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소년, 조성희, 2012

 

 

 

(영화의 전체적 내용이 들어있음)

 

 

영화 <늑대소년>은 동화다. 조성희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했듯, 이 영화는 철저하게 '동화'라는 컨셉을 가지고 시작을 했으며, 조성희 감독은 그 컨셉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플롯이 아니라, 단선적인 기승전결의 구조와 캐릭터들의 활용이 그런 부분일텐데, 예를 들어 엄마(장영남)나 마을 사람들의 캐릭터, 악역인 지태(유연석) 등을 보면, 이들은 철저하게 기능적인 활용에 머물러 있으며, 적시적소에 나타나,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고 나가는 데에만 도움을 줄 뿐, 그 활용이 제한되어 있다. 즉 외로운 산골 마을에서 딸 둘을 데리고 사는 엄마의 어려움이나, 지태의 내면적 갈등 같은 것은 이 영화가 동화를 표방하고 있는 한, 이 영화에는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동화 <빨간모자>에서 늑대가 소녀를 잡아먹을까, 말까 내적갈등을 겪는다면 그건 이미 동화가 아닌 것이다. 물론 이를 한편으로는 순이(박보영)와 철수(송중기), 이 두 메인 캐릭터에게 덧씌워진 어떤 적절한 한계와 같은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이 두 메인 캐릭터는 사랑을 하되, 그것은 동화적인 사랑이어야만 한다. 즉 이 영화는 호소다 마모루의 <늑대아이> 혹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처럼, 두 메인 캐릭터가 섹스를 하고, 아이를 낳는 데에까지 나아갈 생각은 없다. 두 사람이 이루어지지 못해서가 아니라, 설혹 사랑을 이루어냈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왜? 동화니까. 동화는 '그 후로 오래도록 잘 살았습니다.'로 끝내야지, '그 후에 섹스도 하고, 애도 낳고, 부부싸움도 하면서 잘 살았습니다.'로 끝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늑대소년>은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고, 나의 흥미를 끌었던 부분도 그런 부분이다. 앞과 뒤에 액자를 씌워 놓고, 여기에 할머니가 된 순이를 등장시킨다는 것. 이게 명백히 동화를 표방하고 있다면, 이것은 상당히 이상하게 느껴진다. 생각해 보라. 예를 들어 동화 <백설공주>가 다 늙은 백설공주가 나와 과거를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할 때를 상상하는 그 이질감 말이다. 즉 영화 <늑대소년>은 동화,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그 시작과 끝은 그 판타지를 스스로 무너뜨리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감독이든 혹은 제작사이든 이것이 판타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판타지를 강화해주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일단 하나. 다시 현재로 돌아온 마지막 씬들에서 과거의 모든 것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시골집도, 카라멜도, 심지어는 철수도 말이다. 그 모든 것이 보존된 공간이 순이에게 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 전과 완전히 똑같아, 라고 말해줄 때, 이것이 어떤 판타지를 강화한다고 보는 것일까.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꿈이 깼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꿈속의 인물이 나타나, 아니야 너는 아직 깨지 않았어, 라고 말하는 것이 그 꿈을 억지로라도 지속시킨다고 보는 것일까. 아니면 여기에 어떤 영화의 잠재된 핵심, 그러니까 여기에 영화의, 혹은 감독의 무의식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이 앞과 뒤의 액자들은 영화의 주플롯과 분리되어 있으며, 당연히 그것이 존재하지 않아도, 이 아름다운 동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아니 모든 영화제작사들은 1분이라도 영화에서 줄어들기를 바라므로, 이 액자가 사라지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리뷰들을 보면 상당수의 관객들도 이 액자를 그렇게 바라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필요치 않은 것을 억지로 집어넣었다는 이 사실이, 다른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늑대소년>을 다룬 글(씨네21)에서 철수를 '어정쩡한 타자'로 규정한다. 즉 철수는 '10대 소녀의 백일몽(김혜리)'이라는 견해와 '근대의 정상성에 맞선다(이용철)' 라는 견해 사이에 어정쩡하게 위치해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10대 소녀의 꿈속에 나타날 수 있는 미소년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분명히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기도 하다. 철수라는 늑대와 인간 사이에 위치한 이 존재는 도대체 어떠한 존재인가. 이 질문은 영화의 마지막 철수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질문이기도 했다. 지태나 군인의 의견은 철수가 위험한 존재이므로 - 그 자체로 위험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어떤 것을 감추기 위해서 -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고, 박사나 순이의 가족, 마을사람들의 의견은 철수가 위험한 존재가 아니므로 이곳 인간세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타자를 만났을 때 제기되는 즉각적인 질문, 이 타자는 나에게 위험한가, 그렇지 않은가가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영화가 의도한 바대로 대부분의 관객은 순이의 편, 그러니까 철수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에 동조하게 된다. 왜? 우리는 지금까지 철수의 '길들여짐'을 보았기 때문이다. 즉 철수는 위험한 존재였을지도 모르지만, 순이의 조련으로 인해 길들여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철수는 기다리라는 순이의 간절한 외침에도 다시 야수성을 드러내 보이고, 철수의 인간세상에로의 편입은 실패한다.

