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ocation문제로 한바탕 전쟁을 치룬 듯한 8월이다. 일단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고 계속 일하는 와중에 조금씩 짐을 정리하고 옮기는 일정의 반복이었다. 그 와중에 급한 일이 아니면, 혹은 나의 집중이 많이 요구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밀릴 수 밖에 없었고, 7월에 고모가 멀리서 다녀가신 후 이번 주에는 이모부부가 다녀가셨다. 거기에 각각 시간을 빼야 했고, 우편주소가 살짝 바뀌는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필요한 기관에 각각 개별적으로 편지를 보내 이를 알린 것이 수백 통이었다.  다음 주면 임시사무공간에 인터넷이 들어오고 아마 VoIP서비스를 신청하게 될 것이니 이건 또다른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다음 주간에는 배심원단 pool에 들어가버렸는데 일단 월요일은 내 그룹의 일정이 아니라서 오후에 다시 확인해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excuse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대기상태에 있다가 출두명령이 확인되면 하루는 꼬박 허비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한번 정도는 해보고 싶고 시민의 civic duty라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으나 지금의 정부에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거니와 지금 내 상황이 그렇게 시간을 빼서 재판에 참여할 정신을 허락할 것 같지는 않다.  


책이 생각보다 많았는지 예상을 훨씬 넘는 숫자라서 내가 생각한 정리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아무래도 마구 보관하려고 책장 하단에 꽂아놓은 자계서와 그 밖의 자잘한 책들은 일단 박스에 담아서 임시사무공간에 있는 작은 창고의 한쪽에 쌓아놓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의미가 있는 다른 책들을 더 이곳에 정리하고 내 방의 책장에는 다른 책들을 꺼내놓을 수 있겠다.  이건 급한 일은 아니라서 조금씩 시간을 내서 해볼 생각이다.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걸 즐겼었는데 아파트생활을 하면서는 모두 물건너 남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부터 약 반년에서 일년 정도 머무를 것으로 예상되는 임시공간에 부모님댁과 가까운 덕분에 점심시간을 사용해서 집에서 기타연습을 해볼 생각을 하고 있다.  어차피 그 시간에는 집에 아무도 없고 이웃에도 대개 사람들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 가까운 gym도 일단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membership을 groupon을 통해 단돈 $25에 구했다. 필요하고, 너무 비싸지 않다면 임시공간에 드나드는 시기에 사용하기 위해 추가로 연장할 생각이다.  운동을 꾸준히 하려면 역시 편하게 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고, 나를 위해 그 정도는 써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책. 영어권의 책이지만 아프가니스탄출신의 이민자라서 그런지 서술의 느낌과 인물들의 대화가 국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어권의 소설과 다르다. 사람의 이름도 다르고 대화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익숙한 서구권의 책이나 일본, 중국, 한국의 책과는 달리 생각해보면 중근동, 인도권, 또는 중앙아시아권의 책은 자주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낯설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19050년대(?)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각 챕터마다 다른 인물과 다른 이야기를 짜맞춘 형태로 계속 이어진다. 처음에는 단편이라고 생각할만큼 단락이 각각의 이야기로 정리가 되어 있는데 각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모두 이어져 있고, 이를 통해서 하나의 큰 이야기를 그렸다.  전체적으로도 훌륭했지만, 가장 큰 두 번의 찡한 장면은 어릴 때 납치같은 이별을 당해 입양된 파리가 갑자기 그 다섯 살 전후의 기억을 flashback 하면서 오빠를 떠올리는 장면, 그리고 이젠 긴 세월이 흘러 미국에서 이민자로 늙은 오빠와 나이든 파리가 재회하는 장면이었다.  특히 파리가 오빠를 기억하는 그 장면은 파리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었는데,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면서 다정했던 오빠가 떠오르는 부분은 무척 드라마틱했다.  영어책도 갖고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국어번역도 잘 구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당시 네 개의 오스카상을 가져갔다. 배우들의 면면도 대단했지만 특히 가운데 아저씨의 카리스마는 장난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영화를 안 보았지만, 영화를 볼 필요도 없이 가운데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만 같은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느낀 바 있다. 책을 읽으면서 보니 역시 괜한 것이 아니었다는 결론이다.  


