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특별히 머리가 좋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다. 실제로도 난 특출난 재주가 있거나 번득이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그나마 남들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뭔가 목표를 잡으면 아주 오래 그걸 진득하니 바라보며 걸어갈 수 있다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너무 바보같은 사람들을 보면 머리가 나쁘면 몸으로 배워야 하니 몸이 괴로울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다. 


트럼프가 조장한 연초의 쿠데타스러운 폭동에 참가한 사람들,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 50년이 넘어 사회에 완전히 정착한 Roe v. Wade 판례를 엎어버리려는 사람들, 항문의 힘을 지지하는 사람들, 나쁜 이념과 가치를 그대로 Yuji하려는 사람들, 윤석열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 등등을 보면서 멍청한 사람들이 나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회구성원이라는 사실에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갖게 된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오면 좋은 사람들은 기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크게 상관이 없는 사람들일 것이고 그들이 지지하는 그 세력이 바로 자신들을 뜯어먹는 자들임을 모른다면 피를 빨려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세월호참사를 겪은 1020이 지금의 2030이 되어 현 정부를 비난하면서 항문의 힘과 항문의 힘이 내세운 더러운 인간을 지지한다면 그야말로 머리가 나빠서 몸이 괴로울 수 밖에 없는 꼴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전체적으로 게으름을 피운 하루였다. 전날 과음을 하여 몸이 많이 피곤했기에 운동도 일도 적당히 처리하고 곧 업무를 마칠 시간을 맞게 된다. 이렇게 하루를 보낸 저녁에는 다음 날을 반드시 잘 보내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는데 어쩌면 그렇게 주기적으로 한번씩은 힘을 빼주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활시위를 계속 당겨두면 끊어지는 것이니 가끔씩 풀어주어야 하는 것처럼.


12월은 한 달간 책을 좀 열심히 읽어볼 생각이다. 마침 내무부장관께서 한국순방길에 나서셨고 약 1.5개월은 단순하게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다. 사실 어제 굳이 한 잔을 걸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너무 기뻐서 적적해서였는데 아무튼. 일일 일책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부터 시작.


넷플릭스 드라마로 먼저 봤기 때문에 이미 주인공 하먼의 이미지는 러브조이라는 아주 특이한 매력을 가진 배우로 형상화가 되어버렸다. 연기도 연출도 패션도 훌륭했지만 러브조이가 뿜어내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던 드라마의 원작을 내용을 다 알면서도 사 읽은 이유도 사실 배우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끔씩 빠르게 돌려보기로 다시 봐도 그 즐거움이 가시지 않는 호쾌한 체스무협지라고도 생각되는데 책과 드라마가 거의 같아서 새로운 것이 전혀 없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스토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래픽기술의 엄청난 발전으로 하먼이 형상화하는 가상의 체스보드와 행마의 표현이 끝내줬는데 책으로만 봤다면 그 정도로 멋지게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체스나 장기, 바둑엔 재주가 없어서 딱 여기까지만.


이덕일선생이 주창해온 사관과 설, 그의 노고까지 모두 인정을 하고 존중하며 동의하는 편이지만 최근 그의 행보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된다. 강단사학-재야사학의 대립구도와 한국이 국사를 대하는 태도 및 일제부역자들이 키운 마름같은 인간들이 국사의 '대부'이자 '시조'가 된, 뿌리부터 잘못된 국학계에 대한 비판은 인정하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그냥 아스트랄계로 떠나버리게 되는데 나에겐 그 지점이 대륙삼국설이 된다. 고대사의 강역이 축소되었다는 학설까지는 워낙 그 증거가 방대하여 인정을 안 하는 이병도학파가 문제라고 하겠지만 그걸 넘어서 숫제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위치를 중국대륙에 옮겨놓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으니 책이 눈에 잘 들어올 리가 없다만 그래도 읽던 책이고 아직 조선왕조실록을 제대로 안 읽어봤기에 끝까지 볼 것이다. 그의 학설이지만 예종이 성군의 기질이 있었다는 주장 또한 그간 워낙 존재감이 없었던 왕이라서 신선하고 명나라의 왕을 '임금'으로 표현하는 자주성 또한 나빠 보이지 않는다. 