즉 이 영화 <늑대소년>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 간단하게 말해 '괴물'을 인간과 비슷한 어떤 것으로 길들이려다 결국에는 실패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생긴다. 인간이 되는 것이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몇십 년 후 순이가 돌아왔을 때, 그 괴물은 스스로 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 길들여짐은 몇십 년이 지나서야 완성이 된다. 그것도 조련사의 도움이 없이도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 괴물은 조련사가 길들이는 데 실패하였지만, 기어이 스스로 길들여졌고, 더 나아가 조련사보다 훨씬 나은 위치에 서 있다. 즉 조련사는 늙고, 괴물이 되었지만, - 영화의 첫 대사를 기억해보라. 할머니는 거울을 보며 말한다. "이런 괴물을 봤나..." - 괴물은 잘생기고, 뽀송뽀송한 예전의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간이 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내가 묻는 것은 물리적인 가능성이라기 보다는, 이 영화에 깔린 어떤 전제이다. 즉 철수는 길들여지기 훨씬 이전부터, 괴물인 적은 없지 않았나, 이미 시작부터 이 영화는 철수를 인간이라는 틀 안에 집어넣고 시작하지 않았나,하는 물음이다. 즉 순이의 길들이기는 어쩌면 '가짜 길들이기', 아장아장 소꿉장난과 같은 것은 아니었나 하는 물음이다. 

몇 가지의 힌트들이 있다. 철수와 순이의 첫 조우. 예를 들어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철수는 왜 순이를 공격하여 잡아먹지 않았나. 그가 늑대라면 도리어 인간인 순이를 공격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물론 누군가는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철수는 늑대가 아니라, '늑대인간'이라구요. 그래서 철수는 순이와 엄마가 내민 감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감자를 먹는 늑대인간이라. 그런데 우리는 그 전에 사실 철수의 먹이를 이미 본 적이 있다. 철수를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인물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들고 있던 양동이에 가득담긴 생고기 조각들. 그런데 이제 와서 감자와 밥과 국과 잡채를 먹는 늑대인간이라. 뭐 좋다, 늑대인간은 잡식성일 수 있으니까. 다음의 장면. 김혜리는 짤막한 글(씨네21)에서 예리하게 다음의 장면을 집어낸다. 철수가 마을의 염소를 해쳤다는 누명을 쓰자 순이가 "네가 그런 거 아니지?"라고 캐묻는 장면. 그러면서 설명을 단다. '그녀도 영화도, 늑대소년을 슬픈 인간으로 볼 뿐, 그의 수성(獸性)까지 받아들이진 못한다.' 김혜리의 지적대로 늑대소년이 염소를 잡아먹을 수 있다는 것이 도리어 당연한데도, 그녀도 영화도, 나를 포함한 관객들도 그가 그럴 리 없다고 굳게 믿는다. 지태가 저지르는 일을 이미 보았기 때문에? 그것도 그것이지만, '처음부터' 그가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반농담으로 돌아가자면, 그가 처음부터 감자를 먹었기 때문이다. 즉 그가 괴물이라는 가능성은 순이에게도, 마을사람들에게도, 그리고 관객들에게도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었다. 그는 완벽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송중기니까.    