우연히 drug-deal-gone-wrong의 현장에서 2백만불이 든 가방을 찾는 A.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너무도 멍청하게 다시 그 현장을 찾은 A. 그 과정에서 조직원들의 눈에 띄고, 그 조직원을 도와 돈을 찾으려는 가운데 아저씨 시거의 추적을 받게 된다. A는 시골뜨기답게 그런 큰 돈이 든 가방에는 당연히 추적장치가 붙어있을 것이란 생각을 못하고 덕분에 가는 곳마다 시거나 조직원들이 나타나 총격전이 살육이 벌어진다.  결론이 좀 모호한데 이건 영화를 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분명한 건 해피엔딩은 아니란 것이다.  코맥 매카시는 the Road도 그랬지만, 무척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종말적인 느낌을 잘 연출하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진 쑤퉁의 작품에서 '나, 제왕의 생애'보다 뛰어난 이야기는 못 본 것 같다. 물론 전적으로 나의 관점에서라는 단서가 붙지만. 


단편을 모았는데 표제작이 좀 기억에 남고 1934년이나 다른 이야기들은 크게 흥미를 주지는 못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읽은 다른 중국의 현대소설작가들이 천착하는 주제의식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탓도 있을 것이다.  문혁시절을 전후한 중국, 해방전쟁이나 내전직후의 중국, 그리고 약간 더 요즘의 중국, 이렇게 세 덩어리로 대략 나눠지는 시대의식과 테제가 조금은 식상해진 것이다.  대체로 여하튼 무지하고 무식한 인간군상, 지저분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누군가 죽거나 몰락하는 것으로, 그 이유에는 늘 공산혁명이나 일제의 진주가 위치하고 있는 구조.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김영하작가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쓰면서 모티브로 삼은 건 수원역 부근의 빈민가 아이들이었다고 기억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의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이들의 삶은 보통 18세부터 집에서 독립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보통 동거의 형태로 생활비를 줄여 가면서 도시의 언저리 곳곳에서 나이트클럽이나 룸싸롱 웨이터, 호스테스, 혹은 그만도 못한 일을 하면서 빈곤한 삶의 대를 이어간다고 했다. '성북지대'의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 빈곤함에서, 범죄와 일탈의 대상이 결국 서로를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같은 동네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차용한 빈민가의 삶과 닮았다.  알고 지내던 사이의 여자애를 강간하고, 서로 싸우고, 단순한 패싸움이나 주먹다짐으로 끝나야 할 다툼이 죽음으로 끝나는 답이 없는 어느 한 시절 중국의 마을은 그렇게 많은 면에서 우리 외곽의 삶을 보여준다.



꼬이고 꼬인 끝에 맞는 결말은 극적인 twist. 마약운반책의 여자인 주인공은 그가 '배신'의 댓가로 살해당하면서 함께 죽을 운명이었다. 그러나 죽은 남자의 노트를 두목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스페인으로 보내진 여자는 잠깐은 보통의 삶을 살지만, 운명은 결국 그녀를 다시 마약운반사업의 세계로 이끈다. 몽테크리스토백작처럼 감옥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숨겨진 마약을 찾고 이를 돈으로 바꾸는 한번의 게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그녀.  '


작가 특유의 활극, 특히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그의 세계관에서 여성은 늘 주도적이고 강하고 신비롭고 적극적이다. 남성의 세계에서 부수적인 역할이나 장치가 아닌 그 자체로 생명력이 넘치는 여성상이 극대화된 것이 이번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로써 내가 구한 작가의 모든 한국어번역을 읽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드라마도 한번 볼 것이다.



내가 읽은 판본은 상품검색에 뜨지 않는다. '황금가지'에서 나온 예전의 판본인데 조금 더 큰 하드커버의 양장본이다.  어쩌다 보니 이런 일종의 아포칼립스적이고 대체역사의 장치를 빈 소설을 몇 권 읽게 된 최근이다.  결정적으로 무엇이라는 걸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일인칭화자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미국의 80년대 어떤 시기에 원리주의적이고 급진적인 백인우월주의와 근본주의기독교가 혼합된 세력이 대통령을 암살하고 전자상거래화된 금융시장을 장악하여 나라를 1984+나치국가+신정국가 같은 형태로 바꾸어버린다. 


