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책을 주문하여 받은 만큼 열심히 읽고 있다. 작년 연말에서 연초를 넘어 거의 6월까지 나를 괴롭히던 밀린 일들이 하나씩 처리되어 마침 휴가철이라 매년 다소 slow한 7-8월의 일정을 맞아 노력하고 있다고나 할까. 앞으로의 40년간 만 권의 책을 읽겠다는 계획을 세운 후 연평균 250권 가량의 책을 꾸준히 읽어온 것이 2017년부터 작년까지의 일이다. 그런데 전술한 바쁜 일로 인해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던 금년의 실적은 2017년 이래 최하라서 남은 6개월 동안 월평균 20권 정도를 읽어내지 못하면 마이너스가 된다. 일단 부족한 양은 그렇다 치고 그저 노력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예전에 '한국의 책쟁이들'이란 책에서 목재도매를 하면서 책을 읽던 '책쟁이' 사장님의 후기에서 보면 먹고사는 일에 시달리면서, 즉 하는 일이 잘 안되고 되는 대로 여러 가지 일을 전전하면서 책에서 멀어진 마음을 그 책을 읽던 당시의 나와는 달리 지금의 나는 이해할 수 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읽고 사유하여 친절하게 여과한 내용도 잘 이해를 못하겠으니 난 천상 문과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갈수록 이과에 대한 동경이 커진다. 다른 언어도 배우고 싶고 노래와 악기도 해보고 싶고 무술도 다시 해야겠다고 맨날 다짐하는데 여기에 더해서 수학을 아주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다시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다. 기초산수를 빼곤 모두 까맣게 잊은지 오래라서 진짜 기초부터 하나씩. 이미 삭아버린 어른의 머리지만 purpose driven이란 어른의 장점이 있으니 가능하지 않을까? 


인문학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다른 방법으로 세상의 이치를 명확하게 정리하고 이야기하는 '과학'이라는 학문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간서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열정적으로 달려들어 조금이라도 배워보려고 하는 사람이 사실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선생처럼 머리가 좋은 사람도 열심히 들여다본 결과가 그다지 신통치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더욱 큰 이슈는 이 책이 내가 읽은 선생의 책들 중에서 가장 boring하고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니 학부시절 교양을 때우려고 수학 대신 통계학으로 도망하고 과학은 논리와 인류학으로 적당히 넘어가버린 이 머리는 아마 수학이나 과학을 하기엔 모자란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력으로 되는 일도 많지만 분명히 안되는 일도 많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려니 하면서 꾸준히 기웃거릴 수 밖에. 


추신. Art History도 공부해보고 싶고 미술도 공부해보고 싶다. 문제는 내가 적녹색약이라서 아마 뎃생을 배우는 정도까지가 그림공부의 최선일 것이지만. 더 글로리에서 '알록달록한 세상'이 어떤지 네가 알겠냐는 식의 비아냥거림을 당한 x가 비록 극중 악당이지만 불쌍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또한 적색과 녹색이 섞여버리면 '알록달록한 세상'이 뭔지 모르고 기실 색 자체에 무척 약한 사람이라서 더더욱.


같은 책이지만 신간은 한길사 출판인 '김언호의' 이란 타이틀이 추가되어 나왔다. 다소 정확하지는 않지는 구판도 사 읽은 것 같다만 어쨌든 이번에 김언호 선생의 책을 사들일 때 구해 읽게 되었다. 평생 종이책을 출간해온 사람으로서 ebook에 대한 경계와 devaluation이 강한데 이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 다수에 해당하는 것 같다. 나 또한 제한적인 의미에서 ebook의 장점을 인정하지만 모든 reading이 ebook을 통해 이뤄지는 세상은 끔찍하다고 본다. '책 한 권'이란 말이 사라지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교과서난 잡지, 신문 같은 정도, 그리고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의 유용성 정도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 


세상의 아름다운 서점들이 많다. 책이 쓰인 당시에서 약 10년 정도가 흘렀고 세상은 더욱 개판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강한 서점들은 살아남았을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에서 City Lights가 뉴욕에서 The Strand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이 책에서 다뤄진 대다수의 서점들은 아직도 살아있을 것 같다. 파리에서 '셰익스피어 앤 Co.'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그러나 중국의 경우 사정이 아주 다르다. 분서갱유를 일으킨 진시황의 후예로도 보이는 현 중국의 독재자 시진핑은 자유로운 사상이 백가쟁명하고 백화만발하는 서점을 눈에 가시로 보는 듯 이 책이 쓰인 당시에도 이미 상징적인 명소들이 건물에서 쫒겨나는 형식으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고 유수의 출판인들이 정부에 불법적으로 억류되거나 심지어 외국에서 납치되어 고초를 겪고 있다. 


