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 내내 일에 시달리다가 (기쁜 일이다) 오늘 오후에는 드디어 모든 것을 던져놓고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식히고 있다.  그래도 질적인 면이나 속도에서 모두들 만족해주니 고마울 다름이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읽다가 레르몬토프라는 러시아 문인의 시를 보았다.  즉석에서 흥이 돋아 마치 TV드라마 '명동백작'에서의 박인환처럼 혼자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역시 시는 그렇게, 듣는 사람이 없어도 소리내어 읽어야 제맛인 듯, 제 멋대로 취해버렸다.  


나 홀로 길을 나선다.

안개 속으로 자갈길이 빛나고

밤은 고요하다.  황야는 신에게 귀 기울이고

별들은 별들과 속삭인다.


하늘은 장중하고 아름답구나!

대지는 푸른빛 속에 잠들고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아프고 힘들게 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기다리는 걸까?  무엇을 후회해야 하는 걸까?


이미 나는 인생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나에게 과거는 전혀 후회스럽지 않다.

나는 자유와 평온을 찾고 있다!

나는 모든 걸 잊고 잠들고 싶다!


하지만 무덤 속의 차가운 잠이 아니라,

영원히 그렇게 잠들었으면......

생명의 힘이 가슴속에서 조곤조곤 잠들어

숨 쉴 때마다 잠들어 가슴이 부풀어 오르게


밤새도록 하루 종일 나의 귀를 즐겁게 해주며,

달콤란 목소리가 나에게 사랑을 노래하고,

내 위로는 영원히 푸르른,

울창한 참나무가 몸을 숙여 수군거렸으면.


[나 홀로 길을 나선다]라는 시라고 하는데, 푸슈킨 다음으로 이 책에서 소개되는 걸 보면 익히 알려진 톨스토이나 도스토엡스키보다는 앞선 사람인데, 덜 알려진 것 같다.  '우리 시대의 영웅'이 유명하다는데 제목만 언뜻 기억이 나는 정도.  물론 이는 내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이지만, 실제로 레르몬토프는 많이 유명해지기 전에 결투로 일찍 죽었다고 하며 장례식 때에도 몇 사람 모이지 않았다고 하니 이래저래 미안해진다.


보통은 문학과 시를 청춘의 시기에 접하는데 나는 그 시기를 역사소설로 보냈고 문학은 20대 중반에 시는 이제와서야 조금 배워가고 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적으로는 분명 더 어려지는 것 같다.  oh well...


곧 마무리하고 집에 가다가 운동으로 묵은 피로를 말끔히 씻고 경건한 저녁을 맞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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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4-04-1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명동백작! 어쩐지 상상이 가는걸요 ㅋㅋ 좋은 시이고, 유쾌한 감상이네요. 저도 시집이랑은 거리가 멀지만 요렇게 간간히 (우연히) 만나는 시들은 참 좋아합니다. ^^

transient-guest 2014-04-11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읽어보니 좋아서 한번 소리내어 읽어봤지요. 소설이나 산문보다 어려운게 시라고 하네요. 이렇게 조금씩 들어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