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것도 역사책, 구체적으로는 나를 역사학도로 만든 계기가 된 책.  나는 그 책들이 집에 오던 날을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이던 어느 늦은 가을 밤.  통상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하시던 아버지가 어인일인지 9시가 되기 좀 전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런 아버지의 손에는 커버가 잘 포장된 네 권의 책이 한 꾸러미로 묶여 들려 있었다.  그때만해도 동네마다, 또 사람이 모이는 곳곳에 서점이 즐비하던 시절이었고, 으례히 책을 사면 데코레이션이 예쁜 한지같은 종이로 싸주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책을 싸서 보관하면 속의 색깔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래는 것을 상당히 늦출 수 있다).  그 책들은 각각:

 

  

 

 

 

 

 

 

 

 

 

 

 

 

 

이었는데.  그때 막 만화 위인전기, 금성출판사 위인전기, 정비석의 손자병법, 소설초한지 등을 재미있게 읽고 있던 나는 바로 그날 밤부터 '역사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읽은 것을 또 읽고, 다시 읽고 하여 (그때만 해도 책이 귀한 편이라서 한번 산 책은 대여섯번은 쉽게 읽곤 했었다), 지금도 내용과 목차를 다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좀더 본격적인 역사탐구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이야기' 시리즈로 이어졌고, 이것을 다 읽고 나서부터는 약간 굵어진 머리와 함께, survey계통의 책이 아닌 본격적인 역사 사서들을 찾아 읽게 되었고, 아울러 고전이나 인물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들, 나아가서 나의 학사 전공, 그리고 평생의 독서와 공부 계획, 흥미, 인간적인 development 등의 모든 것이 1985년의 어느 밤, 아버지의 손에 들려 나에게 다가온 네 권을 책들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이렇게 다음으로 이어진 책들까지 결국 다 구해보았다.  그런데, 청아출판사의 '이야기' 역사 시리즈를 이제는 세트로도 모아 파는 것 같다.  내가 가진 판본은 1983-85년에 나온 것들이니까 이젠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책들인데,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고, 학계나 출판계의 관점도 많이 바뀌었을것 같아 다시 구해서 읽어보고 싶다. 

 

 바로 요녀석. 그리고 여기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위대학 작가이자 학자인 앙드레 모로아가 쓴 미국사도 매우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이렇게 시작된 역사인생.  그리고 더 깊어진 독서인생.  즐겁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repeat하는 말이지만 사무실의 자리가 잡혀감에 따라 책을 구할 수 있는 능력과 읽을 수 있는 자유도가 높아질 것이니, 상상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책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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