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시들한 일상.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 그냥 하루를 살아간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자고. 일어나면 다시 같은 하루가 시작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다시 주말. 뭔가를 찾아서 나갔다오거나 아니면 사실 무료하기 짝이 없기에 오히려 일하는 주중이 낫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떨어지는 체력이나 지력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렇게 아무런 motivation이 없이 지내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늘 노력은 하지만 늘 목표는 멀리 보이는 것이 신기루가 따로 없다. 


책은 계속 읽고 즐거움을 느끼지만 그저 소소하게 하던 걸 계속 이어간다는 마음이다. 무엇을 열정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시기는 정해져 있고 나는 이미 그 시기를 지나버린 것 같다. 삶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뭘 하는 것이 좋은지 모르겟고, 그저 열심히 살고 시간을 잘 보내서 노년엔 좀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며 산다. 


그냥 잊고 살다가고 문득 고개를 들면 이런 생각이 이어져 무척 우울해진다. 왜 이렇게 살고 있나,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런 삶을 사는건가. 


가벼운 책을 많은 읽는 건 결국 그런 마음이 반영된 탓이다. 그나마 가볍게 읽으면서 예전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인데. 













어쩔 수 없이 여러 판본을 소장하게 된 무협지들을 꺼내서 조금씩 읽었다. '고려원 영웅문'의 추억도, '중원문화사의 아! 만리성'의 기억도 새롭다. 이들을 읽으면서 주먹을 불끈쥐고 나도 언젠가는 자라서 주인공들처럼 멋진 협사가 되었으면 하는 꿈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뜻을 펼치겠다는 포부도 다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지금 남은 건 그 시절의 내 모습을 추억하는 일이 전부. 무술도 배워보고 운동을 꾸준히 하며 뭔가 도를 닦는 듯, 내 삶에 투영된 무협지의 이상 덕분에 원기왕성하던 시절보다 지금의 내 체력과 기력은 더 나은 측면이 있으니 책이란 역시 너무 가려가면서 읽을 필요가 없다. 지금와서 보니 곽정, 양과, 장무기, 영호충이라는 주인공들의 모습 곳곳에서 모자란 보통 사람들의 구석이 보이는 것 같다. 젊을 땐 그저 이들이 겪은 고난은 무시하고 성장하는 모습과 고수의 반열에 올라 모든 걸 손에 넣는 것만 보였다면 지금와서 보는 건 이들에게 주어진 환경과 고난이다. 우리의 삶과 다른 건 물론 이들은 고난을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이지만. 무협지에는 주인공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웃었다 울었다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이나 SF, 판타지 등 '장르'소설이란 말로 폄하되는 이런 분야의 소설도 두루 읽고 또 읽게 되는 이유가 된다.


인간기관차 에밀 차토펙의 일대기. 우연히 잘 달릴 수 있어서 달리다보니 세계최고의 장거리 달리기의 선수가 되었던 그는 어린 시절 '88올림픽을 앞두고 매일 밤 방영되었던 올림픽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난다. 이름보다 별명을 더 잘 기억하는데 뒷처진 그가 갑자기 마지막에 속력을 끌어서 상대를 추월하고 일등으로 들어오던 모습이 정말 '기관차'가 펌핑을 하는 것 같아서 누군지 별명 하나는 잘 지었다는 생각을 그 어린 나이에도 했었던 것 같다. 사람이 꿈을 꾸고 목표를 정해 달려가는 것도 훌륭하지만 종종 이렇게 우연과 우연이 겹쳐 별다른 생각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 종국에는 큰 업적을 이루는 경우도 있으니. 언제가 자신의 전성기였는지 기억하려면 인생을 끝까지 살아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일대종사'에서 나왔던 '돌아보니 인생에서 그땐 항상 봄이었다'는 비슷한 말이 떠오른다. 내일은 또 하루의 삶이 시작되고 오늘의 나보다는 조금 나은 자신이 되기를.