한국도 요즘은 그렇게 생각되지만 미국에서는 근본주의기독교에 대한 사회적인 경고 또는 공포가 이런 소설로 구체화되는 것 같다.  백인우월주의에 기반한 인종주의자들이 다수를 이루는 이런 정치종교통합세력은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라는 면에서, 아젠다를 종교적인 장치로 감춘다는 점에서 일부의 극단적인 무슬렘세력, 예컨데 ISIS와 다를 바가 없다.  종교뿐 아니라 사실 모든 원리주의/근본주의는 강력한 독단과 독선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적용될 때의 모습은 거의 대동소이하다고 본다.  결말이 시원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일인칭화자의 수기형태로 200년 후의 미래에 발견되어 연구의 주제된 이야기는 결국 어느 시점엔가 사회가 다시 정상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약간의 안도감을 준다.  이 역시 넷플릭스에 드라마로 떠있으니 시간이 되면 한번 볼 생각이다.  좋은 책이 많이 나와야 좋은 드라마가 나온다.  한국의 창작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대략 능력남 (재벌2세, 과장님, 신적인 존재 등) + 상대적으로 못한 환경을 여주의 구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 그리고 현대소설에서 (문학성은 차치하고라도) 긴 호흡의 치밀한 이야기를 써내지 못하는 풍토를 보면 한류고 나발이고 한국의 교육과 삶에 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이 지긋지긋하게 힘든 8월도 거의 끝이다.  이제 새로운 마음으로 잠시동안의 조정시기를 거쳐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할 때다.  그런 마음으로 남은 2018년을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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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8-20 0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트랜님은 코맥 매카시의 ‘이야기‘에 놀라셨군요. 저는 그 문장력이 너무 좋았거든요. [더 로드]도 그렇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도 저는 이야기보다 문장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모두 다 예쁜 말들]도 그랬고요. 굉장히 클래식하고 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우아한 문체라고 해야할까요. 감히 ‘이렇게 쓰고싶다‘고 생각도 못할만큼 우아한 문장들을 구사한다고 생각했어요. 크- 여기서 ‘이야기‘감탄한 다른 독자를 만나게 되네요. 후훗.



이렇게 다른 분들 책 감상 읽으면 마음이 너무 조급해져요. 저도 [시녀이야기] 읽으려고 구해둔게 오래전인데 아직도 못읽고 있다니. 이 글 읽으니 어서 빨리 읽고싶다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을 너무 이 책 저 책에 다 하고 있고 제 육신은 그저 단 하나이며 심지어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직딩이라는 게 너무나 큰 걸림돌입니다. ㅠㅠ

transient-guest 2018-08-21 02:54   좋아요 0 | URL
문장력까지 볼 혜안이 없었습니다.-_-;
스토리를 풀어가는 방법이나 묘사가 아주 괴괴하더라구요. 영어로 원문을 보면 좀 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네요. 가끔 너무 좋은 책은 원문이나 영문번역도 보고 싶더라구요.

‘시녀이야기‘도 무척 특이합니다. 다만 상당히 미국적인 공포에 기초한 테마같습니다. 이곳에는 근본주의/원리주의/백인우월주의가 섞인 세력의 정치화, 정교일치에 대한 시도 및 공포가 있어서 이런 주제가 잘 먹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요즘은 너무 스트레스가 많아서 책읽기가 쉽지 않네요.ㅎ 서재도 덜 다니는 편이구요...

stella.K 2018-08-20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간간히 미드를 보고 있습니다.
현대물은 아니고 사극쪽으로 보고 있는데
정말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매회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데
이래서 미드구나 싶기도 하더군요.
울나라 드라마는 그 구도를 이제 좀 깰 필요가 있는데
웬만해선 깰 생각이 없는가 봅니다.ㅉ

transient-guest 2018-08-21 05:01   좋아요 1 | URL
잘 만들어진 다양한 이야기가 미드나 다른 유럽드라마의 특징이고 주제도 다양해서 볼거리가 많습니다. 한국의 드라마는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켓이 원하는건지 그걸 원하게 만드는 건지 모르겠지만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