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이곳에서는 음력설을 지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제부터 부모님 댁에 들어와 있다.  차례도 없고, 워낙 다들 바쁜지라 그냥 넘어가는 것이 조금은 죄송스러운 맘이지만, 돌아가신 분들을 기린다는 건 사실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행사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갔다.  덕분에 책을 몇 권 내리 읽어낼 수 있었다.  내가 빨리 읽었다기 보다는 확실히 글자체가 커지면서 책 한 권이 책 한 권의 양이 아닌 세상이 되어버린 탓이리라.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읽은 세 권의 책은 그 양만 놓고 보면 아무리 잘해도 90년대 초반의 책 한 권의 분량이 아닌가 싶다.


이 책과 똑같은 것을 귀여니가 썼더라면 아마도 제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았으리라.  귀여니로 대표되는 PC통신 수준의 작가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한 한국은 이런 작법을 절대로 새로운 시도라고 받아주지 못할 것 같다.  

영화 '접속'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결과적으로 이렇게 간만 보는 것은 우리에게 어쩌면 익숙한 문화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채팅이나 포털을 통해 불특정 다수 또는 소수나 한 사람과 친해지고, 만남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까지도 이미 우리는 겪어왔고, 또 겪을 수 있는 일이니까.  

과연 이들의 행각을 로맨스로 볼 수 있겠는지에 대한 판단은 그만두고, 나는 이들이 만나기를 바라고 있다.  후속편을 읽어야할 듯.




모두 세 편의 단편을 모아놓았는데, 읽고나니 후덜덜하다.  어떻게 이렇게 끔찍스러운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건지 원.  시간을 직선적으로 펼치지 않고 교차시켜 혼란을 주는 구성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장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막판의 반전 또한 한층 더 여기에 수록된 이야기들의 horror 등급을 높여주었다.  

열대야: 매우 일본스러운 느낌이 강한데, 마지막에 모든 내용을 알게 되면 도대체 '부처'라는 놈은...

결국에...: 이 또한 상당히 일본스러운 주제인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트라우마랄까, 죄스러움이랄까, 이렇게도 표현될 수 있겠구나 싶다.

마지막 변명: 말 그대로 마지막 변명이 압권이다.  극적인 반전의 반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도 읽었는데, 이건 순전히 이동진 기자의 추천에 의한 구매/독서였다.  그가 무척 좋아하는다는 작가인데, 예의상 이 책은 따로 좀 다뤄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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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5-26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시 후속편은 읽으셨어요?

transient-guest 2017-05-26 12:05   좋아요 0 | URL
아직 구하지 못했습니다 ㅎㅎ 조만간 주문 넣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