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비교적 fair하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그런 면에서는, 나도 남들과 꽤 비슷한 사람이다. 박봉의 직원의 월급을 쥐꼬리만큼 올려주는 조건으로 건강보험을 빼앗는 인간을 하나 알고 있는데, 인생의 모든 것은 deal이고, 누구라도 그런 상대로만 보는 그 또한 자신은 매우 fair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꽤 많다. 천만관객을 넘은 추억몰이 덕분에 박근혜씨 일당의 복고정치도 잠깐 좀더 신나가 미쳐돌아가려고 했던 것 같다. 민간차원의 국기게양을 의무화한다거나 국기의례를 강제화하는 취지의 의견이 돌아다녔는데, 누울 자리를 보면서 발을 뻗는다고 그럴만하니까, 그런 에널서킹이라도 하겠다고 나서는 인간들이 있는 것이다.
난 영화 '국제시장'을 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다. 생각해보면 꽤 괜찮을수도 있는 추억담에 good old days 또는 그땐 그랬지하면서 충분히 재미있게 봐줄 수도 있겠지만, 그런 감정 자체를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서 느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산업역군은 남자들밖에 없었나? 세상사람들 전부가 박정희씨의 영도아래서 잘쳐먹고 살기 위해 바둥거렸던가?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은?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북풍조작의 일환으로 사형당한 사람들은? 아무나 잡아다가 고문하고 감옥에 넣던 시절의 진상은? 그 주역들, 아직도 살아남아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김기춘과의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빼놓고서 아버지 시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면 순진한 이야기를 하는 감독을 이해해줄 도량이 내게는 없다.
적어도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않나? 국뽕급의 추억담이 아니라, 그 시절의 적나라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이야기를 볼 수 있었음이다. 시대의 바꿔가면서 이어지는 백수-만수-석수, 금희-명희-옥희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 수많은 인간군상의 다양한 면을 그려내는 성석제 작가가 새삼 위대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나오는 이야기는 '좋던 시절'의 그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삶은 늘 고달펐다의 이야기도 아니고, '이제 됐지요? 나 잘했지요?' 따위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투명인간', 사람이 '투명'해진다함은 여러 가지를 나타낼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 그것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지 못한, 아니면 그 자체로써의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웰즈의 '투명인간'과 성석제의 '투명인간'이 겹쳐지는 지점이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꾸준함 하나로 인생을 살아온, 약간 모자라는 '만수'. 할아버지를 닮은 수재였지만, 부족한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월남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백수'. 연탄가스 중독으로 백치가 된 '명희', 악에 받친 듯한 삶을 살다가 사라진 '석수', 그리고 자매들 금희, 명희, 옥희를 둘러싼 얼치기 운동권들, 평범한 사람들, 그 밖에도 90%의 다수를 이루어 살아온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그들의 이야기야말로 눈물겹도록 짠하다면 역시 fair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보지도 않고 이런 얘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영화 '국제시장'의 똥침을 멋지게 날려준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요즘 한국의 현대소설에서 드물게 나온 수작이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