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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산보
다니구치 지로 만화, 쿠스미 마사유키 원작 / 미우(대원씨아이) / 2012년 12월
평점 :
'고독한 미식가'와 같은 작가의 원작을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같은 만화가가 그려낸 이 책은 우연한 기회에 광고를 보고 사게 된 책이다. 스토리는 '고독한 미식가'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그러나 음식 대신에 그야말로 우연히 도쿄의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면서 생기는 일상의 자잘한, 그리고 잔잔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구성과 모티브 모두 '고독한 미식가'를 그대로 빼다박은 듯한 책이지만, 주제가 '산보'라서 그런지, 우연히, 무계획으로, 아무런 생각없이 걸어다니는 사람의 눈에 들어오는, 시내의 구석구석을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대단한 이야기는 없지만, 역시 사라져가는 도시속의 옛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과, 무조건적인 파괴에 다름아닌 개발에 대한 저자의 반감이 들어나는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사라져버린 종로의 피맛골 (맞나?), 용산의 철거현장, 그 밖에도 무수히 많은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모습을 떠올렸다.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은 잘 알지만, 무분별한 파괴 덕분에 서울은 이제 오랜 것이 하나도 없는 도시로 외국에 알려져 있게 되었다. 개량과 개발, 그리고 보존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기대하기에는 반백년의 한국 현대사가 너무 숨가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전 국토가 시멘트 천국으로 변한데에는 일본에서 받은 일본식 개화교육, 그리고 이와 합쳐진 국가와 기업의 성장주의의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하게 된다.
만화뿐만 아니라, 책도 이렇게 화자가 일인칭으로 혼자 다니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더 좋다. 무엇인가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살짝 고독함을 느끼게도 해주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가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나는 꽤 오래전부터 이래왔다. 쿠스미 마사유키와 타니구치 지로 협작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보았지만, '고독한 미식가'와 이 책이 한국에 출판된 전부이다. 타니구치 지로의 다른 만화들은 몇 편 더 들어와 있다만, 내가 본 그의 작품은 쿠스미 마사유키와의 협작으로 지금은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