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한번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벌써 2월이다.  나이가 들면서 시간을 블록으로 나누어 보는 관점이 생겼는데, 3월이면 벌써 한 해의 1/4이라는 식이다.  멀리 LA에서 SF를 운전하고 다닐 때에도 분기를 나눠서 시간/거리를 보면서 지루함을 견뎠었는데, 아마 시간을 블록으로 나누는 버릇도 그 즈음에 생긴 것 같다.  직장이라는게 원래 놀러가는 곳은 아닌데, 당시 남의 집살이가 참 힘들었던 모양이다.  이상도 재화도 시간도 보람도 없었던 LA시절, 그래도 좋은 분들을 몇 알게 되어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평생의 밥벌이도 이때 솜씨를 키운 것인데, 이건 회사의 덕보다는 내 덕이 더 크다는게 나의 의견이니까, 특별히 고맙지는 않다.  아무튼, 이런 계산으로 하루의 업무를 진행하고 결과를 내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한 해의 반 정도는 정말 금방 지나가버린다.  


77권까지 드디어 독파했다.  그런데, 막판으로 가니까, 한 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소품집처럼 짧고 흥미있는 이야기들로 단편집이 꾸며져 있다.  지금 읽고 있는 78권도 그렇고, 이런 방식으로 짜여진 것도 꽤 좋다.  특히 예전에 등장했던 인물들을 짦게 다시 만나는 기분도 묘하다.  잠깐이지만 새터스, 할리 퀸, 갑자기 떠올리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해결사 양반까지, 2년 하고도 반은 넘는 시간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게 된 것 같은 반가움?


분명히 잠시 캐드펠을 읽지 않으려고 했다.  뚜렷하게 반복됨에 따른 패턴의 지겨움 내지는 익숙함 때문이었는데, 다시 붙잡게 되었다.  그간의 진행도 궁금했고, 복잡한 머리를 풀어주기 위해서이다.  같이 시기에 읽기 시작한 '흑사관 살인사건'은 동서동판이 아닌 다른 출판사의 번역인데, 여전히 읽기에는 버겁다.  일전의 판본은 번역의 문제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저자가 글을 쓰는 방식의 문제가 더 큰 이유인 것 같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다시 이 시리즈를 잡았는데, 크리스티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 역시 끝가지 가볼 생각이다.  


1편에서 시작된 내전은 계속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복잡한 상황에서도 상속, 영토확장을 위한 정략결혼 같은 소규모의 음모는 계속 이어진 모양이다.  여기에 황후를 위해 차출된 재화를 전달하기 위해 탈출하였으나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은 -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여기에 영지를 탈출한 농노가 함께 일종의 생계형 사기행각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부수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등, 전쟁은 비껴갔지만, 시루즈베리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역시 추리보다는 시대극을 읽는 마음으로 즐긴 작품이다.  


황후에게 불리한 전황이 계속되는 동안 이를 돕기 위해 모인 재물을 품고 포위된 성을 탈출했던 밀사가 재물과 함께 사라진 사건, 부근의 왕당파 영주의 아들이 수도원에 맡겨져 있는 동안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영주가 죽고, 손자를 데려다가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할머니와 아이를 보호하려는 수도원의 대립,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성인'같은 은수자와 그의 종자, 농노를 잡으러 온 다른 지역의 영주와 그의 아들, 그리고 매 사냥꾼.  이들이 이번 책의 배경이자 사건을 구성하는 인적 요소라고 하겠다.  


보통은 둘 중 하나가 싫어했을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한 정략결혼이 사실은 당사자들 모두가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해준 작품이었는데, 현대판 왕후장상이라는 재벌가나 고위 정치가집안의 정략결혼도 이런 형태가 아닐까 싶다.  공공연히 서로 맞바람을 피우고 부부관계만 유지시킨다는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데, 그럭저럭 맺은 부부간, 일종의 동맹이라고도 하겠다.    


생각이 조각조각 나서 좋은 flow를 가진 글이 나오지 않는다.  서평이 무엇인지, 독후감은 또 무엇인지, 이들을 잘 쓰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잘 쓰는건 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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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기 2016-02-11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 독파! 진심 축하드립니다.

transient-guest 2016-02-12 03:53   좋아요 0 | URL
거의 다 왔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 이제 한 권 남았네요. 마지막 몇 권이 계속 단편집이라서 진도가 빠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