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데 - 고양이 추리소설
아키프 피린치 지음, 이지영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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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웠던 사람들이 개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고양이를 키워봤던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물론 자식 자랑하듯 고양이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심심치 않게 고양이를 키움으로서 고양이를 싫어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기 고양이 자랑은 여러 종류이지만, 고양이를 싫어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거의 같다. 애교도 떨 줄 모르고, 밥 때만 집에 들어오기도 하고, 며칠 동안 안 보일때도 많고, 좀 놀아보려고 아무리 불러제껴도 제 비위에 안 맞으면 주인도 외면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이야기도 했다. "고양이는 내가 저를 키운다는 생각이 거의 없는 것 같아. 나를 그냥 밥 주는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아님 그냥 같이 사는 존재로 여길지도 모르지. 아냐, 내가 제 가정부나 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이야."  나는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 역시도 친구네 고양이와 놀아보자고 놈에게 온갖 아양을 떨다 보면, 내가 애완동물인지 저 놈이 애완동물인지... 놈을 대하다 보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으로서 자괴감까지 느껴지곤 한다. 사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때로는 고양이는 키우는 게 아니라 '모신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녀석들은 독립심 강하고, 비위 맞추기 힘들고, 오만하기 까지 하다. 고양이는 그런 동물이다.

그래서인가 고양이는 신비로운 존재, 때로는 인간 위에 있는 존재로 묘사될 때가 많다. 신으로 모셔진 적도 있고, 악마의 하수인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 우리 문화권에서도 고양이는 '영물'이라고 칭해진다. 고양이에게는 웬지 신비로운 저들만의 세계, 비밀스런 자기 생활이 있을 것만 같다. 또한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는 고양이의 눈빛을 보면 우리가 못 보는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고양이는 유령이나 악마를 본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는가?) 그리고 고양이의 호기심과 탐구심은 유명하다. 새로운 물건을 가져왔을 때 고양이는 언제나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 앞발로 툭 건드려 본다. 아마 고양이가 추리소설에 탐정역으로 등장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지 싶다.

사실 <펠리데>는 추리 소설로는 그다지 훌륭한 편이 못된다. 추리 과정의 논리도 약하고, 우리의 고양이 탐정 프란시스는 사건 해결의 힌트를 우연과 지각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감각에 의존하여 얻어내기 때문에 '작가와 독자의 두뇌 싸움'이나 '무릎을 칠 만한 반전'을 기대하며 읽는다면 실망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고양이의 육감은 인간의 그것보다 낫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소설 속의 고양이들은 그 점을 제외하고는 고양이라기 보다는 인간같을 때가 많아 그 점 또한 나의 기대와는 달랐다. 물론 사건의 실체의 종류또한 만족스럽다고 하긴 어려웠다.

그럼에도 게으른 내가 마이 리뷰를 쓰겠다고 덤비게 된 건, 사건과 추리 너머의 '무엇'에서 만족스런 재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의 귀여운 모습과(특히 '망자들의 문지기' 의 언행이 내겐 어찌나 귀엽던지!),  무언가에 열중할 때의 똘똘한 모습(특히 탐정 '프란시스'), 그리고 그 오만함까지. “몇 천년 전, 고양이들은 신으로써 숭배받았었다.  고양이들은 그것을 절대 잊지 않고 있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바로 이 책에서는 그런 고양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란시스의 밥을 챙겨주는 인간(프란시스 입장에서 볼 때 주인, 은 절대 아닌 듯 싶다) 구스타프와 그의 친구 아치볼트에 대한 프란시스의 신랄한 묘사는  이 책의 또 다른 재미이다. 그러나 그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던 것은, 이미 고양이는 우리를 그렇게 여기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아닌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프란시스 또한 이 불쌍한 존재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에서 나는 고양이를 정말 사랑하는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나의 고양이도 나를 제발 사랑해주었으면 하는 그의 희망도 엿보인다) 작가의 고양이 또한 도대체 집에 붙어있지 않고 어딘가로 돌아다니고, 오만한 눈빛으로 밥 주는 주인을 쳐다보곤 하지 않을까? 작가가 자신의 고양이에게 '유아기 언어'로 "어딜 이렇게 돌아다니다 왔니?"하고 묻는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내 생각에, <펠리데>는 특이한 탐정이 나오는 추리소설로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 한 사람이 쓴 팬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추리소설이냐고? 그 '목숨이 아홉개'인 녀석들도 '호기심'에는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호기심 강하고, 끝없이 무언가를 탐구하는 듯한 눈빛을 한 고양이들을 알고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외 인터넷 서점에서는 '미스테리' 항목 아래 '고양이 추리소설' 항목을 따로 분류해 놓은 곳도 있다니 나만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나는 많은 철학자와 고양이들에 대해 연구해왔다. 그런데 고양이의 지혜가 훨씬 더 뛰어나다."
- 이폴리트 텐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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