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정민 교수가 쓴 책을 읽은 것이 기억난다. 그땐 이런 느낌을 받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맘을 감출 수가 없다. 일본학자들에게 보이는 호의, 그것도 일제강점기시절의 이마니시 류나 후지츠카 치카시에 대한 호의를 보이는 모습 때문이다. 잠시 찾아보니 후지츠카 치카시는 일제강점기 중국-조선-일본의 과거문화교류를 연구했고, 추사에 심취해서 추사에 대한 자료를 일본으로 가져간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강점기시절, 문화유산을, 비록 연구라는 명목이지만, 잔뜩 가져간 사람이지만, 죽은 후 그가 모은 추사관련문물이 유언에 의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덕분인지, 그가 모았기 때문에 미국의 폭격에 사라진 다른 문화유산에 대한 책임이나 기타 다른 문제의식이 없이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정민 교수도 이와 마찬가지로 최소한 일정한 학문적인 테두리 안에서 그를 좋게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런데, 후지츠카는 조선사편수회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와니시 류와 친했던 학자인 듯 하고 (정민 교수에 의하면 이와니시 류의 책인지 무엇인지가 몽땅 후지츠카에게 넘거간 듯 하니 꽤 친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와니시 류 만큼이나 한국 근대사의 학맥에 그늘을 깊은 그늘을 드리운 사람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이들에 대한 정민 교수의 글에서 풍기는 친근함이 불편하여, 난 혹시 정민 교수도 한국에 종횡으로 퍼진 친일교수에서 이어진 학연에 속하는지가 책을 읽는 동안 계속 궁금했었다. 공부와 독서에 대한 좋은 내용, 자료를 모으고 보관하는 방법, 자료에 대한 자세 등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마음 때문인지 한동안 리뷰를 쓰지 못하다가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 잠시 적어본다. 내용을 조금 더 보강하려면 책이 있어야 하는데, 사무실에 있어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어렵지만, 이 책에서 짚어준 것들은 매우 유용한 내용이라서, 나의 이런 편견어린 평가가 조금은 박하기도 한 것 같다만, 어쩌랴. 한국을 떠난지도 벌써 24년이 넘은 지금에도 일제강점기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왜세의 깊숙한 한국침투를 보면 화가 나는 것을.
누군들 안 그랬겠냐만, '세월호 참사'는 작가로써, 인간으로서의 김탁환의 영혼 깊숙한 곳에 무엇인가를 건드린 것 같다. '목격자들'이란 소설에서 조선의 사건을 빗댄 풍자도 그랬지만, 이번의 산문모음에도 2014년 이 때를 기점으로 그의 글에서, 말에서, '세월호'가 떠날 수 없음을 보기 때문이다. 이제 곧 2주기가 될 이 끔찍한 사건은 아직도 그 배후와 정황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못했고, 유병언과 선원들만이 속죄양이 되어 형을 받았을 뿐, 해경과 해수부를 비롯한 진짜 책임자들과 그 배후일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는 국정원과 선사와의 관계와 책임소재는 정부여당의 조직적인 방해로 인해 전혀 수사되지 못하고 있다. 사라진 7시간의 문제도 그렇고, 언젠가 모든 사건사실과 정황을 바탕으로 르포타쥬가 나옴직한 한국현대사의 너무도 많은 미스테리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김탁환이 읽은 책과 세상이야기를 섞은 부분 외에 이번의 책에는 뚜렷하게 깊은 내용은 보지 못했다. 이런 저런 밑줄은 습관적으로 그었지만, 역시 깊은 울림을 주지는 못했는데, 가끔씩 김탁환의 소설이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이유다. 간혹 묵직한 글을 지어내기도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더 가야할 것만 같은 그의 소설가로써의 완성으로 가는 길에서 더욱 좋은 소설이 나와도 기쁘겠고, 지금처럼 예전의 유수작품들을 다시 출간하는 것도 좋겠다. 내가 구하지 못한 '압록강'은 언제 나오려나?
'스토너'는 정말 아직도 글을 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아무래도 영문판을 구해서 다시 읽어본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참 제대로 마주보기 힘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