즉 우리는 이 영화에서 어정쩡한 타자 늑대소년을 보며, 그의 밝은 면만 들여다본다. 늑대소년의 기원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박사에게 엄마가 "아..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구요."라고 말하는 영화 속 장면과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관객이 나빠서가 아니라, 영화의 구조가 그렇게 짜여진 탓이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에서 '늑대소년'이라는 사실 이 복잡한 타자는 무엇인가가 제거되어 있고, 소녀도, 영화도, 관객도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 - 예를 들어 수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타자가 가지는 불온성이라고 할 수도 있는 - 가 제거된 늑대소년, 혹은 송중기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과거의 모든 것이 그대로 보존된, 심지어는 당연히 변해야 할 늑대소년마저도 그대로 보존된 공간을 본다. 그래서 이를 과거로의 타임머신, 혹은 과거의 박제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박제를 하겠다는 것은 그것을 어떤 상징으로 만들고, 그 상징에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냥꾼들의 동물 박제이건, 북한의 김일성 박제이건 간에 그 박제물에는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뒤따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굳이 액자로 만들어낸 과거의 박제는 무엇을 담고 있는가?

그것은 혹시 시간의 망각과 같은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북한의 김일성 박제가 시간을 망각시키는 하나의 도구로서 사용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시작부 "이런 괴물을 봤나...'라고 중얼거리는 할머니를 보며, 그것은 어떤 중의적인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늙고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대한 한탄이면서, 동시에 과거의 어떤 시간에 대한 회한이나 안타까움 같은 것을 담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결국 과거로 돌아가 보게 되는 것은 과거 자신과 늑대소년을 둘러싼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더욱 완벽히 제거되어 완전히 인간이 되어버린 괴물, 아니 그 괴물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은, 아름답고 뽀송뽀송하게 스스로 정화된 과거의 어떤 박제물이다. 즉 이 과거에는 과거 그 시간 이후로 사십 여년이 넘게 흐른 그간의 세월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깨끗하게 보존된 김일성의 박제에 몇십 년 간의 인민들의 고난의 행군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이 늑대소년은 김일성이 아니라 송중기다. 과거의 괴물에게는 이미 어느정도 이 수성이 제거되어 있기는 했지만, 다시 퇴행하여 돌아간 이 현재적 과거에서는 그 수성의 흔적조차 이제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소녀의 성장담도 아니고, 철수의 성장담도 아니고, 그저 박제담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액자의 시작부분에서 그녀의 대사 "이런 괴물을 봤나...'에만 정신이 팔려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그녀가 거울을 보며 그 대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 싸이보그지만 (예쁘니까) 괜찮아. 괴물이라도 잘생겼으면 괜찮아. 인간이라도 늙었으면 괴물인걸. 늙음, 그 늙음이 보여주는 시간은 그렇게 망각되어 다시 타자들을 분리해낸다. 물론 여기에는 근대가 만들어낸 '정상성'이라는 기제가 여전히 작동된다. 아름다운 아리아인, 아름다운 육체, 아름다운 인간성. 

