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년, 강이관, 2012

 

 

 

(영화의 전체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강이관의 <범죄소년>은 영화적 화면 구성의 측면에서 흥미로운데, 그것은 영화의 내내 인물의 곁에 카메라가 바싹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즉 <범죄소년>은 다른 어느 샷보다도 인물의 어깨나 가슴께에서 머리끝까지를 찍는 미디엄 클로즈업샷으로 주로 영화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것은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거의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미디엄 클로즈업샷은 통상 인물의 얼굴을 드러내며 그 인물의 표정과 감정을 관객이 읽도록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는데, 일반적인 클로즈업샷과 다른 점은 인물의 얼굴을 타이트하게 당겨서 찍는, 그럼으로써 인물의 아주 미세한 감정을 잡아내는 클로즈업샷과 달리 인물의 신체 언어가 가지는 의미를 드러내게 해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강이관의 <범죄소년>은 인물들의 눈빛을 주의깊게 보되, 그 눈빛만이 아니라, 그들의 신체가 이야기하는 것, 그러니까 그들의 어깨도 보아줄 것을 요구하는 영화다. 미디엄 클로즈업샷으로 이루어지는 영화에서 인물들은 종종 어깨로 말을 한다. 그러니까 그들의 말이, 그들의 표정이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아도 종종 어깨는 미세하게 움직이며, 우리가 그 미세한 움직임을 보아줄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범죄소년 장지구(서영주)의 어린엄마 효승(이정현)이 노래방에서 업주에게 모욕을 받으면서도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양을 떨며 "언니~"라고 부르기 전의 미세한 어깨의 멈칫거림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그 미세한 멈칫거림 앞에서 그녀에게 이런 일이 수없이 반복되었음을, 그래서 그녀가 왜 아양을 떠는 목소리를 꾸며내야 하는지 대략 짐작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범죄소년'들의 표정을 우리는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부 인물에게 바싹 달라붙어 그들의 눈빛을 보여주는 카메라에서 우리는 그들의 무엇인가를 읽어내고 싶어한다. 그들은 왜 범죄를 저지르는가? 그리고 범죄로 처벌을 받았음에도 왜 다시 범죄를 반복하는가? 우리는 혹시라도 그들의 눈빛에 어떤 답이 들어있지 않은가 해서 그들의 눈을 들여다본다. 그들의 눈에서 무엇인가를, 그러니까 반성하는 눈빛이라든가, 사회와 어른들에 대한 경멸이라든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라든가, 아무튼 무엇인가를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의 표정을 읽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범죄소년들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범죄소년이 되고, 범죄소년이 되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내몰리고, 또 내몰렸기 때문에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어깨라도 보여줄 수밖에. 범죄자라는 낙인을 받은 채, 움츠러들어 있는 그들의 어깨, 그리고 그 어깨가 다른 범죄에 빠져들기 전에 아주 잠깐 멈칫거리지만, 다시 새로운 범죄로 나아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물론 미디엄 클로즈업샷이 클로즈업샷, 익스트림 클로즈업샷과 갈라지는 지점은 이 미디엄 클로즈업샷은 인물의 배경마저도 동시에 어느정도 담는다는 점이다. 즉 한편으로 미디엄 클로즈업샷은 일반적인 클로즈업과 다르게 배경을 담으며, 동시에 그럼으로써 보는 우리와 인물과의 사이에 어느 정도의 거리를 만들어낸다. 즉 우리는 범죄소년과 약간의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그들 자신만이 아니라, 그들의 주위도 함께 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 범죄소년들은 그 배경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으며, 모든 문제를 그들의 어떤 개인적인 문제로 놓을 수 없고,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사회의 책임으로 돌릴 수도 없다. (어려운 위치에 처했어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수많은 소년이 있다.) 아무튼 개인적 문제이건, 사회적 문제이건 간에 범죄를 저지르면 그들은 사회와 분리되어 갇히지만, 다시 언젠가는 사회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는 그들을 맞이할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즉 혹 그들이 사회와 격리된 상태에서 조금이라도 변했더라도, 그들이 다시 돌아가는 사회는 예전과 그대로인 채로, 즉 예를 들어 범죄소년들에 신경쓰지 않는 어머니도 그대로이고, 범죄소년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도 그대로인 그런 상태, 아니 이제 그것을 넘어서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소년원에 다녀온 자식을 외면하고, 예전에 그를 알던 모든 사람이 이제 그를 멀리하는 그런 상태의 한가운데로 되돌려진다는 점이다. 그런 상태로 돌아간 범죄소년들이 어떻게 되는가, 이 영화 <범죄소년>은 그 메커니즘을 일종의 통시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영화다.

