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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정영문 옮김 / 예담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한국의 책쟁이들'에서 인터뷰되었던 시골 우체국장 '조희봉'님의 이야기에서 '고 이윤기'작가를 전작하는 부분이 있다. '조희봉'의 전작대상이자 스승인 고 이윤기님이 상당수 번역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의 언급에서 나의 카찬자키스 작품기행은 시작되었다. 이 여행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와 '예수 그리스도 취후의 유혹'을 잇는 세 번째인 이 책은 카잔차키스가 20세기 중반을 향하던 1930년대 (1935년에 출판됨)의 중국과 일본을 여행하면서 보고, 사색한 것들에 대한 기행문이다. 내가 읽은 유명작가의 기행문으로는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과 '프랑스 기행'에 이은 세 번째이다.
먼저 그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대륙의 거대함에서 뿜어져 나오는 저력, 퇴폐적인 삶이나 헐벗은 농민, 겁에 질린 다수, 비참한 하류계층, 아니 이를 모두 아우르는 힘을 보았던 것 같다. 그가 묘사하는 바람,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은 중국 역사에서 거의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역성혁명, 민란, 이를 통하여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리는 힘으로 현실화된다. 이 시기에서 머지 않은 미래에 모택동이 주도한 공산혁명은 이 헐벗고 굶주린 계층을 일으켜세우고, 그들이 뿜어낸 바람에 다시 혁명을 태워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새로운 '왕조'인 공산당 정권을 세운 것을 카잔차키스는 찬양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문화혁명'이나 일련의 사태에 다시 실망했을 터이지만...예나 지금이나 중국의 인구에서 나오는 힘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일본에서는 절제된 아름다움의 미와 산업혁명의 비참함을 함께 본 듯한데, 너무도 당연하게 '조선'은 없다. 꽤나 진보적이라는 사람조차도 '대동아 공영론'을 설파하는 묘사에, 정말이지 두손 두발을 다 들어버린다. 외국인이 보는 중국=인구의 힘, 일본=사무라이, 벚꽃, 게이샤, 절제미 등은 성찰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 시대를 볼 때 항상 중국은 다른 나라로, 한국은 압제하의 식민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일부'로 취급당한다. 영국의 식민지로 훨씬 더 오래 있었던 '인도'였음에도 '인도'는 따로 묘사되는 것을 볼때, 우리의 역사에 대한 국제적인 알림이나 관심고취가 필요한 것을 뼈져리게 느낀다. 일본계 정권인 금번 정권에서는 말도 못하게 심해졌지만, 그전에도 우리 정부의 지원은 다른 나라들이 붓는 정성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가깝다. 책 이야기를 하다가...
여행기라는 생각보다는 하나의 작품을 본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자유로운 영혼이고자했던 카잔차키스의 중국/일본예찬/비평에 식민지 조선이 빠진 것이 아쉽기 그지없다. 그의 표현을 통한 우리의 100년전의 모습을 보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