아..물론 글의 첫머리에서 이야기하였듯이 이 이야기는 동화다. 동화는 물론 동화로 남겨두어야만 한다. 하지만 모든 동화는 동화 이면의 기담을 담고 있음이 또 사실이 아니던가. 한 잉여의 늑대소년 기담, 쯤이라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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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ing 2012-12-12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아마 이 영화가 동화이기 때문 아닐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중년여성들의 마음이 흔들렸다, 이거누어쩌면 첫사랑에 대한 또 다른 건축학개론이 아닐까, 여전히 나를 예쁘다고 해주는 지금의 당신. 이라는 요지의 칼럼을 신문에서 읽었거든요(중앙일보였나..). 전 이 영화를 안봤는데, 이 말이 꽤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 그래서 나이가 든 순이와 재회하게 했구나, 판타지를 깨서 판타지를 지켰군 싶은 느낌(안 보고도 잘도 말하는군요^^;).

전 지난 주말 <심플라이프>를 봤습니다, 아, 유덕화는 정말 멋지더군요..

맥거핀 2012-12-13 14:07   좋아요 0 | URL
아마도 그런 측면도 있겠죠. 중년여성들의 판타지를 건드린다, 뭐 그런. 그런 측면에서 젊은 관객을 버리고, 보다 더 나이든 관객을 타겟으로 삼았다고 볼 수도 있겠구요. (젊은 관객들은 이 액자를 대체로 안 좋아하는 듯.)

근데 또 한편으로 철수는 타자니까요. '타자'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듯, 알 수 없는 어떤 것. 그런데 이 영화가 결국 선택하는 것은 그 알 수 없는 타자를 뽀샤시한 이미지, 예쁜 어떤 것에 박제, 고착시키는 거라고 봤어요, 저는. 타자가 위험하니까 배척하여야 한다도 위험하지만, 타자가 이쁘니까 받아들여야 한다(어떤 이미지를 씌우는 것)도 마찬가지로 저는 위험하다고 봐요. 예를 들어 현재 우리사회에서 대표적인 타자가 외국인 노동자들일텐데, 이들이 범죄만 저지르는 위험한 사람이다고 낙인찍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동시에 '러브 인 아시아' 같은 데서 하는 식으로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라고 이미지만을 씌우는 것도 저는 마찬가지로 조금은 위험하다고 봐요. 그러니까 그들도 나쁜 짓도 하고, 이상한 생각도 하고, 동시에 선의도 있고, 때로는 좋은 일도 하는 우리랑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자에게 조금은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간에 그런데 이 영화에서 철수에게 어떤 이미지를 고착화하여 씌워버리는 것, 마지막에 그를 박제시켜 버려두는 것은 판타지를 강화했을지 몰라도, 저는 그런 판타지가 그리 반갑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동화이기 때문이라는 Shining님의 말씀도 공감하지만요. 사실 상당수의 동화가 따지고 들어가면 좀 이상한, 그러니까 꺼림칙한 부분들이 있잖아요.^^;

유덕화 씨는 나이가 들어도 왜 그렇게 멋진지..동안 뭐 그런 거 보다도, 어떤 사람의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게 멋있는 것 같아요.

저는 개봉영화들 중 일단 <레미제라블>, <신의 소녀들>, <아무르> 이 세 편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볼 예정입니다. (원래 대선국면에는 대선이라는 워낙 잼있는 영화가 하는터라, 영화에 관심이 떨어지는데, 이번 대선은 양쪽이 하는 행태들을 보니 그만 관심이 뚝 떨어져서 영화나 열심히 봐야할 듯.)

맥거핀 2012-12-13 14:32   좋아요 0 | URL
다시 보니 댓글이 필요이상으로 너무 기네요. 댓글이 반가워서 그래요..^^;;;

Shining 2012-12-14 15:48   좋아요 0 | URL
하하. 저도 만날 댓글 완전 길게 달잖아요ㅎㅎ 음, 맥거핀님의 글에 댓글이 적은 건...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일겁니다ㅠ 추천을 누르는 것 외엔, 대체 무슨 말을 쓰지, 하는 느낌 말이죠. 저도 그럴때 많거든요ㅠ 밑의 영화 <생선 쿠스쿠스>는 몇 년 전 영화제에서 봤습니다. 알모도바르의 <귀향>에 비견된다는, 프로그래머님의 말씀에 홀딱 넘어갔는데 전 다소 지루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귀향>이라니, 제가 완전 사랑하는 영화예요!