통시적 관점이라는 것은, 결국 이 영화에서 장지구의 엄마 효승의 현재 모습은 장지구의 여자친구 새롬의 미래 버전 중의 하나로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즉 장지구의 아이를 가진 채 가족과 학교에서 모두 떨려나가는 새롬은 효승의 과거의 반복이며, 효승의 현재 모습은 우리가 그릴 수 있는 새롬의 미래의 여러 모습 중의 하나이다. 즉 강이관은 여기에서 묻고 있는 것이다. 범죄소년이 대를 이어 재생산되기까지, 즉 범죄소년이 또다른 범죄소년을 만들어내기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질문. 그런데 보다 문제는 이것이 그리 나쁜 케이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이 영화에는 그럴듯한 악인을 별로 찾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중간에 효승과 같이 사는 효승의 후배나 효승이 만나는 여관의 주인이나 식당의 여주인 같은 사람들을 보면, 일견 야멸차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결코 나쁜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아니 임시로나마 효승과 지구에게 살 거처를 제공하고, 여관비를 깎아주는 모습 등을 보면 도리어 큰 호의를 베풀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문제는 개인적 호의라는 것이 한계가 있고, 오로지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개인적 호의나 범죄밖에 없도록 이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며, 그 구조는 상당히 단단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이 아마 이 영화가 이렇게 툭 잘라내는듯이 끝나는, 아주 불안하고 미세한 희망을,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이 미안할 정도인 그런 것을 애써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며 끝나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물의 눈을 들여다 볼 것을 주문하되, 그 눈에서 아무 것도 읽을 수 없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그 인물의 눈에서 어떤 미세한 반성이라도 읽어낸다면, 우리는 혹시 그것을 조금은 오해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범죄를 오로지 개인의 악의 산물로서 읽어내는 오류같은 것 말이다. 저 눈을 보니 틀려먹었어, 그들은 또 범죄를 저지를거야, 혹은 반성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 잘 살게 될 것 같군, 이라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희망 같은 것. 그러나 그런 희망이란 없다. 우리는 어떠한 희망도 제공되지 않은 이 이야기에, 이 불안한 결말에 스스로 이야기를 붙여나가는 수밖에 없다. 영화에 어떠한 추가적인 희망도, 혹은 절망도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는 틀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추가적인 이야기가 좋아지려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든 변화시켜 나갈 도리밖에 없다.

 

 

덧.
강이관은 좋은 감독이다. 보통의 감독은 하나의 씬에서 한가지를 전달하는 감독이다. (물론 이런 보통의 감독도 그렇게 널려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어떤 씬은 인물의 캐릭터를 잘 설명하거나, 혹은 인물들 간의 관계를 잘 그려내 보여줄 수 있다. 좋은 감독은 하나의 씬에서 두 가지를 전달한다. (물론 아주 좋은, 그러니까 위대한 감독들도 있다. 그런 감독들은 하나의 씬에서 서너가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밀어넣는다. 그러나 대체로 그 서너가지가 무엇인가가 생각할 틈이 없다. 왜냐하면 그 장면은 동시에 너무 아름다워서 가끔은 숨을 못쉬게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씬이 인물의 캐릭터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잡아내고 있다면 그 장면은 좋은 장면이고, 그러한 것을 만들어낼 줄 아는 감독은 좋은 감독이다. 몇 가지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처음에 지구가 보호관찰 전화를 받는 장면을 보면, 보호관찰이라는 것의 어떤 서늘한 방식, 그것의 기계화되고 무책임한 구조를 보여주면서도, 할아버지의 병든 숨소리를 넣고, 그 병든 숨소리를 무심히 보는 지구를 보여줌으로써 그 캐릭터를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다. 즉 적어도 관객은 이 장면에서 지구가 보호관찰을 받고 있기는 하나 아주 나쁜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혹은 미용실에서 효승이 효승의 후배의 지시를 받는 짧은 씬에서도 이것이 드러나는데 효승이 후배에게 대하는 비굴한 뉘앙스를 효과적으로 전달함으로써 그들의 관계가 어떤지도 잘 드러내면서 효승이라는 캐릭터의 위치나 성격 역시도 잘 표현하고 있다. 즉 효승은 지금까지 저런 것을 얼마나 반복해왔을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나 견뎌내야 하나,라고 관객에게 익히 짐작하게 한다. 그런 좋은 감독이 만들어낸 이 영화는 좋은 영화다.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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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2-04 0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미디엄 클로즈업샷의 촬영기법을 주로 쓰는 영화에선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는 기본사항이겠구나 싶군요. (세월이 흘렀어도 이정현이란 배우라면 그 섬세함이 왠지 수긍이 되기도 합니다. ) 이런 기법을 쓴 영화 중 대표적인 건 뭐가 있을까요??