저자도 말했지만 영화가 훨씬 더 단순하고 감동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삶이 그렇게 흑백으로 나눠 좋고 나쁨을 말하기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미 60년대에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웨스트버지니아의 탄광촌 아이들이 소련에서 발사한 스푸트니크 위성 소식에 자극을 받고 그야말로 맨땅에서 로켓을 만들어 쏘아올리는 이야기. 정말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 재료를 준비하고 연구하고 필요한 기하학과 수학을 파고들어 과학경진대회에서 상을 받고 모두 대학에 진학한 건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은 이야기. 좋은 선생님 한 분, 부모님의 격려, 같은 꿈을 꾸고 잠시나마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친구들이 사람의 삶을 얼마나 많이 바꿔놓을 수 있는지. 삶에서 거의 모든 꿈을 혼자 꾸고, 혼자 걸어온 듯한 어떤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그냥 자투리시간에 자극을 받기 위해 읽은 책. 나이가 들면 이에 맞는 수준의 운동량과 강도를 잘 조절해야 함을 다시 한번 배웠다. 워낙 운동을 못하는 편이라서 지금까지는 동년배와 비교해서 훨씬 덜 쓴 몸이지만 어쨌든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 사람의 몸이라고 하니 늘 80%정도만 채우려고 한다. 사실 모든 면에서 40대가 넘어가면서는 먹는 것도 덜 먹고, 덜 쓰고, 뭔가 살짝 모자란 정도로 하라는 말도 있거니와 꾸준히 하되 몸을 해치지 않는 선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이다. 종종 의욕이 앞서 갑자기 시작하는 노년의 운동은 심각한 부상으로 이어지는데 천천히 몸을 길들여가면서 조금씩 힘을 늘리고 과부하와 회복을 통해 단련이 되면 꽤 늙은 나이까지도 뭔가 움직이고 땀을 낼 수는 있을 것 같다. 무술도 이 나이가 되어 시작한다면 역시 부드러운 걸 해야할 것 같아 요즘 아이키도나 대동류 합기유술, BJJ 같은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복싱이나 발차기는 건강을 위한 수준 이상으로는 힘들 것 같고 요가나 필라테스와 함께 이런 걸 해야할 것 같다. 


그림에 대해 워낙 아는 것이 없지만 주기적으로 전시회가 있으면 꼭 가보려고 한다. 금년에 와서 '프리다', '피카소/칼더'의 전시회에 이어 어젠 Legion of Honor 박물관에서 폼페이유적전시를 보고 왔다. 대략 2시간 정도면 전시를 둘러볼 수 있는데 작품을 감상하고 설명을 읽으면서 조금씩 걷다보면 시공간의 왜곡이 온 것처럼 전혀 시간과 거리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어제의 경우 1시간 40분간 감상을 하면서 2.67마일을 움직인 것으로 나오는데 그 정도의 거리와 시간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요즘은 일, 사는 생각, 온갖 잡다한 것들이 머리에서 떠날 일이 없는데, 미술관에서 전시를 볼 때가 거의 유일하게 다른 어떤 생각이 없이 오로지 작품을 감상하고 설명을 읽는 덕분에 머리를 쉴 수 있는 시간이다. '드가'의 그림은 아직 제대로 본 건 없지만 다음에 Legion of Honor에 가서 상시 전시하는 그림을 좀더 오래 들여다 볼 생각이다. 



그다지 남길 말이 없다. 무협과 중국을 버무려 추억인지 자전인지 모를 잘난척 한 스푼에 지금 같으면 여권에 '호색한'이라고 큼직하게 PROC의 도장을 받고 입국이 금지될 여러 가지 짓꺼리를 한 잔 만들어 놓은 느낌. 평이 나쁘지 않던데 도저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내가 특별히 PC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리고 젊을 때 남녀가 불타오르는 건 좋은 일이지만 순전히 남자의 입장에서 묘사되는 갈구와 해소는 상당히 별로다. 
















다른 책과 함께 중간에 섞어 읽은 소소한 이야기들. 마감에 시달리는 작가의 마음과 상황 (작가의 마감), 무협과 판타지를 섞은 듯하면서 기존의 이야기의 새로운 해석이나 행간이 신선했던 이야기 (야운하시곡), 그리고 책쟁이라면 그저 즐거울 수 밖에 없는 책에 대한 이야기. 


페이퍼는 요즘 한 달에 한번 정도가 고작이다. 이제 슬슬 갱년기가 오는 건지.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는 만화책을 보다가도 눈이 뿌옇게 흐려지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서 갱년기는 이미 온 것 같은데 뭘 해도 재미가 없으니 큰일이다. 


이런 걱정과 함께 Happy Mother'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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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5-10 09: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부분의 글에서 나름 심각하게 공감하면서..읽어내려가다가....협사의 꿈을 꾸셨다는 이야기에 빵 터졌습니다. ㅎㅎㅎ 사실 협사가 무엇인지도 몰라서 찾아볼 정도로..무협지책 한권도 읽어본적이 없는데....갑자기 무협지란 무엇인가 궁금해지네요 ㅋ

transient-guest 2021-05-11 00:00   좋아요 0 | URL
김용의 작품들 중에서도 몇, 최근 다시 나온 고룡의 ‘다정검객무정검‘등 좋은 무협지는 수준이 높습니다. 동양의 유불선과 역사가 잘 조합이 되어 있어 소소한 잡학지식도 습득할 수 있어 저는 좋아합니다. 어릴 때 제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삼국지를 비롯한 역사소설과 무협지의 멋진 협사들의 모습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