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을 흘린 상태에서 혹은 샤워 후 등 땀구멍이 열린 몸에 파스를 바르면 아주 따갑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다. 한쪽 어깨가 계속 아픈데 특히 미는 동작에서 점점 더 힘을 주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운동에서의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나아지겠지 하면서도 은근히 계속 되는 고통에 자꾸 몸을 움츠리게 되는데 이러다가 자칫하면 마음이 움츠러듦에 따라 이윽고 운동도 게을리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모처럼 조용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사무실에서 상체를 쓰는 운동을 천천히 해주고. 












중원문화사의 판본으로 두 질. 그리고 이번에 구한 김영사의 정식라이센스 판본으로 한 질. 처음 읽은 건 중학교 3학년 때. 


녹정기 2부로 예전에 김용의 작품인줄 알고 구해보니 양우생의 '강호삼녀협'을 가져다가 '녹정기'의 유명세에 얹어 판 책. 찾아보니 지금은 '소오강호'의 이름에 얹어서 파는 듯, 소오강호 2부로 되어 있다. 웃기는 건 시대적으로는 그나마 녹정기에서 이어지는 강희 말년에서 옹정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작품이라서 작명(?)센스가 있었다고 하겠으나 소오강호하고는 전혀 연결이 될 수 없는 작품이라서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중원문화사가 원래 정식라이센스 없이 가져다 해먹은 것들이 많은 곳이라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고 기실 구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그나마 출판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도 약간 갖고는 있지만 이건 좀 심하다 생각된다. 명말청초 한족의 유생 여유량의 손녀인 여사랑과 좀더 나중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풍씨자매를 합쳐 강호삼녀협이라는 원제가 나온 것 같다. 재미는 있는데 김용과 많이 다른 방식의 전개를 가져왔고 아무래도 날림번역의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제멋대로 재단한 것 때문인지 내용이 좀 중구난방이다. 


여기서 등장한 '혈적자'는 사람이 아닌 청대에 궁중위사들이 요인들을 포박하거나 암살할 때 사용했다는 무기로써 암기는 아니다. 간혹 중국무술을 다룬 책에서 암기류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특수하게 고안된 무기에 가까운데, 장치를 통해 줄에 매달린 모자같은 걸 던져서 사람의 머리에 씌운 후 줄을 잡아당기면 내부의 날카로운 톱니장치같은 칼이 주둥이를 오무려 목을 잘라서 머리쨰 혈적자의 사용자에게로 돌아가는 형태라고 한다. 이걸 자꾸 '혈적자'들이 어쩌고 하니 옛날엔 무척 헷깔렸던 기억이 있다. 


무술이 높아서 악인에게 흉계를 당해 독살을 당하거나 해를 입는 경우가 많이 등장하는데 (1) 강호인이 그렇게 순진하다는 걸 믿기 어려운 면과 (2)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세력가를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겠다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했다. 


T셔츠를 좋아한다. 싸고 편하고 간수하기도 이만큼 쉬운 겉옷이 또 있을까? 팬데믹 이전부터 미팅이 없으면 어느 순간부터 매우 편하게 입고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작년부터는 미팅이 없으면 아예 dress up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일을 하고 운동을 하는 등, 거의 캐주얼한 차림을 일년 내내 달고 산다. 금년 7월까지는 그런 의미에서 옷장을 정리하고 입지 않는 건 다 구세군에 가져다 줄 생각이다. 하와이에 살게 되면 더욱 그렇게 될 것인데, 실제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옷 값이 적게 든다는 거다. 나 또한 그럴 수 있는 날을 꿈꾸는데 계획에 맞춰 착착 진행이 되면 좋겠다. 책에서 다룬 T셔츠 예찬에는 따라서 120% 공감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로, 그리고 삶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지표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본다. 꾸준함, 부지런함, 운동, 루틴에 맞춰 돌아가는 일상 그리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듯 구도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 모습까지 그대로. 

















좋은 글을 잔뜩 모았는데 눈으로는 읽고 있어도 마음으로 들어오지는 않는 신기한 경험. '책의 힘'은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고 다른 두 권은 작가를 애정하고 추모하면서도, 게다가 '밤의 언어'라는 매혹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눈이 글자를 따라갔을 뿐. 


