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입에 붙은 말이지만, 이곳의 금년 날씨는 거의 정확하다 싶을만큼 한국의 음력절기를 따라가고 있다.  금요일인 오늘은 여름의 마지막인 말복이자 가을의 첫 날인 입추답게 날씨는 딱 내가 좋아하는 꿀꿀하고 음울하게 흐린 가운데 옅은 비를 뿌리고 있다.  술맛나는 날인데, 요즘은 일주일에 딱 두 번만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고, 이미 한번을 마셨기 때문에 오늘 마시면 토요일인 내일 밤이 아쉬울 것 같아 아끼려고 한다.  


5시에 일어나서 동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서 들어오는 길에 맥도널드 커피를 하나 뽑아왔다.  잠깐 large coffee를 1불에 팔던 것이 의외로 좋은 부수효과를 얻게했는지 지금은 any size coffee가 모두 1불이다.  장사가 잘 되는 곳이라서 그랬는지 매우 fresh한 커피를 마시면서 이렇게 글을 쓰는 기분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변방의 작은 사무실이라서 금요일에는 급한 경우가 아니면 전화가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고, 기존의 client들은 메일로 소통을 하기도 하여 낮에는 카페에나 나가있을까 생각하고 있다.


효율이 좋아서 일도 빠르게 처리되어 책도 그만큼 열심히 읽을 수 있었다.  지난 7월 8권을 읽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는데, 이번 달에는 벌써 4-5권을 읽은 것 같다.  마중물을 퍼부어준 것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역시 가을과 함께 책도 열심히 읽게 되려나?  사실 미국의 전통적인 독서계절은 여름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지역에서 길고 지루한 여름을 보내기 때문에 휴가를 겸한 독서 catch-up의 계절이라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혼자 책 읽는 시간 (원제: Tolstoy and the Purple Chair)'를 쓴 니나 상코비치도 어린 시절부터 늘 여름은 온 가족이 모두 책을 읽는 시즌이었다고 회술했다.  참고로 이 아줌마의 블로그는 http://www.readallday.org/blog인데, 여전히 매일 열심히 읽고 있는 것 같다.  책과 인생, 사랑, 삶과 죽음, 기억, 추억, 가족 등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책으로 녹여낸 그녀의 책은 영어로도 읽고 한국어로도 읽었으며 내 주변에 열심히 퍼뜨렸을 만큼 개인적으로는 깊이 들어갔던 책이다.


일전에 podcast에서 저자의 강연과 책 소개를 듣고 벼르다가 구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은 이래 현대인의 교양, 그러니까 구시대의 교양인 문학이나 외국어 같은 의미로써, 교양의 기본이라는 자연 과학분야의 지식이 너무 부족함을 느끼면서 항상 과학분야의 독서를 늘려갈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로 이 책과 함께 파인만의 책을 몇 권 함께 주문했는데, 나의 분야가 아니라서 그런지 좀 어렵다.  


수학과 과학과목을 싫어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에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대학교에 가서는 졸업을 위한 교양으로만 겨우 때운 나이기에 지금은 산수가 아니면 수학은 멀고 과학분야는 그보다도 훨씬 더 멀리하고 있는 폐해가 들어나는 것이다.  대학교를 다닐 때 교양에서 과학을 때우려고 인류학 w/ 약간의 실험과목과 논리학을 들었고, 수학을 때우려고 통계학을 들었던 이래, 매우 오랜 시간동안 수학/과학을 깨우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공부를 하려면 아마도 매우 기초적인 과목부터 하나씩 배워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간단하게 표현하면 천문학 연구와 발전과정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어떻게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가, 우주의 나이가, 빅뱅 등등이 바뀌어 왔는가를 서술하면서 연구, 천문학자, 그리고 시대에 얽힌 에피소드와 함께 풀어냈다.  우주는 지구별에 사는 많은 사람에게 흥미와 관심의 대상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는 드라마나 영화의 측면이 더 강할 것 같다.  왜냐하면, 현실 고고학과 인디애나 존스의 고고학 사이의 괴리만큼이나 천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기초지식이나 관측과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이야기와의 거리감 때문일 것이다.  