동의합니다. 타자인만큼 어떤 의미로든 필터를 씌우는 건 위험하지만, 어쨌든 사람은 타자(넓은 의미로서)를 바라볼 때 필터로밖에 볼 수 없으니까요, 라는 생각이 드네요(영화랑은 무관하게 댓글을 읽다 떠오른 생각입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볼 때도 필터링을 하는데, 남을 볼 때는 좋든 나쁘든 좋다고 여기든 나쁘다고 여기든 어떤 타자화, 가 작용되는 게 별 수 없는 게 아닐까 문득 생각이 듭니다.

전 <가위손>에 비유한 누군가의 평에 넘어갈 뻔, 했는데 친구가 코웃음 치더라구요;(아마 그 친구에겐 <귀향>에 비유된 <생선 쿠스쿠스>였나요...) 맞아요, 동화는 기본적으로 뭔가 그로테스크하죠.

유덕화 씨, 젊을 땐 좀 느끼하다고 생각했는데. 아, 완전 멋졌어요. 외모가 아니라 느낌이, 풍체나 눈빛이나 표정에서 오는 느낌이.. 완전 멋지던데요ㅠ

<신의 소녀들>은 개봉 안하고; 나머지 두 개는 저도 볼 겁니다*-_-*

맥거핀 2012-12-16 23:23   좋아요 0 | URL
아시듯이 원래 프로그래머들이 좀 과장하는 경향이 있죠. 하긴 뭐 그러라고 있는 자리니까요. 저도 영화제에서 소개하는 영화 소개글 같은 거 열심히 읽는 편인데, 사실 읽고나도 이게 뭔 소리인가..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근데 문제는 그렇게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라는 영화에 더 끌린다는 점입니다만.

아..근데 이 영화 <가위손>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기는 해요. 물론 가위손이나 그 원형인 프랑켄슈타인 이야기에서처럼, 주인공 괴물이 어떤 내적인 갈등을 겪는 부분이 없지만요. 그런 부분에서 모티브를 따오기는 했는데, 그걸 그냥 동화적으로만 이용하고 있죠.

<심플라이프>도 보러가야 하는데, 늘 새로운 영화가 출현하고, 기존에 보려던 영화는 늘 기억 속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리지요. :)

Shining 2012-12-17 14:15   좋아요 0 | URL
아하, 그래서 맥거핀님은 어워드 대신 한 해 동안 놓쳐서 아쉬운 영화들을 정리하시는 건가요?+_+

어제 <호빗>을 봤습니다. HFR 3D로 봤는데 3D 효과는 약간 아쉽고(아직까지 3D로는 <아바타>에 버금가는 영화가 없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스토리도 약간 쳐지는 인상이었는데 액션씬이 정말 멋지더군요. 게다가 이게 1편, 도입과 전개라고 하니 역시 피터 잭슨이다, 싶네요. 확실히 정교하더군요, 색채며 움직임이 부드럽구요. 어지럽다는 일부 평이 있다던데 전 어지럽지는 않았는데 몇몇 장면에서 <트랜스포머> 처음 볼 때 생각이 났어요. 프레임 전환이 너무 빨라서, 어떤 장면들은 인지하기도 전에 지나간다는, 그런 느낌이요. 이걸 네거티브 필름으로 현상한다면 엄청 신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그냥 그렇다구요^^;

