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있었던 와이너리에서의 시음일정이 취소됐다. 오후 2:45에 시작해서 4:!5에 끝나고 내려와서 함께 술 한잔 하려던 계획이었는데 Pac NW를 강타한 싸이클론의 영향으로 태풍의 언저리에 위치한 이곳까지도 바람이 계속 심하게 불고 비가 올 예정이라서 그리 됐다. 덕분에 모처럼의 술약속까지 다 취소가 되었고 점심식사로 갈음하기로 했다. 지난 토요일밤 이후로 금주를 한 탓에 오늘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천상 내일 조용히 혼자 와인을 홀짝거릴 것 같다.
여행의 끌자락에서 9-11이 터졌으니 운이 좋다면 아주 좋다고 하겠다. 9-11은 동서냉전이 끝난 후 잠깐 온 10여년의 일극평화시대를 다극전쟁시대로 연 사건이었으니 이후의 세상은 우리가 알다시피 지금처럼 온갖 이념과 체제가 얽히고 설켜 사방에서의 국지전이 일상이 되어버렸으니 이렇게 무작정 유럽-터키를 이어 중앙아시아를 통해 중국으로 가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 아닌가 싶다. 기실 유럽-터키까지의 구간은 다른 책에서 커버된 바, 새로운 파트너와 함께 70대가 된 저자가 따로 나중에 수행핶는데 그 책은 지금 조금씩 읽고 있다. 여행엔 초보라서 위험한 여행을 하지 않더라고 겪을 모험은 충분히 save되어 있으니 산티아고 순례가 아니라면 비슷한 걸 하지는 않을 것이다만 아무 생각 없이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가는 여정은 나쁘지 않았다. 그저 내가 관심이 없을 뿐이지.
어쩌다 보니 계속 여행과 덜어냄 같은 테마의 책을 읽게 되었다. 나에겐 너무도 먼 이야기라서 딱히 공감을 하거나 깊이 빠져서 읽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흥미있는 이야기였다. 파미르고원은 고선지장군의 전기에서만 본 기억이 있고 미니멀 유목민은 YouTube에서 간간히 근황을 보고 있는데 요즘처럼 복잡한 머릿속 상황이 나를 이런 책으로 자꾸만 이끄는 것 같다. 딱히 미니멀리스트로 살 생각도 없고 혼자 멀리 떠날 생각도 없으니 그저 마음이 그런 탓일게다.
alternative history로써의 셜록 홈즈 이야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건들 이면에 있었다고 하는 실제 셜록 홈즈와 왓슨이 치룬 대-Cthulhu전쟁 4부작의 첫 번째. 뭔가 여행처럼 환상의 세상속으로 가고 싶어지는 마음에 그간 사놓고 안 읽은 시리즈를 하나씩 읽기로 했다. 왓슨의 불행이자 셜록 홈즈를 만나는 런던으로 돌아온 계기가 된 아프가니스탄의 전투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twist되어 홈즈를 만나는 곳도, 그를 만나게 해준 의대의 친구와의 조우도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다. 번역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흥미가 있다면 영문으로 구해야 한다. 나는 워낙 이 세계관이 좋아서 코넌 도일의 원작 말고도 여러 작가들이 쓴 노작들을 구해 읽는 사람이라서 너무 즐겁게 보고 있으나 이 책을 보려면 먼저 코넌 도일의 원작과 HP Lovecraft의 크툴루 시리즈를 읽어야 할 것이다.
그저 하루키가 좋아서 남들은 뭐라고 하는지 보려는 마음에 구한 책. 언젠가 하루키를 다시 순서대로 정주행해볼 마음을 갖게 되었으니 이런 저런 말이 많지만 하루키는 하루키로 나에겐 무한한 애정의 대상이 된다. 따로 비판이나 비평을 할 수 없을만큼 그저 무조건 그의 책이 좋아서 재즈와 클래식을 듣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와인도 마시고 샐러드도 먹고, 달리기도 했었고 수영을 하고 싶은 나니까. 그가 말하는 반복적이지만 건강하고 계획적인 일상의 삶을 나 또한 추구하는 바 언젠가는 그대로 따라해보고 싶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신선한 채소를 먹고 오전에 바짝 일을 하고 오후엔 다시 운동을 하거나 노는 일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2024년도 이제 다 끝나가는데 내년은 또 얼마나 빨리 지나갈 것인가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