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전통
에릭 홉스봄 외 지음, 박지향 외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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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홉스봄에 관심이 생겨 두 번째로 구해 읽은 그의 책인데, 정확히는 그를 필두로 하여 다른 역사학자들의 글을 모은 compilation이다.  물론 테제는 모두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것인데, 각 단원에서 다음의 전통들이 익히 알려진 것처럼 고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근세에 들어 특정 조직이나 국가 내지는 정부의 필요에 따라 '발굴'되어 'reconstruct'된 것이라는 것을 다양한 자료의 내용을 근거로하여 논증한다. 

1. 스코트랜드 고지대 (highland)의 전통 - 스코트랜드 고지대 하면 아마도 Braveheart나 Highlander같은 것을 떠올릴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퀼트를 입은 남자들이 백파이프에 맞춰 행진하는 모습이라면 많은 사람들은 스코트랜드의 전통을 떠올리게 되는데, 트레버-로퍼에 의하면...모두 구라라는 것.  출처를 알 수 없는 문헌들을 기반으로 누군가 '조사'하고 '발굴'한 내용이 책으로 저술이 되고 퍼지다보면 정작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이나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 자체가 '전통'을 뒷받침하는 일차사료로 둔갑하는 것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아는 스코트랜드 고지대의 전통은 뻥이라는 것. 

2. 웨일스의  전통 - 주의깊게 읽지 않아 내용이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으나 없었던 전통을 '낭만주의'적으로 부활시켰다는 것.  지금도 엄청 시골로 알고 있는 이 지역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3. 영국 군주정 전통 - 화려한 영국 국왕의 대관식, 결혼식, 각종 행사, 역시 모두 뻥.  지난 시대에서 넘어온 것은 거의 없고, 모두 근세에 와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  우리가 생각하는 근엄하고 무엇인가 추억되는 낭만적인 영국 왕실의 행사/형식은 개발되고 연습되어 퍼졌다는 것.  그 증거로 이 '전통'이 시작되는 시점이 분명히 있다는 것. 

4. 인도 - 수많은 토호들의 전통 및 의례가 결국 영국왕실의 식민지정책의 필요에 따라 유럽인의 관점에서 보는 '전통'으로 탈바꿈되고 확대-재생산 되었다는 것. 

5. 아프리카 - 4와 마찬가지. 

6. 1870-1914년 유럽의 전통 - 역시 군국주의와 근대국가의 대두에 맞춰 고대의 전통을 현대에 맞게 재발견하여 생산하였다는 것.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를 예로 들어 논증함. 

대략 이렇게 정리하였는데, 학술적으로는 흥미로왔지만 내용자체는 꽤난 지루한 편이었다.  사실 홉스봄의 책이 좀 그렇지 않나 싶다.  진지하고 구체적인 톤으로 좋은 주제들을 다루지만 글 자체는 조금 지루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흔하지 않은 좌파역사가로서 유명한 사람이기에 그의 관점을 다룬 글들은 모두 소중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의 '재발견'과 '확대-재생산'을 떠올렸다.  가깝게는 구국의 영웅 충무공부터 세종대왕의 부각 (그분들은 물론 매우 훌륭한 분들이지만)이 박과 전으로 25년간 이어졌던 군부독재의 산물이라는 것.  조금 멀게는 이승만과 김일성의 독립운동신화.  둘 다 자기들이 선전하는 대단한 투사들이 아니었다는 것.  계속 이어지고 있는 한국 고대사의 논쟁.  어쩌면 '솔직한' 역사와 '전통'이란 쉽게 유지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끊임없이 묻고 따지고 분석하는 삶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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