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해서 광고성 페이퍼나 리뷰 또는 제목에 낚이지는 않는 편인데, 최근에서 몇 권을 정확히 말 그대로 낚여서 읽게 되었다. 이런 책을 읽고 궁시렁거렸던 것이 최근의 일인 듯 한데, 이번에도 또 푸념할 일이 생겼다.
자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종용하는 방법론적인 가르침을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의심스럽다. 아마존 베스트셀러라는 낚시는 책을 사고나서야 눈에 들어왔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라는 거창하고 멋진 제목에 제대로 걸려들었다고 생각된다. 혼자 여행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 여행지에서의 일화, 이런 것들을 기대했건만, 본질은 자계서에 가까웠던 것이다.
어제 본 'Wild'는 책으로 먼저 유명해졌는데, 한 여자가 인생의 전환점 삼아 석 달간 Pacific Crest Trail이라는 엄청난 코스의 hiking trail을 혼자 겪어낸 이야기다. 영화의 영상미보다는 오랫만에 본 리스 위더스푼의 진지한 연기가 좋았고, 혼자 정처없이 걷고 싶게 만들어준 영화이다. 산티아고 순례 말고도 생각해보면 미국에는 걷기 좋은, 그리고 적당히 모험을 할 수 있는 장기 hiking trail이 널려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다리가 튼튼할 때 해볼 수 있는 여행이련데, 아주 짧은 2-3일 짜리부터 도전해보면 좋겠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시작하면 여기에 올릴 것이다. 아무튼, 하고 싶은 얘기는 '내가...'를 읽느니 'Wild'를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이 훨씬 더 낫겠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책은 가급적 끝까지 읽자는 원칙에 따라 억지로 끝을 붙잡고 있었는데, 화장실에서 보내는 고요한 성찰의 시간이 이 책과 함께 한 오늘 아침처럼 괴로웠던 적이 또 있었을까? 별점을...글쎄...별점을 줘야하나?
좋다. 재미있었다. 푸와로를 만나니 참 반갑더라. 이 정도로 요약되는 나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후기는 이번에도 그리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잠깐 심령학적인 이야기 전개가 의외였고, 헤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간호사가 마치 빙의가 될 것 같았던 부분에 대한 부정이나 청소 없이 넘어간 점에서 이 시기의 크리스티 여사는 강신술이나 영매에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라는 의심을 하게 했다. 여전히 성동격서 겪의 적절한 은폐와 엄폐를 통해 plain sight에 있었던 범인을 감추는 기술이 참으로 빼어난 작가라고 생각된다. 아주 마지막까지 전혀 의심할 수 없었던 범인은 결국 '그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주말에 읽을 책 몇 권을 추려서 퇴근할 생각이다. 몸이 좀 안 좋은데, 목이 부은게 어제 술을 마셔서 완전히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 같다. 한 주 정도는 항생제를 먹어야 할 듯. 미국에 와서 감기 때문에 항생제를 먹는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도 늙은 것이다.
늙었다는 소리를 한 동안 하게 될 것 같다. 어인 일인지 이번 해에는 그런 느낌을 떨치기 힘든데, 아무래도 더 자주 아프고, 다치고, 힘이 빠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채식을 하면 좋아지려나? 아니면 요가라도 해야하나? 일단 BJJ를 시작하고 싶은데, 어깨가 영 좋아지지를 않는다. 병원부터 찾아봐야 하나? 스포츠 의학 방면으로 솜씨가 있는 곳을 일단 좀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지같은 뉴스 때문에 일상이 우울하지만, 모두들 힘내서 싸워 이겨 나갑시다. 안되면 이곳에 알라딘 마을 같은 것을 만들어서 서친들 위주로 이민을 올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제가 이쪽 일에 솜씨가 쬐끔은 있다구요. 모두들 희망을 잃지 말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