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김치샐러드 지음 / 학고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 - 그림 '읽어주는' 손가락이 아니다. '보여주는'이라는 단어의 선택에 저자가 얼마만큼의 의도와 생각을 가졌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보여준다'라는 제목이야 말로 이 책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읽어주는'이 아니라.

 

'본다'는 '읽는다'라는 행위에 비해 일차적이고 즉각적인 느낌을 준다. 후자가 '해석'의 의미라면 전자는 '감상'에 가깝다. '본다-감상'과 '읽는다-해석'에 대한 나의 생각은 편견일 수도 있고 어쨌든 간에 거칠고 지나치게 단순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에 있어서만큼은 '본다'라는 단어에 대한 스스로의 덜 된 생각에 촛점을 맞추고 싶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책은 미술에 관한 교양 서적이라기 보다는 에세이에 가깝고, 따라서 일반인에게 (대체로 서양)미술의 도상학적 의미를 쉽게 풀어 설명한다는 목적보다는 그림을 발판으로 삼아 좀 더 감성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물론 블로그에서 책으로 옮겨지면서 뒷부분에 새로 덧붙여진 듯한 한 페이지 정도의 텍스트는 기존의 미술 교양서적의 그것과 비스무레한 효과를 줄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본편에 넘실거리는 혹은 격렬하게 파도쳐 오는 듯한 감성적인 내용들에 뭍혀 보이지 않는다. 그 점이 이 책을 '미술 교양서'로 생각하고 접한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감성적인 내용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독자 개인적으로 강하게 공감하여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하다. 그러니 코드가 맞지 않는 분께는 실망스러운 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도는 훌륭하다. 도상학은 사실 암호해독과 같이 흥미진진하지만 무척 이성적인 두뇌와 믾은 주변지식들을 요하는 것으로 때문에 접하기 쉽지 않고 자칫 잘못하면 그림 보는 재미를 앗아갈 수도 있다. 그것을 보충하는 것은 미술이 주는 감성적인 부분들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색채나 형태의 아름다움, 혹은 때때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너무 어렵기만 한 '미적인 가치'에 관한 것이 아니다. 보는 사람의 일상에 파고드는, 그리고 마음을 직접 두드리는 부분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문자 언어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열린 해석이 가능하다는 뜻도 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대표적 작품인 뭉크의 절규를 보면서 우리는 작가 뭉크의 정신병력과 굴곡 많았던 삶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자신의 갑갑하고 답답한 그래서 절규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후자는 결코 전자에 비해 가치 없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작가가 그림을 그리면서 구했던 감상자와의 소통은 자신의 사적인 생활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부분에 대한 공감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림 감상의 그와 같은 면에 중심을 두고 있다.

 

물론, 그림을 소개하는 방식이라든가 풀어낸 이야기들이 다소 거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나치게 사적이어서, 이 책 뒷부분에 가서는 저자의 삶이라던가 감정 상태가 여과없이 다가오는 바람에 혼란스럽다. 사실, 저자가 좀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굳이 카테고리를 나눈다면, '예술'이 아니라 '에세이'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내가 조금은 저자가 그림을 풀어놓으면서 쏟아낸 말들에 (특히 후반부의 '우울함'에 대해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을 그림책이 아니라 그림이 있는 에세이로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십대 중-후반의 우울함이라는 것은 출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지만 결코 그것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터널 속을 달려갈 때의 막막함과 닮아 있다.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반대로 자신이 꿈꿔왔던 것을 하나씩 현실에 빼앗긴다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어느날 돌아본 나 자신은 내가 생각했던 내 자신과 많은 부분이 달라져 있어, 낯설고 두렵기만 하다. 영원히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어두운 터널 속에서 타인보다 더 낯설고 두려운 자신을 만난다는 경험. 그런 우울함이 이 책의 후반부엔 가득하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후반부가 좀 더 자제되었다면 하는 생각을 숨길 수가 없다. 아무리 이 책을 에세이로 생각하며 본다 한들, 소개된 그림의 이미지 대신 저자 마음속의 어두운 그림들만이 뇌리에 남는다는 건 그다지 좋은 기분을 들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의 모태가 된 김치샐러드님의 블로그를 접함이 없이 이 책을 집어들었을 사람들 중의 많은 부류가 원하는 일도 아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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