 이 소설은 그 도쿠카와 시대가 열린 지 3-4대 정도가 되는 시점에서 당시까지 사용해온 당나라 시대의 역학산술에 큰 오차가 생겼음을 발견하고 이를 정리하여 일본 땅과 시대에 맞는 달력을 만들어 내려는 바둑명가 출신의 산술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시대활극(?)이다. 무사가 검을 맞대고, 야규집안이나 핫토리 한조가 나오지는 않지만, 이 새로운 사업을 둘러싼 쇼군가와 천황가의 주도권 다툼, 대로들 사이에서 보이는 세력다툼, 산술시합, 기존의 역학을 주도해온 음양사 집안과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산술가의 대결, 그리고 아주 간결한 절제를 보여주는 로맨스까지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찾아보니 만화와 TV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00년 조금 더 전의 이야기. 옛스러운 방법으로 산과 짐승에 대한 마음가짐으로 사냥에 임하는 '마타기'라는 직업을 가진 자들의 이야기. 이 시절이면 일본은 이미 개화기를 넘어 근대화가 진행된 나라였지만, 산간지방으로 가면 여전히 소작인들은 가난하고, 특히 가난한 산간지방에서는 이런 전문 사냥꾼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 유일한 삶의 방편이었다고 한다. 변화도 좋고, 무엇도 좋지만, 요즘 같이 복잡한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대를 잇는 삶이 주는 안정감도 좋아 보이기는 한다. 물론 현실은 늘 굶주리고, 하다못해 촌장이라도 누군가 늘 위에 군림하는 삶이고, 마을에서 쫓겨나기라도 하면 평생을 떠돌아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 주인공도 그렇게 '마타기'에서 광부로 전락했다가 다시 '마타기'로 돌아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겪는 모험도 그렇지만, 또다시 묘한 로맨스와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 만들어주는 '썰'이 그야말로 산짐승의 냄새가 풀풀 난다고 하겠다. 화려한 수상경력이 그리 의심스럽지 않은 좋은 작품이다. 다음 '낭만픽션'이 기다려진다.
이렇게 힘들지만, 결국 몇 권을 더 정리했다. 그런데 아직도 세 권이 남아있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3/7주간에는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기 때문에 그나마 세 권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백가흠, 김탁환. 이들 중 하나의 작품도 쉽게 정리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고민과 행복이 교차하는 이 순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