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머스 만이라는 독일의 작가가 있다. '마의 산'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내가 접한 그의 첫 작품은 '부덴브로크크 가의 사람들'이다. 기억하기로는 3대에 걸쳐 쇠락해가는 한 가문의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처음에는 세밀하고 자세한 묘사의 문체가 지겹다가 어느 순간부터 작품 속에 깊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토머스 만을 처음 시작하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책이다.
한 가문의 부와 명예가 이어지는 불운과 그릇된 판단의 조합의 결과, 절정기에는 그들만 못하다고 여겨지던 다른 경쟁가문으로 고스란히 옮겨지는 것을 보면서 문득 부라는 것은 결국 유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자기계발서에서 줄창 떠드는 말은 '부'라는 것은 '무한'하기 때문에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노력을 하면, 기타 등등을 하면 가질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갖고 진취적으로 살기 위한 어떤 동기부여는 될 수 있겠지만, 정말로 세사의 '부'라는 것이 무한적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수도권의 아파트 단지 개발을 예로 들자. 한 도시에서 고급 프리미엄이 붙는 지역은 어느 정도 공식화가 되어 있는데, 신규단지로써, 좋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곳이다. 5-10년을 두고 이들이 들어서는 재개발지역으로 한 도시의 부와 사람이 이동을 한다면 너무 심한 일반화가 될까? 이들이 빠져나간 예전의 hot spot은 이제 외견상 낮아진 시세 덕분에 보다 더 적은 돈으로 입주가 가능해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이들, 또는 새로운 지역으로 옮길 수 없는 사람들로 일종의 물갈이를 하게 된다. 이 법칙에 따라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늘상 재개발 열풍이니 하면서 짓고 부수는 것을 되풀이 하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의 블록쌓기를 보는 것 같다. 이를 확대하면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또는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사람과 물산이 옮겨가는 모습을 그릴 수 있는데, 워낙 규모가 크고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에 그 양상이 쉽게 드러나지는 않을 뿐, 도시에서의 '부'의 이동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2012년 이 책을 구입하고 약 일 년 간 천천히 읽다가 만 자리는 대략 3분의 2 정도. 2013년에는 거의 펼쳐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이 책은 처음의 마음가짐과는 달리 책꽂이에 얌전히 모셔져 있었다.
엊그제인가, 뭔가 프로젝트 삼아 읽어볼 책을 찾다가 다시 빼들은 이 책은 그렇게 하나의 도전이 되어 버렸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함께 많은 이들을 설레게 하지만, 엄청난 페이지 수와 어려운 내용 때문에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잡아 먹는 '마의 산'은 토머스 만의 역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평판에 충실하게 첫 문장부터가 읽는 이를 확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조이스 만큼 난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의 산'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지금도 궁금해 하고 있는데, 책을 다 읽는다 해도 과연 그 수수께끼가 풀릴지는 의문이다.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것 이상, 나는 자기의 양심과 의기가 살아있는 작가를 좋아한다. 그것도 순간의 충동에 흔들리는 문사의 감상 따위가 아닌, 깊은 진심에서 우러난 꼿꼿함이 보이는, 악과 부조리에 대해 매서운 글발로 저항하는 작가 말이다. 토머스 만은 그런 작가이기 때문에 더욱 좋아하는데, '발자크 평전'의 쯔바이크의 비극적인 최후만큼이나 토머스 만의 아들인 클라우스 만의 최후는 비극적이지만, 모든 것을 던져 악에 저항하는 사람의 자세로써 손색이 없다.
장정일은 그의 독서일기에서 책은 가급적 한 호흡으로 읽을 것을 이야기 하면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읽히지 않는 책은 열정적으로 쓰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문학을 포함해서 픽션을 읽으면서 잠언과도 같은 작가의 표현이나 말에 밑줄치는 행위를 비판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짜집기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책을 만들기 위해 얼개를 잡고 한 주제씩 채워나간 책은 장정일의 말처럼 한 호흡에 쓰여진 책이 아니기에 한번에 읽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문학사에 길이 남은 고전의 경우라면 어떻게 쓰였는지에 따라서가 아닌 읽는 이의 수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이상 수 많은 이유에 따라서 다르게 읽혀진다. '마의 산'은 창작을 넘어 시대와 사람을 관통하는 수 많은 명문장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자제하려고 해도, 읽는 중간 중간에 자와 펜을 찾게 된다. 그리고 밑줄 친 문장을 한번씩 그렇게 음미해 보는 것이다.
사람마다 그 경험과 교육수준, 직업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다양한 책읽는 방법이나 목적을 보인다 할 때, 그의 도서목록과 나의 도서목록에 별로 겹치는 것이 없는 것처럼, 어쩌면 장정일 - 유명한 작가라는 계급장을 내려놓고나면 - 이 책을 읽고 평하는 방식이 어떤 참고를 넘어 꼭 나의 모델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던 선배가 하숙하던 방에 당시 대학원생이던 그의 책을 펴보다가 배운 뒤, 한번도 놓아본 적이 없는, 이제는 온전히 나의 것이 된 밑줄 긋는 독서습관에 대한 변명아닌 변명을 장정일의 글을 접한 후부터는 꼭 한번 정도는 이렇게 쓰고 싶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그 문장을 곰씹을 때마다 나는 그 선배를 생각한다. 그가 내게 해주던 애정어린 충고도, 그를 지키지 못했던 지난 시간도, 치기어린 마음에 그의 복수를 꿈꾸었지만, 아직은 요원하기만 한 그 앙값음도 모두 그렇게 가슴 속 깊이 담고서 말이다. 君子報讐十年不晩 (군자보수십년불만)이라는 말로 자신을 달래보기는 하지만, 가끔 이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움과 함께 아직 내가 원하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음을 탓하곤 한다.
'마의 산'과 함께 유명한 '파우스트 박사'와 '요셉과 그의 형제들' 또한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한 본은 언어적인 부분 때문이 아니라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아서 영문과 한국어 두 가지를 모두 구할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