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여행법 하루키의 여행법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마스무라 에이조 사진,김진욱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새벽에 눈을 떴을때 바로 일어나지 않고 밍기적거리다가 잠시 눈을 감으면 잠깐이지만 깊은 잠이 들어버리고 몇 시간을 더 잤어도 개운하지 않게 겨우 일어나 아침을 맞게 된다. 이곳으로 이사온 이래 패턴이 깨져버린 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나의 잃어버린 새벽의 모습이다.


차도 많이 밀리고 몇 군데 먼저 들릴 곳이 있어서 더욱 늦어진 탓에 무려 지각을 하고야 말았다. 자영업자에 어차피 전화나 메일로 거의 실시간 대응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 게임은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할 일이 밀렸다는 뜻. 게다가 이렇게 하루의 패턴이 엉망으로 시작되면 요즘처럼 길게 지쳐있는 시기에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루가 지나가기도 한다. 


딱 그런 하루. 


운동도 했고 책도 읽었으니 어쩌면 이 두 가지는 생업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일은 늘 하는 것이라서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운동과 독서는 놔버리면 게으름이 계속 이어져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아무튼 뭐라도 악착같이 해야 하니까.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당연히 시간이 딸려서 그리고 집중이 잘 안되는 날이라서 즐겨 읽는 책으로 무난하게 가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마구잡이로 집은 건 아니고 하루키의 지중해 여행이나 그리스 혹은 이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볼 생각에 들고 나왔던 것. 그런데 읽는 내내 지중해는 커녕 유럽 근처도 가지 않길래 잠시 뭔가 싶었는데 기억해보니 그쪽은 아마 '우천염천' '먼 북소리'였던 것 같다. 


재독에 삼독에 사독도 부족한 것이 나이든 이의 독서인데. 사실 책을 지금처럼 많이 구해읽지 않던 시절, 그러니까 갖고 있는 걸 계속 보고 또 보던 십대와 이십대에 읽은 책이 기억에 잘 남아있는 건 fresh한 뇌도 그랬겠지만 여러 번 읽은 것이 더 큰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는 좀처럼 좋은 우동집을 찾지 못한다. 남가주에 몇 개 있는 마루카메 프렌차이즈가 이곳엔 저 멀리 SF에 있고 근처엔 좀 한다는 곳 몇 군데를 가봤는데 영 별로. 어차피 면은 기술이 좋아져서 집에서 끓여먹어도 그만이니 국물이나 분위기 그리고 우동에 걸맞는 값이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호놀룰루에 가면 아침마다 와이키키에 있는 마루카메 우동에 가서 싸게 아침을 먹고 (하도 먹다보니 우동의 기본기에 충실한 가케우동이 최고다) 좀 모자라면 점심 전에 주먹밥은 먹곤 한다. 


하루키는 우동을 먹기 위해 시코쿠에 있는 우동 마을로 가서 우동수행을 하고, 작가들이 모여 사는 뉴욕주 위의 이스트햄턴도 가보고, 멕시코도 깊숙히 다녀보고, 몽골도 가고, 다시 미국에서 동서횡단도 하고. 연예인이나 작가, 잘 된 경우에 한해서겠지만 8-5, 24/7에 엮이지 않고 중간에 자기의 시간을 뭉텅이로 가져다 쓰는 것이 무척 부럽다. 물론 안 가본 곳이 너무 많아서 안전하고 알려진 곳만 찾아가도 다 못갈 것 같아서 굳이 위험한 곳을 갈 생각은 없지만.


한 것도 없이 피곤한 하루의 끝이다. 오늘은 잠을 좀 많이 잘 수 있을까? 자다 깨기를 너무 반복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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