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라고 감히 쓸 수 있을까? 조희봉님은 나에게 '전작주의'라는 것을,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었을) 특정 작가읽기를 '전작주의'라는 표현으로 define한 사람이다. 이전까지 이런 말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나의 행위에 대한 defining 또한 할 수 없었었다.

 

 

내 전작주의의 시작은 누구부터였나 돌이켜보니 - 중간 중간에 다른 답을 쓴 기억도 있지만 - 중국의 무협소설작가인 김용이 아니었던가 싶다.

 

지금도 고이 간직한 김용의 모든 작품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데, 벽혈검만 빼놓고 다 가지고 있는것으로 안다.

 

 

 

 

1. 소설 영웅문 1부 - 대막영웅전 (원제: 사조영웅전)

2. 소설 영웅문 2부 - 신조협려 (원제: 신조협려)

3. 소설 영웅문 3부 - 의천도룡기 (원제: 의천도룡기)

4. 대륙의 별 (원제: 천룡팔부)

5. 아! 만리성 (원제: 소호강호)

6. 협객행

7. 비호외전

8. 소설 청향비 (원제: 서검은구록)

9. 설산객 (원제: 설산비호)

10. 연성결

11. 소설 녹정기

12. 벡마소서풍

13. 원앙도

 

 

 

 

 

 

 

 

 

 

 

이들은 모두 중학생 시절에 사 모은 것인데, 밥값을 꼬박 아껴 일주일에 한 권씩 힘겹게 사들이기도 했었고, 어쩔 때에는 토요일 반수업 후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나면, 버스표가 없어, 2-3 km정도의 길을 집까지 걸어올때도 많았었다. 그렇게 모은 작품들이니만큼, 나는 이 책들의 내용뿐만 아니라, 책 상태도 속속들이 다 알고있다.

 

 

조희봉님의 책을 읽으니 이런 행위가 전작주의였고, 책수집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니, 나는 대략 중학교때부터 이 방면으로는 될성싶은 놈이었던 것 같다.

 

 '전작주의자의 꿈'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다소 건성으로 넘긴 기억이 난다. 한국의 책쟁이들이라는 글 - 나중에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 에서 소개된 그의 일화 - 특히 이윤기라는 유명 작가/번역가를 전작하여 주례로 모시고 (일면식도 없던 주제에), 제자 1호가 된 - 에 반해 사들였었는데, 그 때의 나에게는 다소 dry하게 느껴지는 글이었다.  (사실 돌아가신 이윤기 선생의 책도 아직 나에게는 좀 낯설다.  물론 그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재미있게 보았지만서도).

 

 

우연히 2-3일전엔가, 이 책, 저 책 사이를 기웃거리다가, 집어든 이 책의 내용은, 세월이 지나서일까, 다르게 다가왔다. 조희봉님의 말마따나 "그건 아마도 책은 늘 자리에 있지만 책을 읽는 사람의 내면이 변해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책의 특성 때문일게다.

 

 

이 책에는 한 탐서주의자, 책수집가, 헌책방 마니아, 그리고 전작주의자가 책을 통해서 살아온 지난 이야기들이 하나씩 둘씩 담겨 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기에, 수줍지만, 가식없는 그야말로 당당하고 떳떳한 책이라고 느낀다. 저자가 말하는 헌책방의 법칙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졸속한 리뷰를 마친다. ()속의 글은 내 말이다.

 

 

1. 한번 헌책방에 나온 책은 반드시 다시 나온다 (그러니 조급해 하지 말자).

2. 아무리 작고 초라해 보이는 동네 헌책방이라도 자기만의 보물을 가지고 있다 (국민대에서 교환학생으로 여름 연수를 하던 2002년, 근처 먹자골목 한켠의 초라한 문방구 겸 참고서 서점에서 의외의 보물을 건졌으니, 어릴 때 읽었던 에릭 시걸의 닥터스 1과 2였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 대한 추억은 라디오 - 당시만해도 매우 활발하였던 수많은 밤의 라디오 방송들 - 에 있다.  정체모를 가슴설렘으로 가득하던 그 시절 이문세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그리고 진행자가 생각나지 않던 '밤을 잊은 그대에게' 그리고 12시에 하던 다른 방송을 듣고 있으면 어김없이 책광고가 나왔었다 (그렇다! 책을 라디오로 광고할만큼 출판업과 서점이 잘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서점이 잘 운영되어 건물을 올리던 분도 계셨던 정도로 말이다).  그때 기억나는 책은 '빠빠라기' '배꼽', 그리고 문제의 '닥터스'인데, '닥터스'는 특히 '러브스토리의 작가 에릭 시걸의 닥터스! 하버드 의대생들의 우정과 사랑! 포르말린은 그들의 향수! 수술실은 그들의 xxx (생각이 나지 않는다)'의 선전문구가 이 책에 얽힌 추억담이다.  지금은 다시 나오는 것 같은데, 당시 절판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 열심히 찾아다닐 때는 귀하기만해서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던 책이 마침내 그 책을 찾아내거나 포기하고 새책을 사고 난 후부터는 발에 채일 것처럼 많이 보인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옛말은 진리인거시다).

4. 늘 살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두고 갔던 책은 사기로 마음먹고 다시 찾아가면 그 자리에 없다 (logos에서 실제로 경험했다.  2차대전 기간 영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시기의 토마스 만의 대독일 라디오 방송을 모아놓은 책인데, 망설이다가 다음에 사야지하고 내려놓은 뒤, 2-3일 후 왔더니 누군가 사갔다.  이런 책을 나 아니면 누가 사겠어 하는 방심은 금물이다).

5. 좋은 책은 늘 비싸고 불친절한 책방에 있다 (이건 아직 모르겠다. 책을 살때 값 흥정을 하지 않기에 특별한 불친절을 경험한 적이 없다.  이건 정가제에 익숙한 탓이기도 할게다).

 

이로써, 전작주의뿐 아니라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탐서행각에 대한 변명, 아니 나아가서는 이 행위에 대한 당위성과 정당성을 얻을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열독가가 실용주의자라면 수집가는 낭만주의자이다...수집가는 책의 다양한 효용가치를 좋아하고 책 그 자체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책에서 얻은 지식이나 문자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삶 그 자체로서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책은 그들에게 읽어야 할 대상일 뿐만 아니라 늘 곁에 두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친구인 셈이다."

 

PS 옥의 매우 작은 티.  Harry Potter의 작가인 JK Rowling을 Rolling으로 써놨는데, 저자의 오류라면 excusable하지만, 편집시 이를 발견하지 못한 출판사의 negligence라면 봐주고 싶지 않다.  Rolling?  굴리긴 뭘 굴린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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