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단련하다 - 인간의 현재 도쿄대 강의 1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일과 함께 병행하는 독서라는 핑계가 있지만, 책 세 권의 후기를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은 나이의 탓만은 아닐게다.  어떤 일이든지 그때 그때 바로 마무리하지 않고 넘어가면 안되겠다는 생각은 특히 이럴 때마다 하게 된다.

 

10/10 Project를 시작하기 전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여러 권 구하여 하나씩 읽었는데, 그간 후기를 미뤄둔 것이 세 권이나 되는 것을 오늘 문득 기억해냈다.  2-3주 정도가 지난 것 같은데, 내용도 좀 잊어버렸고, 대략의 흐름 정도만 기억이 난다. 

 

필경 수 만권은 훌쩍 넘길만큼 많은 책과 문서정보를 읽고 정리하면서 소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다운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와 교양에 대한 이론이다.  도쿄대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정리한 것인데, 문학이나 픽션을 읽지 않는다는 그답지 않게 사회인문 전반에 걸쳐 풍부한 그의 지식과 인용이 새삼 돋보인다.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아야 할 필요는 IT시대인 지금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정보의 홍수속에서 헤메이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안목이 필요하고 남이 주는 것을 떠먹기만 해서는 그런 안목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후에는 적어도 한동안은 정부나 기관의 여론조작 혹은 여론통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실제로 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보와 사실의 완벽한 isolation과 통제는 어려워진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한국이나 중국, 그리고 막대한 자금과 조직력을 동반한 강대국의 감청사례를 볼 때, 사건사실의 통제와 조작, 그리고 여론의 교묘한 뒷조종까지 바로 그 IT기술을 통해서 더욱 직접적이고 순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행간을 읽고 사건의 본질을 짚어내는 힘은 지금 더욱 필요하다고 하겠다. 

 

박근혜씨와 새누리당의 온갖 전횡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국정원 개혁과 대선개입에 대한 조사처벌 이상으로 확대되지 못하는, 즉 사건의 본질이자 핵심인 박근혜씨의 퇴진운동으로 확대되지 않는 세태는 어느 정도 기성세대 및 2-30대의 지적능력감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90년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금씩 사회정치운동에 대한 관심은 연예인과 유행, 취업, 해외연수 같은 욕구와 욕망의 상품으로 대체됐고, IMF이후에는 취업과 성공만이 지상명제가 된 젊은이들은 회사로, 부의 세계로, 경쟁의 세계로, 때로는 대안적인 방편으로써 종교에 심취하게 되어온 결과, 이제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2-30대는 그 힘을 많이 잃어버린, 아니 잊어버린 것 같다.  이명박 정부 때 한층 심화된 우민화 정책은 이제 박근혜 정부에 들어 교학사 교과서 사건이난 전교조의 노조취소를 함부로 추진할 수 있는 정권의 거만과 우격다짐을 제지할 의식을 잃은 것 같다.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빠졌는데, 어쨌든 이 책을 읽고나서 내가 느낀 부족함은 수학과 과학에 있어 상대적으로 비대칭적으로 사회인문계열에 편중된 나의 관심과 지식의 편향성과 약점이다.  수학은 대수 직전에 겨우 멈췄고, 과학은 인류학과 통계학의 교양과목으로 때워버렸는데, 한국이나 일본보다는 앞서 있었다는 그 시절의 미국 대학교육에서도 그 모양이었으니까, 책에서 다룬 일본의 교육편향과 현재 한국의 취업일변도의 대학교육으로는 지상최대의 목표가 취업이 되어버린 이 시대를 바꿀 힘이 생기지 못할 것이다. 

 

생각해보자.  내 인생도 그리 대단한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대학시절을 취업을 위해 보내지는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행복하게도 대학 4년간 내가 지금도 사랑해마지 않는 역사를 공부할 수 있었고, 얕은 지식이나마 이렇게 지금도 독서를 이어가면서 다방면에 관심을 갖게 하는 배경이 된 모든 교육을 대학교때 받았다.  러시아 지성사, 유럽 지성사 각 3학기 강의들을 통해 문학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유럽영화사를 통해 흑백영화를 배웠다.  하다못해, 너무도 부족한 수학과 과학에 대한 나의 모자람이라도 느끼면서, 책을 통해 다시 조금씩 배워 볼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그 시절의 교육과 이을 이어온 독서라고 하겠다. 

 

뇌를 단련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자꾸 읽고, 사색하고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자신을,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인지하고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때로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사회는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그것이 항상 발전과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한 개인을 사상 때문에 구속하거나 거듭되는 거짓말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을 이어가는 정치인과 언론세력을 혼내줄 정도의 발전은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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