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의 약속>

돈이 많고 매우 독선적인 노부인.  게디가 주변의 젊은이들을 꽉 붙잡고 마음대로 하는 노부인. 뒷방으로 물러나 있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절대 그럴 생각이 없는 노부인.  그녀의 죽음은 모든 이의 소망이었을 수 있다.  여행중에 자연사라도 해준다면 그 많은 유산은 골고루 나눠지고 많은 사람들의 새출발을 돕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노부인은 실제로 죽었다.


아주 짧은 요약인데, 이미 정해진 숫자의 용의자들이 있고, 언제나처럼 이들을 솎아내는 것은 포와로의 임무이자 지적 유희라고 하겠다.  크리스티의 작품들 중 드물게도 그 서사와 전개가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는데, 심리상태에 트릭을 배치하고 용의자를 제시한 다음 역시 언제나처럼 반전을 통해 진범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다름아닌 '심리'와 '배경'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은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는 다른 배치와 구성이 있다.  지난 번에 읽은 '파계재판'에 이어 이번에도 명탐정급의 변호사가 등장하고 법원도 중요한 무대를 제공한다.  범인의 시점과 3자의 시점을 오가는 묘사와 전개도 맘에 들고, 모방범죄이면서 이미 진행중인 사건을 토대로 한층 더 개선된 범행수범을 진행시키는 한편 꾸준히 법원에 방청객으로 나타나는 심리도 재미있다.  


크리스티의 소설의 경우 종종 그 트릭의 억지를 느낄 때가 있다.  독자들에게는 정확하게 주어지지 않은 정보나 도저히 유추해낼 수 없는 인과관계가 해결점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몇 권의 다카기 아키미쓰의 작품을 보면, 거의 모든 정보는 공평하게 독자에게도 주어지고, 소설의 분산장치에 눈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추리가 가능할 정도의 개연성을 보여주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게다가 범인의 뒷통수를 치는 마지막 반전 - 그러니까 범죄의 모티브가 되는 '결과물'이 범인의 계획과는 달리 완전범죄가 되더라도 범인이 취할 수 없었음을 밝혀주는 것은 통쾌한 신의 한수가 아닌가 한다.  


읽다보니 별 것을 다 읽게 된다는 생각이다.  이 라이트 노벨 풍의 책을 내가 볼 줄이야. 보고나서도 재미를 느낄 줄이야.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강신주 박사가 말하는 포인트에 딱 들어가는 부분이 나에게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어설프고, 만화와도 같이 뻔한 수법임에도 불구하고 읽는내내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지나가버린 옛 시절에 대한 망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있지도 않은 과거지만) 추리는 거의 부속물 수준이지만, 서점을 무대로 한 청춘물 같은 점이 맘에 들었다.


아직도 가끔씩 헌책방을 차려서 생계와는 상관없이 매일을 그렇게 책속에서 보내는 망상을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최소한 가게자리는 내 건물이어야 할 것이고, 이익은 볼 수 없더라고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이며, 부동산이던 무엇이던 side로 다른 수입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진행형도 되지 못하는 망상인 것이겠지.


<제3제국의 흥망>으로 처음 접했던 Shirer는 Berlin일기를 통해 팬이 되었는데, 의외로 그가 쓴 책이 다수 있어 하나씩 구해볼 계획을 잡았다.  예전에 헌책방에서 산 책이 20세기 하권에 해당하는 것을 알고 아마존을 뒤져보고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책을 사는 것, 읽는 것은 이들을 모아두는 것과 함께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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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10-2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벌써 추리소설 금단증상에 시달리고 있어요 ㅠㅠ

transient-guest 2014-10-29 04:32   좋아요 0 | URL
아이패드에서 PDF로 다운 받으신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책을 모아둔 파일을 받아 시전해 보심이 어떨런지요?ㅎ 안달루시아의 화창한 태양이 부럽네요. 세고비아가 그곳 출신이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