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 자계서를 꽤 많이 읽었던 때가 있다.  당시만해도 한국은 자계서의 출판붐의 초기에 있었고, 그럴듯한 포장과 메시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처해 있었던 상황이 나를 자계서로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꽤 좋은 책도 있었고, 현실에 적용할 만한 이야기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들 중 몇 권은 비록 지금은 내가 자계서를 비판하는 입장과 나이, 그리고 인생의 한 시기에 있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게 기억하고 있다.  역시 지금은 좀더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당시만 해도 꽤 괜찮게 보던 작가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지금은 조금 더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땐 그런 안목이 없었던 것 같다.  일단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땐 무엇이든 달려들어 닥치는대로 읽고, 생각하고 도전하게 되는데, 그런 시절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와서 보니 자계서를 읽는 사람이 성공하는 확률은 매우 낮지만, 베스트셀러가 되는 자계서, 아니 어느 정도 독자층을 확보하거나 이름을 알리는 수준만큼만 성공한 자계서의 경우라도 결국 이들을 읽는 사람보다는 쓴 사람이 그나마 좀 잘 풀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자계서 자체가 어떤 수단이 되어 버리는 일종의 주객이 전도되는 결과인데, 상당수의 자계서 작가들이 이런 저런 이름의 강의를 다니면서 밥벌이를 하는 것을 보면 역시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까 성공한 사람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계서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많은 자계서들은 그 자계서의 성공을 통해 작가의 커리어를 키워준다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허탈하고 허망한 소린데, 요즘에는 이런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계서가 나오고, 새로운 작가가 등장하며, 강의판에 나타나는걸 보면 red는 red대로, blue는 blue대로 물고기가 잡히긴 잡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일찍 퇴근해서 느긋하게 반나절을 좀 퍼질러 있다가 급한 일 때문에 다시 나와서 이제 wrap-up중이다.  연말연시에 선물로 세일할 때 조금씩 와인을 사모았는데, 오늘 배송된 것들 중 한 병이 내 실수로 깨지고 덕분에 방은 시라즈를 숙성시키는 와인셀러 같은 냄새로 가득하다.  그리고 방에 자리가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자각하고서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reception과 maintenance 및 manager에게 주려던 와인을 그냥 오늘 돌렸다.  좀더 dramatic하게 주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하게 되어 살짝 속상했지만, 그래도 다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아무튼 이래저래 이번 주는 또다시 책읽기를 거의 못하고 있는데, 바쁜 탓도 있고, 몸이 아픈 탓도 있고, 마침 잡은 책이 지지부진하게 진도를 나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올린 두 개의 글이 모두 부정적인 뉘앙스인데, 박씨의 일은 내 탓이 아니고, 이 글은 조금은 내가 여러 가지로 맘이 차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oh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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