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더빌 여행기는 그 표지만큼이나 기상천외한 상상력이 동원된 이야기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행기에서 다룬 내용이 모두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보기에는 그 출처 또는 최소한 그 모티브가 너무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묘사들이 많다.  이런 경우 늘 그렇듯이 일부 사실과 일부의 상상력이 결합되어 정보로 커버되지 못하는 부분은 작가의 세계관에 기초한 상상력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저런 기괴한 묘사는 사실 그것을 다시 한번 축약하여 다룰만큼 흥미롭지는 않다고 생각 하는데,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이미 신화나 다른 옛날 책에서 어느 정도 접해봤기 때문이라서 그런지 그리 새롭다거나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상상과 현실정보가 결합된 묘한 과거의 베스트셀러에서 보이는 몇 가지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1) 지구가 둥글다는 개념이 컬럼버스보다 거의 200년 정도나 앞서 정립되었고 퍼져있었다는 점.  책의 독자층이나 선원들 뿐만 아니라 맨더빌 여행기에 모티브를 준 많은 이야기들에서 이미 세상을 한 바퀴 돌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추론은 어느 정도 사실로 받아들여졌을 것 같다.  종교가 세상의 모든 원리를 지배하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금서가 되었거나 저자나 독자가 화형에 처해졌다는 이야기는 없으니까, 보편적으로 유통되던, 그리고 그런 관점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 듯.


(2) 지도의 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우리가 아는 지금의 지도와 비슷한 모양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 또한 놀라운데, 이건 피리 레이스 제독의 지도라든가 소위 '미스테리'에서 즐겨 거론되는 고대문명의 잔재나 전승이 어떤 형태로든지 이 시대까지 내려왔다고 생각하면 그리 놀랍지는 않다.  


(3) 사제왕 요한.  일설에 의하면 라마교의 시작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결정된 초기 기독교의 일파라는 말이 있는데, 가톨릭 신학대학교에서 석사과정까지 수료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건 어느 정도 사실로 인정되고 있는 듯 하다.  그렇다면 사라센인들의 세계를 지나 동쪽의 끝에 있다는 사제왕 요한의 왕국은 라마교를 국교로 하는 티벳의 왕국을 묘사하는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4) 몽골제국의 "기독교 신자"설.  이것도 어디선가 봤는데, 원나라의 국교로 채택된 라마교와는 달리, 쿠빌라이칸이 다스리던 시기, 동방정교회 일파의 전도에 의해 쿠빌라이칸을 비롯한 귀족 등 상류층의 다수가 개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공식적인 국교의 라마교의 탄압, 그리고 이를 이용한 권력싸움 등을 통해 나중에는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정사유무를 떠나 그런 이야기를 맨더빌 여행기를 통해서 다시 접하게 되어 살짝 놀랐더랬다.  


내용의 상당부분은 현실과 거리가 있지만,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모험담이나 소설 이상, 이 책이 나오기 전부터 전승되어오던 여러 이야기들과 다른 여행기들을 충실히 계승하는 사료로써의 가치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본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다소 지루한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교양독서의 역할도 톡톡히 한 듯.   


가업을 잇는다는 건 어느 면에서는 답답한 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꽤나 낭만적인 부분도 없지는 않다.  처음부터 전통이 있는 가업은 없다.  그저 아버지에서 아들로, 그 아들에서 손자로, 이렇게 이어지다 보면 흐르는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라남은 가게는 전통과 현 세대의 노력이 어우러진 노포가 된다.  조선에서 구한말로, 그리고 일제강점기, 해방, 내전, 그리고 지난 50년 간의 다사다난했던 시절을 개발 일변도로 살아온 한국에는 이런 것들이 거의 사라져버린 아쉬움이 있다.  계속 부수고 몰아내는 것이 국가산업의 근간이라고 굳게 믿는 토건족들과 그 지지자들의 머릿속은 마치 총기사고로 아무리 많은 사람이 죽어도 총기규제를 반대하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그것들과 같다고 보는데, 이 사고방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통일이 되어도, 아니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토의 100%를 시멘트로 덮은 후에라도 옛 모습이 남아나지 못할 것 같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서.  가업을 잇는다는 낭만도 그러나 당사자들의 이해가 얽히면 참 괴로운 일이 될 것인데,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사정을 보면 정말 힘든 선택, 그리고 이에 따른 난관이나 포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메밀소바집 아들 X, 같은 지역 출신으로써 막 커리어가 시작된 사진사 Y.  둘이 행복한 결말을 맺으려면 둘 다, 또는 둘 중 한 사람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하필 둘 다 이어져야 하는 가업이 있는 집안의 출신이라서, 설사 둘이 함께 도쿄에서의 꿈을 던지고 귀향하더라도 함께 살면서 가업을 잇기는 어렵기 때문에 최소한 한 사람의 가업은 단절될 수 밖에 없다.  open된 결말은 따라서 이런 부분을 시원하게 해결해줄 수 없고, 두 사람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상상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는 아주 좋다.  무엇인가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하는 것이 비록 때에 따라서는 너무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소설을 계속 읽게 만든다.


버트럼 호텔은 하나의 무대장치다.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과거시대의 재현을 통해, 외국인들에게는 영국적인 환상을 제공하는 이 무대는 연극배우출신 직원들의 연기로 더욱 완벽해진다.  이 설정과 여기에 얽힌 범죄 이야기는 어느 정도 흥미가 있다.  하지만, 내 관심을 끄는건 아직까지 살아있는 미스 마플의 이야기다.  자신이 귀여워하던 아이였던 대주교가 죽고  한참 뒤에도, 많은 동년배 친척들이 세월속으로 사라진 후에도, 심지어는 풋내기 경찰 신입이 은퇴한 늙은 총경이 된 지금에서 미스 마플은 살아남아 변화속을 살아가고 있다.  친척이 살던 멋진 맨션이 공동주택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또다른 집은 완전히 헐리고 그 위에 아파트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대착점에서 그녀는 살아간다.  그 모습에서 아련한 추억과 쓸쓸함을 느끼는 건 이 시리즈를 1권부터 붙잡고 2년이 넘는 지금까지 읽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은 후에도 계속 남는건 지나간 시절에 대한 여운뿐이다.  약간의 과장이 섞여 있기는 하지만, 분명 그런 감정이었다.


12월도 열심히 달리는 중이다.  금방 내년 1월이 될 것만 같아 연말의 느긋함 같은건 이번 해에는 느낄 수가 없다.  조금 더 열심히 살고, 조금 더 키워서 내후년부터는 천천히 그렇게 여유를 찾을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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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2-0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맨더빌 여행기>를 빌려서 읽었는데, 책표지가 민망하게 느꼈습니다. 태양을 가리는 거대한 발이 이상하게 남자의 그것이 연상되었거든요. ^^;;

transient-guest 2015-12-08 02:53   좋아요 0 | URL
좀 그런 감이 없지는 않지요.ㅎㅎ

LAYLA 2015-12-08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년식당 보관함에 담았어요. 가업을 낭만적으로 볼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드네요.

transient-guest 2015-12-08 02:54   좋아요 0 | URL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분명히 오래 이어지는 전통의 가업에는 그런 낭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경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야 그렇겠지요..ㅎ 재벌이나 정치인의 자산승계에 낭만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