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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2 (완전판) - 다섯 마리 아기 돼지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여덟 번 째로 접한 푸아로인데 그럭 저럭 읽을 만 했다.
이미 끝난 사건, 범인은 잡혔고 옥사했다. 남편 살해 혐의였다. 16년이 흐른 후 다 자란 딸이 어머니 캐롤라인의 결백을 주장하며 푸아로를 찾아 왔다. 16년 전의 살인사건을 재구성하는 푸아로. 이렇게 오래된 사건을, 그것도 미제사건이 아닌 종결 사건을, 관련자들의 흐릿한 기억에 의지해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푸아로는 영리하게(?) 다섯 명의 관련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당시 상황을 청취하고 서면 진술서를 보내달라는 부탁을 한다. 결국 이들 다섯명(죽은 남편의 절친 블레이크 형제, 정부 레이디 디티셤, 캐롤라인의 배다른 동생 안젤라 워런, 그녀의 가정교사 세실리아 윌리엄스)이 용의자인 셈, 각자의 주관을 담뿍 담은 다섯 부의 자술서, 그리고 당시의 사건 기록을 면밀히 분석한 푸아로는 언제나처럼 의뢰자와 용의자 모두를 한 곳에 불러 들인다. 이제 그의 회색 뇌세포를 동원해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데, 관련자들의 진술에 약간이 틈만 보이면 그 모순점을 들추어 내고 합리적 사고를 통해 관련자를 압박한다. 심리적으로. 그리고 이어지는 자백.
소설이라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당시 용의자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할 수 있을지 부터 의문 부호. 더더군다나 오랜 기억에 기반을 둔(물론 당시 사건 기록도 있었긴 하지만) 진술이 설령 서로 다르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건의 실체를 형상화하는데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기억 자체를 믿을 수나 있는 것일까?
쓸데없는 걱정이다.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 소설의 미덕은 그런 것에 있지 않다. 욕망과 질투로 뒤엉킨 20세기 초반의 영국 사회의 다양한 인간 군상과 한 명민한 탐정의 활약상을 맘 편하게 즐기면 그만, 지긋지긋한 올 여름에 충분히 나에게 휴식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