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너무 자주 듣고 보아서, 벌써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실제로는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작품들 중에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기이한 사례, 1886]가 있다. 뮤지컬로 더 유명한 이 고딕 소설을 맘먹고 읽었다. [보물섬, 1883]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뛰어난 공포소설인 이 작품은 한 인간에게 깃든 '선과 악'의 대립을 아주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음에 인용된 본문 '헨리 지킬의 고백중에서'의 몇몇 장면은 과학자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이 묻어 난다.

 

헨리 지킬의 고백중에서

 

쾌락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만, 고고한 자긍심으로 대중들 앞에서 철저하게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오만한 욕망을 가진 내게 쾌락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욕망을 감추었다. 그런데 되돌아볼 수 있는 세월이 되어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상에서의 내 성취와 지위를 평가해 보니, 이미 나는 상당히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105쪽

 

종교에 뿌리를 둔 가장 심오한 고뇌의 원천인 선과 악이란 이중성, 이 가혹한 삶의 법칙에 대해 나는 깊이, 집념을 가지고 천착하게 되었다. 내가 뿌리 깊이 이중적이라 해서 위선적인가하면 그건 전혀 아니다. 나의 두가지 모습은 모두 진실한 것이었다.  106쪽

 

만약 각각의 본성을 별개의 개체에 담을 수 있다면, 참을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부조리한 존재는 그의 고결한 쌍둥이의 열망과 자책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만의 길을 가고, 정의로운 존재는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높은 곳을 향한 그의 길을 가면 될 것이다. 107쪽

 

내 육체는 더 젊어지고 더 가벼워지고 더 행복해졌다. 나는 그 육체안에서 마치 환상 속에서 물방아에 물이 흐르듯 무모한 무분별과 무질서한 관능적 이미지의 물결이 흐르는 것을 의식했다. 책임감이 녹아 사라지고,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결코 순수하지 않은 영혼의 자유로움도 인식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생명을 처음 호흡하자마자 나는 내 자신이 더욱 사악해져서, 열 배는 더 사악해져서 내 깊은 곳의 악마에게 노예로 팔렸음을 알아차렸다. 순간 그 생각은 나를 감싸안으며 와인 같은 감흥을 안겨 주었다. 나는 두 손을 뻗으며 그러한 감각의 신선함을 기뻐했다. 그리고 그런 해동 가운데 문득 내 키가 줄어들었음을 깨달았다. 109쪽

 

그 역시 내 자신이었다. 자연스럽고 인간적으로 보였다. 내 눈에는 그 모습이 더 생생한 정신의 이미지를 담고 있었고, 내가 그때까지 내 것이라고 불렀던 불완전하고 분열되어 있던 모습보다 더 분명하고 순수해 보였다. ~~ 에드워드 하이드만이 순수하게 악으로 이루어진 유일한 사람이었다. 111쪽

 

이제 나는 이 두 자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함을 느꼈다. 117쪽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들 흔히 말한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다. 개체로서의 하나의 인간을 가늠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얘기일테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인 갈등하는 내면, 선악의 격전지인 인간의 마음만해도 타인은 눈치챌 새도 없이 얼마나 자주 큰 전쟁이 벌어지는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잘 이겨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아직 해체되지 않은 시한폭탄에 불과하지만.

 

최근 뉴스를 접할 때 이 시대의 '지킬과 하이드'를 목격하는 경우가 있다. 연초를 뜨겁게 달구었던 몇몇의 아동학대 사건, 특히 부천의 여중생 살인 사건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지킬과 하이드'사건이라 할 만하다. 일반에게는 존경받는 유학파 목사에서 전처소생의 자녀에게는 무자비한 폭군아버지의 모습까지... 더 언급하기도 끔찍하다. 째각 째각, 폭탄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사회다.

 

'인간의 이중성 내지 다중성' 하니까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될 수 있는 위험성이 느껴진다. '이중적인 생활'을 유발하고 조장하고 육성하는 집단의 모순과 대중들을 최면 내지 가수면 상태에 빠뜨린 매스미디어, 관습적으로 그 따위 혼란스런 상태를 보장하는 제도 등, 옳고 그름의 경계는 다양성이라는 미명하에 무너졌다. 

 

지킬과 하이드로 대변되는 인간의 이중성은 오히려 순수하다. 두 본성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 선택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을 담보한다면 과연 난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 그리고 접어둔 페이지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해선 제 나름의 확고한 생각이 있습니다. 질문을 던지는 일은 돌을 던지는 일과 같아요. 그냥 조용히 언덕 위에 앉아 돌을 굴리면 다른 돌들도 구르게 되고, 곧 별 상관없는 사람이 자기 마당에서 그 돌을 맞고 쓰러져 그 가족이 성씨를 바꿔야 하는 사태를 맞게  됩니다. 그래서 제 나름의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곤란해 보이는 일일수록 질문은 적게 하라는 것이죠." 

                                                            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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