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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비트겐슈타인 ㅣ How To Read 시리즈
레이 몽크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알고 있던 책은 아니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마땅한 입문서가 없던 차에 우선은 출간이 반갑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한 책이나, 전기나, 연구서는 많지만 대부분 다루는 범주가 너무 특정화 되어 있거나 좁거나 주변적이고, 혹은 너무 전문적이고 때로는 너무 개인적인 감상에 머무는 감이 있었다. 연구서와 나아가 비트겐슈타인의 저작을 읽는 것에까지 다리가 되어 줄 수 있는, 너무 일반적이지도 않고 너무 전문적이지도 않으면서 정직한 책이 절실했는데 HOW TO READ 시리즈의 비트겐슈타인 편은 내 요구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었다.
널리 알려진 비트겐슈타인 전기의 작가답게, 몽크는 많은 사료-편지들, 메모들 에피소드들-을 가지고 비트겐슈타인에 우선 접근한다. 물론 그 사료 중에는 그가 생전에 그리고 사후에 발표했던 저작들도 포함된다. 전자가 많았으면 이 책은 그저 인간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삽화에 그쳤을 것이고 후자가 많았으면 읽기 어려운 책이 되었겠지만, 저자는 그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마치 수수께끼나 계시 같은 <논리 철학 논고>의 그 유명한 첫 일곱 명제를 우선 서두에 들이밈으로서 읽는 이를 주화입마에 빠지게 하는 대신, 비트겐슈타인이 아직 러셀의 영향력아래 있었던 때의 서평을 먼저 보여준다. 이 서평 역시 이해하기 어렵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저작 중에서는 비교적 읽기 쉬운 편이며, 그라는 인물을 요구했던 철학사적 요청과 그의 학문적 배경-가장 일반화된 형태의-을 소개함으로서 그것이 발전되어 가고 수정되고 후에 변혁을 맞는 여정을 마치 연대기적으로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중간중간에 인용된 비트겐슈타인의 실제 저작들, 편지들, 노트들은 '위대한 동시에 수수께끼인' 이 철학자와 그의 사상에 대한 몽크의 분석에 신뢰감을 갖게 해 준다. 또한 몽크는 책의 어느 구절에 대한 분석을 무리하게 시도하는 대신 그의 사상 전체를 아우르는 데 필요한 퍼즐 한 조각으로서 구절들을 다룸으로서 이것을 읽는 독자가 입문자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고 그럼으로서 이 책이 쓰여진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고 있다.
물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뭉크의 책에서 얼마만큼 옳게, 정확하게 표현되었는가는 확신할 수 없다. (별 하나를 감한 것은, 몽크가 아니라 독자인 나 자신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사실 그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신비주의적 면모, 혹은 신비주의로 빠질 수 밖에 없는 결론을 보면서 가끔은 비트겐슈타인도 자신이 발견해낸 새로운 철학의 세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그 자신도 자신이 창조해낸 철학에 먹힌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물론 이는 내 망상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그는 철학하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진리(로 가는 방법)을 제시했으며 그럼으로서 이후 철학을 지배하였던 위대한 철학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굉장히 어려운 책을 남긴 철학자라는 것도. 이 책만으로 비트겐슈타인을 모두 알게 되었다는 오류와 오만은 범하지 말아야 되겠지만, 적어도 몽크는 이 책을 통하여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철학과 그의 저작을 이해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이며 알맞은 첫 디딤돌을 놓은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