맥거핀 2012-12-17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렇군요. 늘 이렇게 기술적인 측면에서 새롭게 시도하는 영화들을 보면 흥미가 가기는 합니다. 다만 문제는 제가 잘 적응을 못한다는 게 문제기는 한데요, 사실 3D를 못견뎌하는 편이라서 그냥 3D도 아닌 HFR 3D를 잘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재미있기는 해요. HFR이라는 게 프레임수를 늘린다는 거죠? 게다가 3D니까..즉 그만큼 '현실에 가까운', '눈앞에서 보는 어떠한 것'에 가깝게 다가간다는 건데, 영화가 점차 이렇게 되어가는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사실 이중의 모순된 심리를 가지잖아요. 그러니까, 현실에 가까운 화면을 보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이것이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안도를 하지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이번에 개봉하는 <타워> 같은 재난영화를 봐도, 그 재난은 최대한 실감이 나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은 관객이랑 분리가 되어야 하잖아요. 그 중간 어딘가에 영화가 서 있는 것인데, 이것이 자꾸 현실에 비죽비죽 가까이 갈 때 균형점을 어디서 잡아야 하는건가, 같은 것.

그러니까 예를 들어 아주 오래전 스크린에서 기차가 달려올 때 관객들이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놀라서 피하려던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영화의 감상에 도움을 줄 것인가, 아닐 것인가의 문제. 혹은 영화에서 물이 튀는 장면같은 것이 있을 때 실제로 물을 관객에게 뿌리는 것이 실제의 영화관람에 도움을 줄 것인가의 문제-극단적인 4D 같은 것.

비근한 예로 '언캐니 밸리' 같은 것도 있으니까요. 디지털 캐릭터가 너무 인간에 가깝게 되면 도리어 관객들이 그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 그런 비슷한 것이 아마도 이 3D, HFR 3D를 둘러싼 문제에도 여전히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실적으로 눈의 피로와 같은 문제도 있을 것이고요. 프레임 수를 높인다는 것은 게임에서 사용하는 고프레임과 비슷해진다는 건데, 게임 오래하면 눈이 많이 아프잖아요, 뭐 그런 문제도 있을 거고...아무튼 정지해있는 물체를 위해 고프레임을 쓰지는 않으니까요. <호빗>이 좀 길다고 하던데, 3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그 고프레임의 물체의 이동을 지켜보는 것이 피로감을 어느정도 불러오는가의 문제도 있겠죠.

(물론 이는 관객의 측면에서만 본 것이고, 영화 제작의 측면에서 보면 더 심한 변화가 많이 일어나니까요. 얼마전 <카페느와르> DVD 코멘터리를 보니 디지털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데, 배우들 말이 필름에서 디지털로의 변화가 배우들의 연기패턴에도 여러 변화를 불러온다고 하더라구요. 3D, HFR 3D로의 변화도 비슷한 강도의 변화를 불러오겠지요.)

아무튼 어쩌면 이런 것도 신기술에 대한 일차적인 거부감에서 유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영화에서 소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 왜 영화에서 소리가 필요하죠?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요.

Shining 2012-12-19 01:34   좋아요 0 | URL
필름영사기는 정말 신기해요.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원리지만 어떤 면에선 굉장히 섬세하죠. 필름을 편집할 때는 더 조심스럽죠. 하나하나 잘못된 컷을 손과 눈으로 잡아내지 않으면 잘못하면 필름을 통째로 버리게 되거든요. 20번대 프린트와 200번대 프린트(블록버스터 영화는 200벌 이상을 만들죠)는 당연히 화질이 다르고 거의 복불복인데; 200번대 프린트가 200번 이상 상영을 하기도 하구요. 쇼박스의 상징인 하얀 얼굴이 회색이 되고, 음질도 늘어나고 무엇보다 이건 상영을 접으면 무조건 쓰레기가 되거든요(재활용이 불가능한, 그저 처치곤란한..). 반면에 디지털은 외장하드만 딸랑 오는데다 몇 백번을 상영하든 똑같으니까요. 그런데 재밌는 건, 디지털이 사고나면 더 파장이 커진다는 거. 사고날 확률은 적지만 사고나면 줄줄이 이어질 확률이 높거든요. 저는 영사기가 엄청 신기했고 지금도 신기해요. 그래서, 좀 낡고 늘어져도 그 자체로도 참 좋았거든요. 기술적인 면이 아닌 어떤 감상적인 면에서 말이죠.