다만 현 정권에 대한 비방이 도에 지나친 것 같다. 기실 한국의 교육계의 큰 문제인 국사교육의 축소는 언제고 빨리 address되어 고쳐져야 하는 것이지 문재인정권이 뭔가를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발전된 국가, 아니 어느 나라가 자신의 역사교육을 이렇게 등한시하는지 모르겠다. 국어/국사는 한 민족국가의 근간이 되는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친일파가 장악하여 기득권화된 현대국가 한국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런 저런 만화책을 따로 모았다. 계속 보는 작가들이라서 언제고 몰아서라도 읽어버린다. '맛의 달인'은 49권까지 봤고 아직 세 권이 더 남아 있으며 최근 117권까지 나온 걸로 알고 있으니 이제 거의 반 정도 온 것이다. 이토 준지는 공포만화라고 하지만 난 그가 '공포'라는 단순하고도 좁은 범주를 넘어 '서리얼리즘'의 대가라고 생각한다. '공포'는 그의 작품세계를 담아두기엔 너무 좁은 그릇이다. 작중인물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어떤 괴현상을 실제로 받아들이는 괴랄함이 '공포'란 표현을 너무 단순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공포의 물고기'와 '인간실격'무삭제판도 이번에 구했는데 조만간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을 때 가져다 볼 것이다. 이 외에도 만화책을 뜯지도 않고 쌓아놓은 것이 많아서 12월 중으로 가끔 몰아서 볼 생각을 하고 있다. '권법소년' '쿵후보이 친미' '이니셜 D' '야와라' 같은 작품들이 애장판이나 신장판 타이틀을 달고 고급하게 나와서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즐거워하고 있다.


둘 다 즐거운 책. 이번에 나온 건 '그때, 맥주가 있었다', 유시민작가의 방송에서 다뤄진 걸 읽었다. '유럽 맥주 견문록'이 보다 더 촘촘하고 넓다면 이 책은 조금 더 집중적이면서 맥주를 넘어 맥주를 통해 본 유럽의 사회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내 맥주편력은 고등학생때부터 시작됐는데 처음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가벼운 라거로 시작해서 한동안 두터운 에일계통으로 갔다가 다시 라거로 와서 점점 더 싼 맥주를 마셔왔는데 이 책을 보고서 다시 좀더 족보가 있는 맥주로 옮겨가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와인이 가장 뒤끝이 없어 좋아하게 되었지만 맥주에는 그 특유의 맛과 멋과 향이 있기에 걷고 뛰는 거리를 늘리고 운동을 더 많이 하더라도 가끔씩은 마셔줘야 할 것 같다. 주말에 Whole Foods나 Bevmo에 가서 좋은 맥주를 좀더 찾아봐야할 것이다. 동경대지진 이전엔 물이 좋기로 유명한 에치고현에서 담근 맥주가 참 좋았는데, 이젠 일본제품은 역시 조심하게 된다.


이 책은 처음 나온 것, 그 다음에 나온 개정판을 거쳐, 이번에 세 번째 버전을 읽게되었다. 워낙 유시민작가, 아니 유시민의 팬이라서 지겹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그가 말한 대로 은근히 많은 부분을 고친 것이 보였지만 그래도 repeat을 하니 처음처럼 신선한 즐거움은 없었다. 치기어린 그도, 사회와 세상을 조금 더 알게된 시절의 그도, 지금처럼 뭔가 달관한 듯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는 그의 모습도 다 좋지만 이런 책은 원래 좀 강하고 허세를 부리면서 떠들어주는 것이 제맛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이 절제가 된 걸 보면서 느껴지는 세월의 힘이라니.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이고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이 있기에 약 80년의 relative peace의 시기를 지나 반목과 전쟁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는 어느 지점에 들어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전 세계적인 파시즘의 귀환에서 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하늘 아래 새로운 건 많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역사뉴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재미를 위해 읽은 책과 그 이상을 받은 책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책은 재미와 함께 일본의 아주 특이한 문화를 알게 해주는 독특함이 있다. 폴 오스터는 늘 흥미있는 기획을 하는데 이번의 책을 보면서 역시 사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는 명제가 상당히 진실에 가깝다는 걸 생각했다. 사실 폴 오스터 자체가 사실과 허구를 잘 버무린 덕분에 어디까지가 소설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의 이야기인지 알기 어려운 작가가 아닌가. '와일드 시드'는 다시 한번 왜 옥타비아 버틀러가 대단한지를 상기시켜주는 대단한 작품이었다. SF와 racism, gender라는 어마어마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녹여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건 정말 대단하다.


막판에 어거지로 다 모아서 펼치는 것으로 지난 번 페이퍼 이후 지금까지 읽은 책을 추억했다. 이번 달부터는 심기일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독서와 운동, 그리고 12월의 마무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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