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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근대'에 대한 환상을 벗기려는 시도는 이제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탈근대,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재 대부분의 학문에 있어 중심 주제 중의 하나이며, 이는 단순히 새로운 사조가 아니라 각 학문이 가지고 있는 근대성에서 비롯된 모순과 문제점을 시정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마치 근대성이 전근대적 가치관에 대한 비판과 수정을 시도했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우리에게 있어 근대와 근대성은 서구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바로 우리에게 있어 근대는 획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며, 아니 일제침략 시대와 그 전후를 통하여 '강요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몇몇 근대적 가치관과 근대적 상황은 희망인 동시에 억압이었으며, 식민지 수탈은 우리의 근대가 지니고 있던 다소의 희망마저 절망으로 바꾸어 버렸다. 일제패망과 함께 맞이한 해방 이후 역시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근대성을 획득한 적이 없다. 일제침략 동안 억압과 수탈의 수단으로 강요되었던 근대적 가치관이 해방후에도 왜곡된 형태 그대로 고착되는 동시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 문화에 대한 무비판적 모방까지 덧대어지면서 우리에게 우리자신의 근대성은 백일몽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 근대와 근대성을 살피는 일은 서구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에게 근대는 외부로부터 강요된 목표였으며, 그래서 아픔이었지만 동시에 희망이기도 했다. 우리의 근대성에 대한 추구는 고도의 경제성장등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성공적인 우리의 모습을 가능케한 동력중 하나였지만, 동시에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또한, 탈근대에 대해 논의하는 일 역시 우리에게 나름의 의미를 가질 터이다.
'나비와 전사'란 다소 시적이기까지 한 제목을 단 이 책은 바로, 그런 지평에서 우리의 근대와 탈근대를 논하고자 한 책이다. 특히 우리에게 근대성이란 화두가 여러 종류의 의미를 띄고 다가왔던 개화기 시절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삼고, 그 대척점에 현대의 것이 아닌 근대 이전의 텍스트를 두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시도는 무척 인상 깊다. 우리에게 근대가 특별한 만큼, 근대 이전 아니 근대와 현대에서 근대 이전을 보고 있는 눈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 근대화를 부르짖은 사람들이 근대이전의 상태에 대해 비판적 논조를 취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의 근대 이전은 그를 넘어 식민지 시대 동안과 그 이후 왜곡되고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많은 것들을 잃었고, 그 중 어떤 것들은 분명 우리가 지금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근대 이전을 복권하는 일은 우리가 근대의 어떤 모순들을 탈피하는 출발점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이 책의 그러한 시도는 성공적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기독교와 근대화의 연결점을 살피는 부분과, 소월과 만해의 '여성-되기'에 대해 논하고 있는 부분은 흥미로운 주제만큼이나 인상적인 전개와 결론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저자의 글쓰기가 그런 장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저자의 유머스러우면서도 가볍지 않은 글투는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어서 손에 놓기 싫을 정도였다. 어려울 수도 있는 화두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렇지만 후반부, 특히 근대가 우리의 몸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논한 부분은 다소 집중하기 어려웠다. 저자의 전체적인 논조가 근대 이전의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려는 쪽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너무나 근대 이전의 것으로 기울었다 싶다. 내 자신이 근대의 의학적 사고에 푹 젖은 현대인인 탓도 있겠지만, 근대 의학이 우리의 근대에 미친 영향 보다는 근대 이전의 의학을 소개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 데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근대 이전의 재발견이 근대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부의 문제가 아닐테고, 근대 이전 또한 그 시대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 쪽에 대한 소개와 옹호만큼이나 근대와 근대 이전을 조화롭게 보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되었고, 그 점이 아쉬웠다. 이 부분이 이 책 전체의 이미지나 주제와 다소 맞지 않은 것 같아서 그런 아쉬움이 더욱 크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첨부파일은 솔직히 조금 난해했고, 덕분에 앞부분과 같이 빠져들어 읽기는 어려웠다. 앞부분의 주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연암과 다산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나도 근대의 잘못된 것들에 꽤 젖어있었던 모양이다. 나 자신도 내 안의 왜곡된 근대성을 탈피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 별은 정확히 말하자면 세 개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