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읽었는데 잊어버리기 전에,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리다가 한꺼번에 몇 권을 읽어내면,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읽은 책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거다.  잠시 앉아서 머릿속을 후비면 조금씩 다시 생각이 나기는 하지만, 페이퍼 형식이 아닌 리뷰로, 읽으면 바로 한 권씩 남겨야 하는건가 싶다.  어제 분명히 뭔가 써보고 싶은게 떠올랐는데, 운전하는 중이라서 적어놓지도 못하고 이제서야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손가락을 통해 뇌를 자극해보고 있는 중이다.  


나이가 들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은 나도 내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처럼 전문성과 다년간의 습작이 갖춰져야 하는 경우는 좀 어렵겠지만, 에세이나, 논픽션은 아이디어 구상과 자료조사, 그리고 약간의 글짓기 실력이면 일단 도전은 가능하다고 본다.  또 내 전문분야에서의 책도 한번 써보고 싶은데, 이것도 아주 어렵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어제 구상한 것은 자료조사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과 책을 통하면 하나씩 정리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고전이나 다소 복잡한 책은 모두 가을-겨울로 미루는 듯, 무의식적으로 쉽게 읽히는 책만 잡고 있는 요즘은 편향적인 독서가 조금 걱정된다.  뭘 읽었는지 하나씩 따져봐야지.

예전에 제목으로만 보고 지나친 후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흐린 지금에서야 드디어 읽었다.  '백주의 악마'라는 제목은 꽤 무시무시한데, 난 지금도 이 제목에서는 턱시도를 입은 악마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근데, 그게 멋지거나 악스러운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joker와도 같은 기괴함으로 가득하여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런 모습이다.  피를 철철 흘리는 귀신보다는 음산한 사다코 같은게 더 무서운데, 그보다 더 나를 떨게 하는건 joker -배트맨의 Joker가 아닌- 의 얼굴이다. 너무 멀리 있는 존재보다는 그렇게 가까이서 찾을 수 있는 기괴함이 훨씬 더 무섭다.

휴양지에서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쉽다는 전제를 한다.  세계 곳곳에서 대다수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한 철, 오로지 한 가지 목적으로 모이는 곳이다보니, 그렇게 다수와 함께 잠입하여 휴양객을 가장하고, 타깃을 노리면 범행동기를 찾기 힘들다는 말이다.  이 전제에 충실하게 과연 범인은 희생자의 주변인물이었음이 밝혀지는데, 문제는 이 관련성을 찾아내는 과정이 그리 detail하고 convincing하게 그려지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어디까지나 연상추리를 하고, 모자라는 fact는 뒷조사를 통해 알아냈음을 인지할 정도가 아닌 이상, 그저 드라마를 즐기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도 이제 79권에서 25권이 남은 전집 정주행이다.  지금 55권째를 읽고 있다.  최소한 55인 이상의 죽음과 (평균은 그 이상) 사건해결을 witness한 셈이다.


역시 라이트노벨의 한계라고 봐야할까.  스토리가 조금씩 늘어지고 진부해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본근대문학을 테마로 하여 사건을 구성하고 풀어가는 솜씨는 여전하다.  이 책 덕분에 일본의 근대문학에 대한 새로운 흥미도 갖게 되었으니까, 살짝 고마운 맘도 있고 하니, 앞으로도 계속 읽을 것 같다.  전 권에서 이어지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토대로 한 이야기 덕분에 몇 가지 더 궁금한 책이 생겨버렸다는 점.  지갑이 가벼워지는 소리가 들린다.



오자와 세이지라는 일본의 유명한 피아노 연주자 겸 지휘가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나눈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대담집.  일단 너무 아는게 없어서 책의 내용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뭔가 클래식 음악에 기초적인 지식과 경험이 좀 필요한데, 최소한 이들이 나누는 주제가 되는 음악이 뭔지는 알아야할 듯.  그간의 투자와 팬덤 덕분에 소소하게 알아본 이름도 좀 있지만, 역시 음악에 대한 이야기의 감성을 그대로 느끼기에는 무리였다.  


문학수 기자의 '클래식'을 읽으면서 이번에 본 두 번째 엮음에서 소개된 음반을 하나씩 구해서 들어보고 있다.  겨우 두 번째 이야기까지 커버하는 분량의 음반을 구했는데, 과연 설명을 보고서 듣는 느낌, 그리고 연주와 구성이 좋다는 악단이나 연주자의 솜씨로 듣는게 렌덤하게 아무런 배경이 없이 들었을 때보다 훨씬 강한 감동을 준다.  좀 크게 틀어놓고 들어보고 싶기도 한데, 이담에 여유가 될 때에는 하루키의 재즈이야기를 중심으로 음반을 구해서 들어봐야겠다.  amazon과 ebay가 있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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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2015-07-2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글이 올라와서 냉큼 들어와서 읽고 가요. 늘 transient guest님 글은 기분 좋게 읽어요. 읽고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서 그런 듯 해요. ㅎㅎ 지갑엔 날개가 없으니까 , 자꾸자꾸가벼워져도, 날라가 사라져버리지는 않을 거예요. 많이 (사서 ㅎㅎ ) 읽으시고 , 시간 나시면 글 자주 써 주세요. ㅎㅎ

transient-guest 2015-07-28 01:55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책을 자꾸 사들이는 건 조금 병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담에 노년의 삶을 위한 투자라고 위로하고 있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