맥거핀 2013-02-04 13:26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정현이라는 배우가 상당히 좋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왜 자주 연기를 하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가수보다는 연기자로서 훨씬 낫다고 보는데..

글쎄요. 통상 미디엄 클로즈업도 클로즈업의 일종이고, 그런 만큼 클로즈업을 남발한다는 것은 관객에게 답답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죠. (즉 아시겠지만 미디엄 클로즈업은 다른 샷과 섞여야만 그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니까..) 간혹 가다가 인물의 감정을 중점적으로 표현해야할 영화의 경우 그런 샷이 의도적으로 많이 쓰이기도 합니다. 제가 본 것 중에서 생각나는 건 <블랙 스완>이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같은 것..두 영화 모두 미세한 감정을 잡아내는 게 상당히 중요한 영화이고, 특히 <블랙 스완>은 신체나 표정의 미묘한 움직임 같은 것이 중요한 영화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발레 공연을 잡는 몇몇 씬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미디엄 클로즈업이 상당히 많이 나왔던 영화로 기억해요.

책에 보니 차이밍량 감독의 <다크 서클스> 같은 영화를 미디엄 클로즈업이 잘 사용된 영화로 꼽고 있던데, 제가 보질 않아서..^^;

Shining 2013-02-0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현 씨의 연기는 확실히 과소평가 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영화에 대해서는, 언제가 되든 보고 난 후 다시 댓글 달게요 :)

이 영화도 그렇고 <신의 소녀들>과 <더 헌트>도 결국 못 봤네요. 아직 1월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놓친 영화가 넘치는 씁쓸함ㅠ 사람을 보러 간 건지 팀 버튼을 보러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녀왔습니다, 팀 버튼 전(웃음). 가면서 신년 통합본(?) 씨네21을 샀는데 신형철 씨가 쓴 <라이프 오브 파이>글은 정말 멋지더군요. 신형철 씨의 글은 정말.... 오직 글로만 사람에게 이만큼 반하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맥거핀 2013-02-06 15:59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팀 버튼을 그렇게 좋아하지를 않아서, 팀 버튼 전이 해도 가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뭔가 기괴한 이미지로 가득해서 나름 재미는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사람이 많은 것은 저도 참 그렇습니다만...팀 버튼 영화 중에서 마지막으로 본 게 <스위니 토드>였고, 그것도 약간 앉아있는게 괴로웠습니다.

근데 말이죠. 이번호 <씨네21>이 조인성 브로마이드를 부록으로 주던데, 그것 때문에 산 거 아닙니까? 으걀걀.

Shining 2013-02-07 11:25   좋아요 0 | URL
얼마 전 일말의 기대를 갖고 (<앨리스>때 하도 실망해서) <다크섀도우>보다 졸 뻔 했어요. 재미가 없다 없어 짜증낼 뻔 했다는_- 인산인해라는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인구밀도였어요....

가는 길에 베를린 표지가 붙은 씨네21이 걸려있길래 저 씨네21 주세요, 했더니 아저씨께서 꺼내시다말고 오늘 나온 거 줄까? 라고 속삭이시길래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하도 말투가 은밀해서 누가보면 암표상인줄 알았겠다는...). 알고보니 그게 신년통합본인가 되더라구요. 그렇게 얻은 조인성 씨입니다ㅎㅎ

...그 안에 부록이 있었나요?ㅎㅎ 전 인터뷰도 제대로 안 읽었어서...훗, 미남스타나 그들의 부록에 집착하지 않아요_-(으쓱)........원빈이라면 약간 고민은 했을거에요.....

맥거핀 2013-02-07 14:43   좋아요 0 | URL
왜 조인성 때문에 샀다고 말을 못하니..흑흑흑..이 아니고, 그런 연유로 사게 되었군요. 저는 씨네21 정기구독 중인데, 정기구독자들의 상당수가 그러듯이 일단 뜯어보고 한 1분간 휘리릭 넘겨본다음, 나중에 자세히 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는 다음주 책이 올 때까지 잊어버려요.; 그래서 맨날 휴일 같은 때 몰아서 보게 되요. 이번 설에도 밀린 씨네21이나...

근데 주간지 같은 거는 신년통합본 이런 거는 씨네21 아니더라도 자주 구매해요. 값은 똑같은데 더 두꺼워서 좋고, 중간에 특집퀴즈 같은 게 들어있어서 문제푸는 재미도 쏠쏠. 작년 추석 때 씨네21이랑 한겨레21 두 개 응모했는데, 다 국물도 없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