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451 환상문학전집 1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박상준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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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너무 많이 읽는거 아니냐" 또는 "책을 너무 많이 사는거 아니냐"라는 말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 그래서 책을 많이 읽을 뿐만 아니라 사서 모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정도는 들어보았을 말이다.  그럴때마다 나는 뭐 그런걸 물어보나, 또는 너님은 참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으로 무시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왜 이딴 소리를 들어야 하나, 내가 뭔가 이상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도 한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내가 책을 읽고 보관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려는 마음이 생겼는데, 아직까지는 막연하게 나란 무엇인가 미래에 전해주어야 하는 중요한 것을 보관하고 지키고 있는 일종의 지킴이 "Preserver"같은 것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운명지어진... 

아무튼, 화씨 451은 공상과학소설로 매우 유명한 (하다고 한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디스토피아 소설인데, 책이 없는, 아니 책을 읽거나 보관하는 것이 범죄가 되어버린 미래를 그리고 있다.  책을 소유하거나 읽는 것에 대한 페널티는 분서와 분신 내지는 투옥인데, 상당히 많은 디스토피아  영화계열에서 흔하게 인용되는 테마인것 같다.  당장 생각나는 것들만 해도 "이퀼리브리엄"이나 "V for Vandetta"등이 있다.  어느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이 쓰여진 시점이 1940-50년대인 것으로 보아 소설이 원조일 듯. 

소방수 대신 미래에는 방화수라는 것이 있어 일종의 도서/리더 척살대 같은 역할을 한다.  워낙 흔하게 접한 소재라서 새로운 느낌은 없지만, 왠지 읽는 내내 등골이 오싹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역사에서 흔히 대중의 생각하는 힘을 빼앗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조정하려는 시도는 항상 분서나 금서로 나타나왔다.  멀게는 유명한 시황제의 분서갱유 (책을 태우고 유생을 묻어버림)부터, 나찌스 치하의 독일의 분서, 아주 가깝게는 특정이념에 관련된 도서의 금서화 (역대 군사독재시절부터 행해져왔고, 최근의 수 년간도 이어지고 있는) 또는 금서화시도를 보면 역시 폭압자들은 책을, 정확하게는 책이 읽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책이란 단지 많은 것을 담아 둘 수 있는 그릇의 한 종류일 따름이니까.  책 자체에는 전혀 신비스럽거나 마술적인 매력이 없소.  그 매력은 오로지 책이 말하는 내용에 있는 거요" (화씨 451) 

수 년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온 전자책의 유통과 보편화가 한층 더 빠르게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특히난 자연보호와 자원보호 및 단가를 낮춘다는 엄청난 당위성하에 일단 교과서부터 전자책화가 확산되고 있고, 그 밖의 경우도 편리성때문에 (값 때문은 아닌 듯.  그렇게 많이 싸지도 않다, 종이책에 비해서) 전자책인구가 서서히 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누군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만약 모든 책이 전자책으로 바뀌고 종이책이 없어지고 나서 한참 뒤, 전기 플러그를 빼버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또는 특정한 방향으로 책을 일괄적으로 통합/조작하면 과연 그 시점의 우리는 그것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전자책화의 진행이 너무도 무섭다.  (과대망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도 더욱 나는 종이책을 사 모으고 읽고 보관하여 후세에 물려줄 생각이다.  이담에 꿈이 있다면 조금 한적한 교외에 큰 집을 짓고 한가하게 사는 것인데, 여기에 서고/서가를 짓고 지인들과 또는 뜻있는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갖고 교류하고 싶다.  그러다가 더 늙으면 그간 모은 책들을 바탕으로 도서관을 지어 마을에 기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도서관을 짓고 이를 유지하는 비용을 벌어들이는 것도 좋을 듯.  힘이 남아 있을때까지. 

나는 종이책주의자로 살다 갈 듯.   

PS 쓰고나니 화씨 451과는 별로 상관없는 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화씨 451을 읽고나서 떠오른 생각을 글로 옮긴 것이니까 그래도 화씨 451에 대한 이야기라고 우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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