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왔을 때의 광고와 다른 평가글을 몇 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 사야지 하면서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 최근에와서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기대했던 만큼의 감동이나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도입부에서 나오는 저자의 서재, 그의 도서관 이야기, 그리고 낮과 밤에 따라 바뀌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상징과 표징, 그리고 모습, 그러니까 낮의 정리된 차분함과 대비되는 밤의 혼돈성을 묘사한 표현 같은 것들이 아주 깊이 다가와주었다. 그 덕분에 앞 부분을 여러 번 읽으면서 뒤로 넘어가는 것을 미루기도 했다.
뒤로 갈수록 앞서 읽은 그의 다른 책과 비슷한 풍의 글과 정리로 조금 지겹게 느꼈는데, 제한된 소재를 갖고 글을 쓰는 특유의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이의 도서관도 좋고, 무엇도 좋겠지만, 정작 저자 자신의 공간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괜한 심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내내 떨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면 나 또한 사사로이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서재의 공간 속속들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책의 모든 것을 공개하는 것이 껄끄럽게 느껴질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해를 해보게 된다. 사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야 무에 그리 문제가 되겠냐만,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내 사고와 마음의 속살같은 책 전부를 보여주는 것은 주저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빌려달라'는 말을 듣기가 싫고, 거절함을 그저 '쪼잔함'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얕은 사고방식이 피곤하기 때문이다. 이담에 더 나이가 들면 이불선생 -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않는 - 이라고 별호를 짓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목요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오하우에 다녀왔는데, 가는 비행기에서 읽어낸 책이다. 잘 읽히기도 했고, 비행시간이 길어서 중간에 낮잠을 자다가 깨어난 후에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들여다보니 금방 끝장을 넘기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고도 16년이 넘은 시점에서 원점으로 돌아가서 당시 관련자들을 탐문하여 그 내용과 정황을 갖고 회색세포를 이용하여 추리해낼 것을 의뢰받은 포와로의 일인극에 가까운 이야기. 한명씩 등장인물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반응과 우연으로 지나칠 수 밖에 없는 정황을 정리하여 준 덕분에 나도 스토리의 끝 무렵에는 범인이 누구인지 생각해낼 수 있었다. 물론 정확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구술할 수는 없겠지만, 난 등장인물이 아니니까, 주어진 것만으로 그 정도의 추리를 이끌어낸 것도 나로서는 꽤 대단한 경험이다. 이제 30여권 정도를 읽으면 이 시리즈를 한번 모두 읽어내는 것이된다.
왠지 다른 모음집으로 이미 읽은 내용들이 많이 기억나는데 아마도 해인시리즈에서 다뤄진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슐러 르귄의 작품은 언제나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에 절판되기 전에 모두 구할 것을 권한다. 나도 아직은 번역된 모든 책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조금씩 그렇게 사모으고 있다. 절판되기 전에 어스시 이야기를 구한 것은 천만 다행이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절판되어도 상대적으로 한국인 독서인구가 적은 이곳에서는 구할 수 있는 책들이 좀 있을지도 모른다. 담에 시간이 넉넉한 주말에 LA로 로드트립을 다녀와야지라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올림픽길에 위치한 LA 알라딘에 가면 좀더 많은 책들을 그 자리에서 보면서 구할 수 있다는데, 내가 거기에 있을때엔 없던 것들 중 하나라서 매우 궁금하다.
보통 SF에서 우주인이나 외계행성, 광속여행 같은 것을 다룰때에는 거의 대부분 엄청난 문명의 발전으로 인한 말 그대로 SF적인 것들이 주를 이루는데 비해서, 르귄의 작품에서는 어떤 주도적인 중앙의 문명연합체와 아직 그 수준으로는 가지 못한 다양한 지적 생물체들과의 조우를 다루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문명의 입장과 관점에서도 다뤄지지만, 이런 이야기의 진정한 재미는 아직 근대적인 의미의 과학기술이 없는 시점의 외계인의 시점에서 나오는 외계연합에 대한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의 조상들이 우주인을 만났던 적이 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런 의미로 말이다.
American Sniper후기는 여전히 구상중이다. 아무래도 영화를 봐야 좀더 완벽한 이해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