읽는 내내 재미있어 하면서도 복잡한 (나에게는) 공식과 기호 때문에 마치 어려운 한자를 섞어 쓴 예전 소설책 같이 놓치고 지나간 부분이 많았고 피곤했다.  내 업무상 소위 박사 등급 이상의 학자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종종 있는데, 딱 그 느낌이다.  그러니까, 저자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기초지식이나 상식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할 것이라는 assumption.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그의 능력은 그 내용을 얼마나 쉽게 풀어서 보통 사람들이 널리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지가 측정의 척도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상당히 많은 분들이 거기에 미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저자의 경우는 희안하게도 이야기는 그렇게 재미있고 쉽게 풀어서 했는데, 책은 좀 어렵다는 점인데, 이건 객관성이 결여된, 나만의 주관적인 느낌에 그런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했을지도 모르겠다.


EBS드라마 '명동백작'을 보고 나서 이름으로만 들었던 '목마와 숙녀'가 박인환이라는 멋쟁이 요절시인의 작품임을 알았다.  사람마다 기질에 따라 성향에 따라 갈리겠지만, 나는 김수영 - 작품으로 만난 적은 없다.  그건 박인환도 마찬가지 - 의 사상지향성보다는 박인환의 댄디즘이 더 좋다.  단순한 허영도 아니었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 위한 자기만의 방편으로서의 멋이라고 이 책의 저자가 평하는 듯 한데, 그런 복잡한 이야기나 의미가 아닌 그의 멋이 좋다.  


일제시절,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이승만 독재까지의 극악한 시대를 훤칠한 키와 멋진 옷, 샹송과 시, 그리고 문학에 취해 살아간 박인환은 비록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심한 서구지향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한국에서 필요한 것을 당시 훨씬 더 발전한 모습을 보였던 서구에서 찾아 이를 한국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라는 저자의 해석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물질문명의 극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 서구를 비판하고 이를 지양한 것에도 역시 역설적으로 더욱 한국지향적인 그의 모습이 멋지다.


이번에 그의 시집도 한 권 샀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대낮의 사무실을 어둡게 꾸며놓고 소리내어 읽으면서 음미봐야겠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명동백작'에서 박인환을 연기한 배우의 키가 작아 170cm의 이정숙 여사 - 박인환의 부인 - 를 연기한 키 큰 여배우와 대조를 이루었던 것이 생각나는 건 사족이다.


하루종일 이렇게 흐린 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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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4-08-09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력이 정확한것 같아요. 이곳도 며칠전 입추이자 말복이었는데 오늘도 태풍영향이긴 해도 선들선들해요. 참 다양한 책을 부지런히 읽으시는 것 같습니다. 상코비치 블로그가 있군요. 여름은 온가족 책읽는 시기. 우린 꼭 더위가 절정인 이 시기에 휴가들 가느라 땀뻘뻘인데요^^

transient-guest 2014-08-10 05:0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이제는 무더위에 멀리 나가느라 고생하지 말고 시원하게 집을 꾸며놓고 책을 읽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4-08-09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분들이 24절기를 음력이라고 여기더군요.하지만 양력입니다.작년 달력을 보면 되죠.작년에도 입추는 8월 7일입니다.하지만 말복은 올해와 달리 12일이었죠.말복은 24절기가 아니어서 음력으로 재니까요.그래서 해마다 날짜가 다릅니다.

다른 24절기도 작년 달력으로 확인해 보세요.


transient-guest 2014-08-10 05:08   좋아요 0 | URL
오호...24절기가 양력이라니요. 처음 듣는 말씀입니다. 입추와 말복은 같은 음력절기가 아니고 다르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네요. 노자님 지식의 끝은 어디인가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4-08-10 21:40   좋아요 0 | URL
방송 퀴즈 프로그램에 잘 나오는 문제라서 기억하고 있기도 하고, 농사 짓던 조부모님이 알려주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