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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평점 :
요즘 너무 많이 밖으로 다니고 놀았던 탓일까. 금요일이 힘들게 느껴지는 건 쉽지 않은데. 뭘 읽을까 고민하기도 전에 하루가 다 지나가버린 나에게 마침 최근의 주문박스가 도착했고 허지웅의 따끈따끈한 글을 읽기로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너무 많이 나와는 다른 하지만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라서 만나서 노는 즐거움 뒤에는 더욱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지고 힘이 든다. 뭔가 북적대다가 잔잔하게 모든 것이 가라앉고 나면 허탈하고 허무하기 짝이 없으니 좋고 싫음을 떠나서 어린 시절부터의 고향친구를 만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제 나에게 다시 더 집중하려고 한다. 바깥으로 사람을 만나는 건 낮의 시간에 조금씩 짬을 내서 하고 저녁과 밤, 그리고 새벽의 소중한 시간은 되도록 나를 위해 비워놓아야지 싶다. 일을 열심히 하되 이제 남은 삶은 끝없이 배우고 수행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슬슬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되긴 했다.
COVID-19의 시작에서 최근 언제까지의 시간에 쌓인 묵직한 이야기들을 쉽지만 매우 지혜롭게 풀어놓았다.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았던 만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직 거기에 있기엔 너무 젊은 나이라서 더욱 사유가 깊어진 느낌이다.
한창 그의 필력이 그를 세상에 드러내던 시절의 날카로움과 냉소(?)어린 독설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처절하리만치 터프한 젊은 시절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속에서 쌓인 것들을 많이 내려놓았다고 하면 맞을까. 이젠 조금씩 많은 것들과 화해를 하고 조금 더 넓고 멀리 바라보는 듯한 글에서 그 또한 40대 중반에 접어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최소한이나마 이웃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부터 지난 한 주간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구도자의 수행을 재개하기로 한다. 되도록이면 분위기에 취해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가능하면 남의 말을 많이 듣고 생각하고 배우고자 한다. 어차피 말을 많이 직업인데 공사를 떠나 일이 아닌 자리에서는 말을 좀 아껴도 좋겠다. 묵언하심이라는 말도 있으니 그저 조용히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살피면 큰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갑질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부대끼면서 더 많이 일어나는 듯한 글이 기억에 남는다. 부자는 어차피 대우를 돈으로 사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어떤 항공사 집안사람들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비슷하게 얽혀 사는 사람들끼리 role을 바꿔가며 갑을병정 놀이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송곳을 타인에게 찌르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보듬는 것 같고, 그걸 대물림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한 희망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사람이나 문명의 존속 같은 것에는 점점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그저 사는 동안 잘 살다 가야지 하는 생각만 한다. 사람에 대한 보편적인 애정은 크게 키우되 순간의 집중은 스스로에게 할 일이다. 모든 것인 자기자신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보니까.
내일은 모처럼 하루를 full로 제대로 보내보려고 벼르고 있다.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하이킹을 하고 책을 보다가 저녁 해질녘에 잠깐 또 걷고, 그렇게 조용히 알차게 지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