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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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을 맞이한 독서의 테마는 전쟁소설 또는 반전소설이다. [개선문]으로 유명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작품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그 첫번째 책이다. 이 소설은 [클라시커 50 - 현대소설] 편에서도 소개된 바 있어 필독 목록에 올라 있던 터였다.

 

이 책은 고발도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하더라도

전쟁으로 파멸한 세대에 대한 보고하는 것일 뿐이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등장하는 문구.

 

19세의 학도병, 파울 보이머가 현지 생방송을 하듯 1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실상을  들려준다.  처음 몇 페이지는 익숙지 않은 현재형 문장 때문에 지루하고 따분해 잘 넘어가지 않았으나 페이지를 거듭할 수록 현장에 있다는 착각속에서 몰입하게 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1920년부터 약 10년간 독일에서 유행했던 문예사조인 신즉물주의적 수법'이라는 서술방식이라는데, '자아의 주장이나 감정의 표현을 억제하고, 사실에 바탕을 두고 사실 자체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기법'이라는 해설을 접하니 지난 이틀간의 경이로운 경험이 설명된다.

 

몇몇 접어 놓은 페이지.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카친스키는 이렇게 말하고 일장연설이라도 할 듯이 자세를 고쳐 앉는다. " 하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어. 자 생각해 봐. 개에게 감자를 먹는 훈련을 시키다가 고기 한 점을 던져 줘봐. 그럼 그것을 덥석 물려고 달려들 거야. 그건 개의 본성 때문이지. 그리고 사람에게 조그만한 권력을 줄 때도 그와 마찬가지 일이 생기지.~"  41쪽

 

우리는 이제 더는 청년이 아니다. 우리에겐 세상을 상대로 싸울 의지가 없어졌다. 우리는 도피자들이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의 삶으로부터 도피하고 있다. 우리는 열여덟 살이었을 때 세상과 현 존재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에 대고 총을 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터진 유탄은 바로 우리의 심장에 명중했다. 우리는 활동, 노력 및 진보라는 것으로부터 차단된 채로 살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런 것의 실체를 믿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오직 전쟁밖에 없는 것이다.  75~76쪽

 

우리는 두개골이 없어도 살아 있는 사람을 본다. 우리는 두 다리가 다 날아간 병사가 달리는 것을 본다. 두 다리가 절단되었는데도 비트적거리며 인근 구덩이로 들어가는 자도 있고, 두 무릎이 박살난 어떤 상병은 2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두 손으로 기어서 몸을 끌고 온 경우도 있다. 어떤 다른 병사는 흘러내리는 창자를 두 손으로 움켜잡은 채 응급 치료소까지  온 경우도 있다. 우리는 입과 아래턱, 얼굴이 없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도한 우리는 과다출혈로 죽지 않으려고 이빨로 팔의 정맥을 두 시간 동안이나 꽉 물고 있던 병사를 발견하기도 한다. 어김없이 해는 떠오르고, 밤은 찾아오며, 유탄은 쉭쉭 소리를 내고, 사람들은 죽어 간다. 111쪽

 

'그냥 없드리고 있으면 공포는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곰곰 생각하다가는 공포에 질려 죽고 만다.'  114쪽

 

누나는 문을 활짝 열고 소리친다.

"어머니, 어머니, 파울이 왔어요!"

나는 벽에 몸을 기댄 채 철모와 총을 꼭 껴안는다.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꼭 껴안는다. 하지만 한걸음도 더는 움직일 수 없다. 계단이 눈앞에 흐릿하게 보인다. 나는 개머리판으로 발등을 찧으며, 화가나 이를 꽉 물고 정신을 차리려고 한다. 하지만 난 누나가 소리친 이 한마디에 뭐라고 대꾸할 수 없다. 그에 대해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다. 나는 억지로 웃으며 말하려고 해본다. 하지만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계단 위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참담한 모습으로 끔찍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울고 싶지는 않지만 나의 얼굴 위로 끝없이 눈물만 흘러내릴 뿐이다.  128쪽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수들이며 목사들이며 신문들은 우리만 옳다고 말하잖아. 그건 뭐 그렇다고 해두자. 그런데 프랑스의 교수들이나 목사들이나 신문들도 자기들만이 옳다고 주장하겠지."  162쪽

 

우리의 생각은 점토와 같아서, 나날의 변화에 의해 반죽된다. 우리가 쉬고 있을 때는 좋은 생각이 떠 오르고, 포화 속에서 누워 있을 때는 생각이 죽어 있다. 전쟁터는 바깥에도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도 있다.  212쪽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 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엎드린 채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을 뒤집어 보니 그가 죽어 가면서 오랫동안 고통을 겪은 것 같은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된 것을 마치 흡족하게 여기는 것처럼 무척이나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229~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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