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잘 읽히지 않던 책이 다시 술술 읽히기 시작한다.  reading에도 슬럼프가 온다고는 하는데, 과연 지난 3-4월에 나는 슬럼프를 겪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다만, 눈에 보이는 최근과의 차이는 스케줄인데, 4월까지는 정신없이 돌아가던 회사가 5월에는 갑자기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내가 practice하는 분야의 legal service market이 돌연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것들이 일순간 정지해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야심차게 계획하던 몇 가지를 일단 stop시켜놓고, 내심 초조하게 business가 pickpu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3-4주간의 시간을 보내고 났더니, 그간 꽉 조여져있던 머리가 다소 풀리기라도 했는지, 지난 주말부터는 독서의 많은 부분이 보통때의 수준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해도, 몰입도,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지난 주중에 시작해서 warm up을 하는 자전거 위에서 틈틈히 읽은 책이다.  신경숙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처음으로 접하는 문체답지 않게 착착 마음에 감겨 와 닿는다.  이전에 김탁환이 같은 주제에 대해 쓴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과 같은 소재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소설과 신경숙의 소설과는 소재의 동일함, 일정한 timeline의 겹침외에는 그리 닮은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리진을 읽으면서 리심을 떠올린 적이 별로 없었다는 말이다.  그저, 왜 비슷한 시기에 문헌상에는 아주 조금만 남아있는, 파리에 처음으로 가본 구한말의 조선 궁녀의 이야기를 두 명의 유명한, 하지만, 꽤나 다른 대착점에 서 있는 두 작가가 풀어볼 생각을 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은 중간중간 들었다.

 

김탁환의 리심은 소설 같다.  굉장히 빠르고, 여러 플롯들이 함께 전개되어 재미있는 한 편의 극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신경숙의 리진은 차분하다.  인물과 플롯을 엮어 극화화 했다기 보다는, 리진을 중심으로, 한 명의 여자의 눈에 비친, 한 시대의 종말, 새로운 문물, 그 속에서 느끼는 고독, 한계, 이런 것들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여기에는 구한말 조선을 둘러싼 정세속에서 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투, political maneuvering은 별로 없다.  그저 담담한 한 여자의 이야기가 마치 그 당시 조선의 운명처럼 잔잔하게, 그리고 애잔하게 그려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탁환의 리진보다는 신경숙의 리진이 더 긴 여운을 남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표지의 느낌도 비슷하고 그림체도 비슷하지만, 그 밖의 모든 것들이 다른 김탁환의 책도 여기에 소개하고 싶다.  그의 책들도 절판된 것들이 많아서 못 구하는데, 박지원의 이야기를 다룬 압록강이 여기에 속한다.  다행스럽게도 예전에 한국책이 다수 보유되어있던 모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서 한 차례 읽은 적은 있으나, 글로 남기지는 못했기에, 기회가 되면 다시 구해서 읽어볼 책들 중 하나이다.

 

조금 slow하게 남은 5월의 한 주를 보내고, 다가오는 6월부터는 모든 것이 또다시 차차 정상궤도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해야겠다.  이런 날도, 저런 날도, 한 초도 다시 돌려받을 수 없는 내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이다.  그저 남아있는 동안,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심신을 단련하면서, 그렇게 족적을 남김에 구애받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PS 책이 술술 읽힌다고 했을때 쓰려던 이야기를 막상 글을 쓰던 순간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폴 오스커의 '달의 궁전'을 또한 읽고 있는데, 잘 읽힌다.  그전에 본 뉴욕 3부작은 막히던 부분도 있었는데 말이다.  달의 궁전은 곧 다 끝낼 듯.  그나저나 고전문학과 영어책을 더 읽어야 하겠는데, 잘 손이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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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5-2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탁환 씨 소설이 참 재밌습니다.추리기법을 능숙하게 구사하기도 하고요.
<압록강 >이야긴데...이건 광해군의 밀명을 받고 후금에 항복한 강홍립 장군을 다룬 작품입니다.박지원 등 실학파가 나오는 소설은 백탑파 시리즈에 있는 <방각본 살인사건>입니다.

transient-guest 2013-05-29 23:28   좋아요 0 | URL
김탁환 소설은 저도 참 재미있게 여러 가지를 읽었어요. 그런데,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니 압록강은 제가 착각했네요. 강홍립 장군 이야기를 하시니까, 압록강 내용이 확 다시 떠오르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