아이맥스는 관람한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3D는 자리선정이 아주 중요하죠. 사실 <호빗>보고 나와서 약간 눈이 뻑뻑한 느낌은 들었어요. 집중을 한 탓도 있겠지만 워낙 정교하다보니 눈을 깜빡이는 속도도 더뎌진것 같았거든요. 프레임 수가 늘어난다는 말에 가장 처음 생각난 건 필름의 무게였어요. 필름을 하나하나 봐도 참 신기한데 이게 두 배라면 거의 미동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겠다는 것과 필름으로 따지자면 양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거. 그런 느낌을 받고 디지털이란 참 편하고 유익하고 쉽다는 생각이 계속 드네요.

그렇네요. 영화란 판타지를 가장한 현실을 믿으러 가는 곳이며 현실인 척 하는 판타지를 보러 가는 곳이니까요.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며 비판하다가도 지나치게 현실적이면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고.

<휴고>가 생각나네요. 마틴 스콜세지는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몇 십년 전에도 지금도 똑같이 사랑하고 경애하는구나, 라는 느낌. 맥거핀님 글과는 약간 무관하지만(쓰다보니;) 글을 읽다보니 드는 마음들을 적어봅니다 :)

맥거핀 2012-12-20 02:36   좋아요 0 | URL
네..하신 말씀을 들으니 재밌네요. 사실 필름같은 아날로그는 조금씩 마모되고 망가지고 하기는 하지만, 어떤 물리적인 실체가 있으니 복구의 여지가 있잖아요. 그런데 디지털은 이것이 철저하게 가상의 공간에만 있으니 한번 문제가 생기면 그냥 휙 날라간다는 것...그러니까 미래의 어느날에 지구에 엄청난 전자기파가 몰아닥친다면 디지털 공간의 자료들은 아무 티끌도 없이 한 방에 휙 사라지게 되는 것이잖아요. 책이나 필름이 불에 탄다면 탄 자국이라고 남지만, 디지털은 뭐 그냥 날라가게 되니. 디지털 백업도 중요하지만, 아날로그 백업도 그래서 여전히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근데 Shining님은 아무래도 아날로그를 사랑하시는 아날로그형 인간이신 듯 해요. 프레임 수가 늘어난 영화를 보면서 필름의 무게를 생각하신다니요. 사실 디지털 같은 것을 생각할 때는 대체로 그런 물리적인 무게 같은 것은 생각안하잖아요. 그러고보니 궁금하긴 하네요. 1M 파일과 1G 파일은 물리적으로 무게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같은 것.

갑자기 야밤에 쓸데없는 생각이 듭니다.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디지털 상에만 있는 내 글이 다 날라가면 어떡하지, 지금 미리 프린터로 따로 뽑아두어야 하나 같은 것...-_-;

Shining 2012-12-20 12:49   좋아요 0 | URL
2분 30초, 4분 짜리 예고편 필름을 몇 개 갖고 있는데요. 그걸 촘촘하게 말아도 크기가 꽤 되거든요. 당연히 무게도 있구요. 필름을 한 번 접하면, 그 무게를 먼저 짐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네요. 디지털은 부피, 아날로그는 질량일까요.

저는 중요한 문서를 온라인, 외장하드, usb에 똑같이 복사해뒀는데요. 하지만 잃을라고 하면 세 개로 나눠나도 방법이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 때는 있습니다. 저희 집에는 프린터가 없는데, 저는 어떻게 하죠?

맥거핀 2012-12-20 13:16   좋아요 0 | URL
Shining님은 머리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굳이 프린터 해놓지 않으셔도 될겁니다.^^

2013-01-13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14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