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우기를 거쳐 살짝 여름이 오는가 싶더니 이제 8월이 지나면 가을의  NFL시즌이 돌아온다. 작년 시즌 오프닝 때 친한 사람들 몇이랑 같이 Yard House란 곳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게임을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바퀴를 돌아온 것이다. 한가한 듯 하면서도 차곡차곡 쌓여가는 일꺼리를 보면서 자칫 잘못하면 작년의 상황을 그대로 repeat하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 급해지는 한 주간이다. 


더위를 거의 모르고 지나간 6월과 7월이었는데 그래도 여름이라고 가끔 2-3일씩 덥다가 다시 풀리는 것을 몇 번 반복하긴 했었다. 8월도 대략 비슷하게 지나갈 것처럼 나온다. 다만 켈리포니아의 여름해는 역시 뜨겁기 때문에 아침과 저녁의 선선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충 오전 11시를 전후로 해서 저녁 6-7시까지는 상당히 덥게 느껴진다. 덕분에 건물이 열을 받고 AC는 max로 돌아가니 시원하면서도 가끔씩 서늘한 추위속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다. 


완전히 아열대기후로 바뀐 듯 한국의 여름은 이제 폭우로 시작해서 폭염 후 장마와 태풍을 지내야 끝나는 것 같다. 사람도 많이 다치고 모두 괴롭기 그지없었을 7월이 지났지만 덕분에 이젠 더위로 습기로 고생하고 있다고 하니 점점 여름엔 한국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장대비가 내리는 장마의 어느 날 저녁 때 빗소리를 들으면서 친구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때리고 싶다는 로망은 그대로인데 어제 통화해보니 막상 그렇게 벽을 열어제낀 곳에 비오는 날 앉아있으면 습하고 더워서 별로 즐겁지 않다고들 한다. 지금도 노동 BGM으로 틀어논 YouTube의 한국 + 비내리는 날은 시원하게 돌아가고 있건만..


넷플릭스에서 작화가 예뻐서 틈틈이 감상했던 애니메이션의 원작을 드디어 구했다. 2022년 4월에 나온 16권이 가장 최근의 작품이라서 언제 17권이 나올지 모르겠다만 빨리 다음 권이 나왔으면 한다.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고 양자로 들어간 집에서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쇼기 (일본 장기)를 익혀 프로가 된 아이가 주변과 함께 살아가며 도움을 받은 것 이상 든든하게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 우연히 만난 세 자매와 함께 형제처럼 가족처럼, 그리고는 연인처럼 의지해가며 잔잔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예쁜 그림체로 그린 만화. 훈훈하니 좋다.


추리소설도 아닌, 연애소설도 아닌 그 이상의 무엇. 내가 백수린작가의 다른 책을 읽었던가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다. 기실 일부러 파고든 케이스가 아니면 요즘의 나는 읽고서 싹 까먹어버리는 것이 다반사라서.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비우기 위한 독서가 되어버렸으니 이것은 득도를 넘어 해탈에 이르려는 선승의 독서인가 의문스럽다. 


부모문제로 잠깐 살다가 돌아온 독일에서 시작된 숙제는 화자가 마흔이 다 되어가서야 그 결말을 보여준다. 화두처럼 붙잡고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서 더 좋았던 이야기. 내가 other side of the street에서 노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슴이 시리게 안타까운 사연에 잠깐 눈가가 촉촉해졌던 것 같다.



중국역사에서 당당하게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고 역대 dynasty에서 보면 정말 많은 개조들이 출신의 적을 두고 있는 유협과 자객의 세계를 테마로 풀어낸 중국역사의 여러 장면들. 길디 길었던 조선시대 500년 간의 유교독재로 인해 사라져버린 탓인지 우리 역사에는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못하는 법 바깥의 인간들이 살아간 한 시절을 역사에서 추려냈다. 간혹 등장하는 지명과 함께 저자의 비감을 풀어내니 그런 대로 좋았다만 새로운 것이 없었기에 다소 지루한 면이 없지는 않았다. 그저 주선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태백이 검객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기에 그런 호방한 시가 나올 수 있었나 싶다. 형가가 역수에서 읊은 시도 오랫만에 떠올려봤다. 


읽는 내내 절절했지만 막상 떠올리면 딱히 할 말이 나오지 않는 두 권. 때로는 난해하고 때로는 너무 꼬아놓은 김훈의 글. 사는 것이 뭔지 의문이 드는 요즘에 어울리는 책 두 권. 뭘 해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아직 다 이룬 것도 없기에 계속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듯 살고 있는 요즘이다. 





나이들어 새로 시작하거나 다시 하는 운동엔 필연적으로 큰 부상의 위험이 따른다. 그러다보니 유도를 하고 싶다가, 무리가 덜한 Aikido를 해보고 싶다가, 처음으로 내게 운동의 묘미를 주고 자신감을 준 검도로 돌아가고 싶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좀 긴 term을 두고 나온 두 권을 보니 역시 유도가 하고 싶긴 하다만 '띠를 조여라'의 아이들이 아닌지도 오래되어 이런 로망스는 기대는 커녕 상상도 할 수 없기에 막상 시작해보려고 하면 주저앉게 된다. 주인공 일행이 커가는 모습이 귀엽다는 건 결국 나이를 먹어버린 탓이다. 물론 보는 내내 뭔가 있지도 않았던 청춘시절이 떠올라 행복했다.



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교양과 담론에 대한 이야기까지. 

어쩌다보니 읽는 시기가 섞였다.





멋진 이야기지만 한국에선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텃세는 그렇다고 해도 욕심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제도가 엉망이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개선되지 못한 땅의 경계문제부터 여기서 파생하는 돈의 문제, 게다가 세습되는 땅이라는 면에서 당사자를 넘어선 문제까지.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사람들이 들어오고 덕분에 살아남은 작은 마을에서 대안의 희망을 본다고는 하지만 기실 대부분 이 수준까지 가지 못하고 지자체의 지원금이 끊어지면 산산히 흩어질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청년'XX 어쩌고 해서 (여기에 창업, 예술, 지원 등등 여러 가지 단어를 갖다붙일 수 있다) 지원금을 받아서 이런 저런 활동을 하다가 자생하지 못하고 끝난 지역의 프로젝트가 한 둘인가. 뭔가 일을 추진하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할 것이니까. 



책사진. 가득 쌓인 책에서 지의 세계를 보는 것으로 만족. 













이제 다시 일할 시간. 9월이나 10월 비가 다시 오기 시작하면 어느 날엔게 허름한 식당에 앉아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한 잔 할 생각이다. 여기서 문제는 '허름'한 식당이라도 한국음식의 프리미엄이 너무 붙어서 엄청 비싼 것이란 것. 한국과 비교하면 정말 고기값이 싼 나라에서 등급이 낮은 고기를 쓰면서 값은 top notch steakhouse만큼 받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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