새삼 어린 시절의 나에겐 지금의 어벤져스와도 같았던 강호의 협사들의 근황이 궁금해진 요즘 새로운 판본으로 읽기도 하고 30년 전에 산 탓에 보관상태가 상당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누렇게 변색된 책을 꺼내서 다시 읽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구해서 읽은 '무협소설'과 '무협영화'에 대한 책 두 권. 각각의 장르에 대한 reference로써, 다소 정확하지 않은 듯한 부분이 있지만 손색이 없다. DVD collecting이 한창이던 어느 때 모은 Hong Kong Classic시리즈의 Shaw Brothers 영화들과 이를 고스란히 현대로 옮겨놓고 검이나 창 대신 총을 쥐어준 8-90년대의 홍콩느와르를 찾아서 책장에 꽂아놨다. 막연하지만 언제 하나씩 보려고.


양우생, 와룡생, 고룡, 불초생, 환주루주 같은 대가의 작품들은 초기의 붐을 타고 해적판으로 조잡하게 번역/번안되어 나온 것도 한 40년 전의 일이고 중국과 중국의 재료를 모아 한국적인 감성으로 창조한 신무협의 대가들도 이미 50대를 넘은 작가들이 태반이다. 함축적인 맛이 중요한 무협이 웹소설스럽게 수십 권으로 늘어지는 당금의 작품들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니, 한국에 오래 체류하게 되면 헌책방에서 해적판이나마 사들이고 싶은 책의 목록이 또다시 늘어나게 생겼다. 















두 권을 다 구했는데 앞서 읽은 한국 현대문학 수업이 이번에 개정판으로 '남성작가'로 바뀐 걸 알고 여성작가 편을 읽었다. 이렇게 자꾸 같은 책을 사는 건 곤란한 일이다. 여전히 아주 많이 모자란 한국문단에 대한 나의 지식으로는 깊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지만 장편의 부재가 아쉬운 건 성별을 뛰어넘는 한국문단 전반의 큰 화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또다시 하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 습작의 일환으로 좋은 작가의 글을 필사하고, 이를 고쳐쓰고 하면서 어느새 자기의 작품으로 둔갑(?)시키는 버릇(?)이 쌓이고 쌓인 끝에 터진 것이 신경숙 작가의 표절사건이라니 출판사와 편집자의 게으름과 방조에 화가 날 지경이다.



두 권은 계속 이어가면서 구해 읽는 시리즈. 아다치 미츠루는 여전히 야구를 빙자한 연애이야기를 하고 있고 아베 야로는 여전히 음식을 빙자한 인생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슴이 뛰게 하는 일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 나이에 그래도 가끔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을 보면서 열정이 조금 빠진, 하지만 머릿속과 마음은 여전히 goofy한 십대와도 같은 자신을 보듬어 줄 수 있다. 



책은 이제 자주는 아니지만 한번에 많이 사들이는 식으로 여전히 꾸준하게 구하고 있어 조만간 8000권을 넘게 될 것 같다. 제대로 정리하는 못한 책도 꽤 있으니 아마 이미 8000을 넘겼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책보고 영화를 보고 게임도 할 개인적인 공간은 꼭 마련해야 할 것인데 지금은 사무실이 그런 장소로 쓰이고 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금요일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 덕분에 조잡하지만 밀린 페이퍼를 하나 쓸 수 있었으니 다행이다. 더워서 못 걷고, 근육이 아파서 gym을 쉰 오늘 그저 잠깐 스트레칭과 함께 허공격자를 수행하면서 무술에 대한 꿈을 renew해보았다. 


6월에도 굵직한 일들도 하고 계속 회사가 돌아가야 하고, 끝낼 것도 몇 개 있고, 운동도 독서도 삶도 여전히 이어져야 한다. 이 하찮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하고 고단하기 짝이 없는 삶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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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1-06-05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취향 저랑 넘 비슷해서 공감 많이 합니다^^ 저 소오강호가 그 소오강호가 아니라니!!!!!

transient-guest 2021-06-05 08:38   좋아요 0 | URL
네 소오강호 2부라고는 도저히 말 할 수 없는데도 그런 작명을 했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