대형온라인서점과의 경쟁에 점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어가는 것은 더욱 큰 문제. 하지만 모쪼록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기를. 당장 나같은 사람도 일부러 종종 BN에 나가서 더 비싼 값을 주고 책을 사오는 것으로 작게나마 support를 하고 있으니. 모든 책을 온라인에서만 구해야 하는 팍팍한 세상은 오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출판인 김언호가 만난, 희망으로 가득했지만 슬픔과 절망을 겪어야 했던 그해 봄날의 지식인들의 이야기. 이미 품절이나 절판으로 인해 구하기 어려워졌지만 함석헌 전집, 한길사의 한국사 전집은 꼭 구해고 싶다. 예전에 간서치 이덕무 전집도 너무 금방 절판되어 구하지 못한 바 시장이 작고 책은 갈수록 팔리지 않는 한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 책이 너무 빨리 품절에서 절판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쉽다. 


김대중, 함석헌, 리영희를 비롯해서 이번에 처음 알게된 많은 분들의 책을 하나라도 구해보려고 한다. 아울러 대독재의 시대에 반독재투쟁에 앞선 분들은 2023년 현재도 그렇게 꿋꿋하게 자신을 지키고 있을지. 이낙연의 경선운동을 돕다가 떨어진 그의 암묵적인 지시 혹은 동의로 윤석열에게 달려가 지지선언을 던진 정운현이 그 전까지 친일문제를 평생 연구하고 역사확립에 힘을 쓰던 사람임을 생각할 때 이런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슬프고 처절했던 그해 봄날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중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이 많고 최소한 그분들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살다가셨음에서 내가 살아갈 인생 후반기의 지향점을 본다.


'서재'을 매개로 한 글이긴 한데 작가들은 모두 일본 근대문학의 사람들이라서 굳이 말을 하자면 '일본'작가의 서재란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작가의' 시리즈의 네 번째.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다소 무리한 stretching이 심해지니 다섯 번째가 나올 수 있을지, 나와도 meaningful할지 의문이다. 소소한 신변잡기.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가 일본의 근대문학이라서 나쁘진 않았지만 딱 그만큼. 




'도덕'이란 무엇일까. 불변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생각되나 이 또한 상대적일 수 있을까. 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감히 생각되는 수준의 뛰어난 작품성과 함께 소설의 재미도 압권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그랬고 많은 작가들의 초기작들에서 느껴지는 힘찬 신선함이 있다. 그러다가 이윽고 많은 작가들은 월간지를 찍어내는 듯한 frequency로 고만고만한 작품을 찍어내고 수준은 딱 평타를 치는, 한번 읽으면 다시 볼 생각이 들지 않는 이야기를 양산하게 되어 다시는 찾지 않게 될 것이니 좋은 책을 쓰는 것도 결국 한때의 힘인 것이다. 오승호작가 또한 그런 길을 밟게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지금까지 나온 그의 작품들은 매우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읽은 두 권은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된다. 반전도 좋았고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남은 작품들도 하나씩 읽으려고 한다.




아주 personal한 이야기. 러시아가 더 이상 거시적으로 멀게 다가오지 않는다. 덥고 불결한 거리, 거지, 빈민, 카스트, 관광지의 모습으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인도가 친구 몇이 생기고 어울려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훨씬 더 실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얼마전에 했는데 이때와 비슷한 느낌이 책을 읽는 내내 있었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화적인 tip도 있고 무엇보다 러시아사람의 관점에서 쟁점이 되는 현대의 러시아-서방세계의 문제를 듣는 것이 도움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더 많은 책을 주문하게 되는 것이 책이나 서점에 대한 책을 읽을때의 후폭풍이다. 24년 동안 책을 구매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이 알라딘에서 + 집계된 것만 7천만원이 넘는다. 미국책과 헌책방의 책, 기타 소소하게 서점에서 구한 책들까지 하면 대충 25년을 잡고 원금만 일억이 넘을 것이다. 기실 가진 책이 8천 권이 넘어가니 그런 계산이 아주 틀릴 것 같지는 않다. 그걸로 테슬라 주식을 샀어야 한다는 생각을 아주 아니할 수는 없지만 그 책과 함께 살아온 것이 지금 나의 모습이리니 어쩌겠는가.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을 보면서만 아마존에서 5권 정도, 알라딘에서 최소 15권 이상을 주문한 것 같다. 아직도 구하지 못하여 절판이 두려운 시리즈가 몇 개 있고 출판사에 직접 연락해서 구하고 싶은 시리즈도 몇 개 있으니 바쁘다고 툴툴대지 말고 열심히 일할 노릇이다. 내가 책을 읽고 소유하는 건지 책이 나를 읽고 소유하는 건지. Things you own starts owning you라는 Fight Club의 경구가 떠오로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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