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운동선수들의 몸집과 운동력, 그리고 승리를 향한 attitude과 끝없는 승부욕, 거기에 종종 거친 면까지 보면 문득 과거 힘과 기교로 싸우던 시절, 장군이나 전사가 되었던 사람들이 냉병기의 전쟁이 사라진 지금은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더해진다면 지장이 되는 것이고 덕성이 좋다면 덕장, 잘 싸우지만 다른 덕목에 하자가 있으면 보통에서 상위의 용장이 되는 것이고, 몸집은 크고 비교적 용감하지만 전체적으로 모자란 경우, 혹은 동급의 상대에겐 겁을 먹는 경우라면 프로세계에서는 대략 중하위권 선수처럼 생각해보니 꽤 그럴 듯하다. 역사공부를 계속 한다면 이렇게 갑자기 떠오르는 자투리 생각들을 잘 정리했다가 파고들어보았을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은 그런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무는 걸 허용하지 않기에 내 daydream력은 예전보다는 많이 떨어졌다.


저자가 남긴 세 권의 책들 중 두 번째로 선택해서 읽고 있는 고대 여신의 이야기.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원해서 그 일대로 퍼져나간 여신과 어머니신, 거기에 태양신의 신화와 결합되어 변형을 거쳐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모태가 된 이야기. 흔히 기독교가 차용한 설화로 거론되는 미트라, 그 보다 더 위로 가면 이시스와 호루스, 오시리스 설화보다 필경 수 천년은 앞서있는 이야기. 지금부터 아무리 못해도 5000-7000년 전에 기록되기 시작한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창조와 자연현상 및 그들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수메르의 역사는 지금이 아닌 그리스와 로마의 시원으로 간 고대사의 사람들의 관점에서도 3000-5000년 전의 이야기로 볼 수 있고, 그렇다면 우리가 읽는 수메르의 이야기는 5000-7000년 전 사람의 관점에서 그린 까마득한 고대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조각으로 나뉘고 그 엄청난 세월을 거쳐 우리에게 남은 이야기는 수메르의 시대에도 이미 수 천년 동안의 변형과 언어의 변형을 겪고 남은 fraction of fraction뿐이다. 여기서 고대사에는 연구자 혹은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되어야만 복원이 가능한 필연적인'오염' 혹은 '창작'된 역사라는 nature를 갖게 된다. 어디까지가 원형이고 어디서부터 상상인지 알기 어려운 교묘한 조합으로 다시 추적되는 고대의 고대사. 흥미를 같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여기까지 가면 아눈나키니 뭐니 해서 고대 우주인의 발전된 과학을 통한 지구인의 창조이야기의 근거가 되어 UFOLOGY의 이론에도 등장하니 수메르라는 테마는 끝없는 의문과 상상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환'이론에까지 적용되니 그야말로 수메르가 차지하고 있는 역사와 그 밖의 모든 것들의 위치에 어울린다고 하겠다. 초기부터 따져서 우리가 뭉뚱그린 수메르 역사는 기실 아무리 짧아도 2000-3000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 사실 '수메르'라고 한데 모아서 그렇지 엄청 긴 시간의 명멸과 망각, 발굴이 거듭된 이야기라고 보아야 옳겠다. 당장 천 년이면 고려의 시작인데 해독이 가능한 한자로 남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대상이 되는데, 이건 고대에서 이미 몇 천년이니.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아침이다.


나치의 절대적인 추종자가 아닌 대다수의 독일군인들과 독일인들이 저지른 1930년대 부터 종전까지의 학살, 폭력, 강간, 도둑질을 비롯한 테러행위에 대한 고찰. 이데올로기가 아니어도, 특별히 악하거나 거칠게 타고나지 않았어도 (물론 폭력이 생활의 일부였던 시대이긴 하지만) 혹은 심지어 나치를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시작된 후 교전지역과 점령지의 민간인에게, 그리고 독일과 독일의 영향권이 미친 모든 지역에서 유대인에게 가해진 그 엄청난 범죄는 결국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폭력을 조장하거나 둔감하게 하는 환경속에서 벌어졌다는 사실. 예전에도 몇 번 그런 causation 혹은 correlation에 대한 이론을 봤으니, 전쟁 이후 돌아온 군인들이 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사회 전반의 폭력과 폭력적인 범죄의 증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음이다. 긴 책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flow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만큼 원래의 내용이나 번역까지 잘 쓰인 책이라고 생각된다. 포로들이 일상에서 나눈 대화르 도청해서 남긴 방대한 기록을 조사한 연구의 결과라고 하니 '새로울 것이 없다'는 역사도 실은 꽤 흥미로운 것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표제작 외에도 소소한 소품처럼 짧은 단상의, 마치 아이디어에 아주 조금, 뎃생보다 조금, 아주 조금 색을 입힌 정도의 이야기들. 창작노트와 단편의 중간. 나중에 중편으로 뽑아서 살을 입히고 장편으로 다시 옷까지 잘 입혀놓으면 좋겠지 싶은 이야기들이 꽤 있다. 이런 정도의 단계에서 책으로 엮어 내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충실함이 요구될 것이니까 쉬운 일은 아니겠다. 하지만 늘 장편에 목마른 한국문단에 대한 나의 편견(?)에 기준해서 보면 작가는 장편을 계속 써낼 능력을 키워야 한다. 단편의 함축적인 기교와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으나 단편 일색인, 혹은 장편이라고 해야 요즘 font크기와 글자간격에 미춰 보면 옛 중편에 해당할 정도의 양이 대다수의 한국소설의 현실이 더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딱 세 권을 겨우 읽은 것이 지난 주. 어제는 밤에 갑작스런 충동구매로 김영하북클럽에서 선정된 책들 중 내가 갖고 있지 않는 것들과 함께 김영하, 김중혁작가의 신작을 주문했다. 4월에만 네 번 이상의 구매를 한 셈인데, 최근 붉은돼지님의 근황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을 거의 다 팔아서 주식에 넣었다는 말씀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자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5월 중에는 딱 두 번만 주문하거나 아예 쉴 생각도 하고 있다. 책이 없어서 못 읽는 상태가 아니니까. 


이제 주말의 운동을 나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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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2-05-01 0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말에는 운동을 좀 쉬어야하는데, 이상하게 꼭 오버트레이닝을 하게 되는 일요일이네요.

transient-guest 2022-05-01 09:59   좋아요 1 | URL
사람마다 패턴이 다른데 저는 주말 이틀은 무조건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리하면 주중엔 삼일 정도만 잘 채워도 일주일 닷새는 하게 되니까요. 감은빛님의 패턴은 저와 다른가 봅니다. 주말에 쉬어야 하는 패턴이면 가능하면 쉬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치면 오래 괴롭기 때문에 저도 무리는 하지 못합니다.ㅎㅎ

얄라알라 2022-05-01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엔 칼로리보충(이라기 보다는 과잉)으로 빠지는 저에 반해서 transient님의 주말 스케줄 이상적이고 배워야겠습니다 ^^

[나치의 병사들]은, 2022년 5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쟁을 생각하며 읽는다면 마음이 너무나 불편해질 것 같습니다.

운동 하시고 시원한 알코올과 함께 하시길!

transient-guest 2022-05-01 23:04   좋아요 1 | URL
저도 주말엔 막행막식으로 주중의 건강한 생활로 얻은 걸 많이 offset시켜버립니다. 이번 주말부터는 조금 더 조심하려고 합니다. ‘나치의 병사들‘은 여러 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사실 언론에서 감춰서 그렇지 미국의 2차 이라크 침공이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못하지 않았을 것이라서. 거시적인 세상은 이해와 돈으로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